[미디어 세상] 공영방송 독립성, 제도로 보장해야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이 또 ‘망언’을 제조했다. 집권한 지 6개월여가 지났지만 공영방송 이사 구성이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구조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며 KBS, MBC에서 ‘하나도 못 먹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공영방송 이사 자리를 전리품처럼 생각하는 사고의 발로다. 박근혜 정권 당시 언론 장악으로 지탄받았던 KBS 고대영, MBC 김장겸 전 사장 등이 축사를 하는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 창립준비위원회 발족식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정치적 후견주의 그늘에 있는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제도에 변화가 없이는 반복될 행태다. 사실 제도 변화 없이도 현실은 이미 변하고 있었다. MBC는 후보자 공개정책발표회를 가졌다.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의 결정이 적절한지 시민들한테 검증받겠다는 의도였다. KBS는 사장을 선출하면서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실험을 해왔다. 시민들 앞에서 정책발표회, 질의응답을 한 후 시민들이 판단하고 평가하도록 했다. 그리고 투명성을 위해 이를 생중계했다. 마지막으로 그 평가결과를 최종결정에 40% 반영하도록 했다. 두 공영방송의 노력은 연합뉴스, YTN, TBS 사장 선임 시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공영언론의 경영진 선임이 정치권의 입김에서 벗어나 진정한 주인인 시민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의 결과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의 변화는 불가역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의에 의존하는 관행’에 불과하다. 사회의식은 변하더라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TBS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TBS는 이전에 임원추천위원회가 후보자공개정책설명회를 열고 서울시민 100명이 참여하는 시민평가단이 발표를 듣고 점수를 매겼다. 이를 생중계 했다. 그리고 후보자 결정에 시민평가단 평가를 40% 반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튜브 생중계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자는 취지에 역행한다. 시민평가단의 평가 점수도 40%까지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규정은 최대 40%이기 때문에 낮출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존 틀을 유지하는 듯하지만,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제도화를 요구해왔다. 이전 국회에서 시민의 참여와 관련한 방송법 개정안이 여러 개 제출됐고,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정한 방송법 개정안에도 포함됐다. 민주당 안은 성별·연령별·지역 등을 고려해 100명의 ‘공영방송 사장 국민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사장 후보를 추천하는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시민의 집단 지성이 발휘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묶여 있다. 국민의힘이 민주당 방송법 개정안이 공영방송을 민주당 2중대로 만드는 법, 민주노총이 장악하게 하는 법 등으로 강변하며 반대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법안이 완벽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이 주장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국민의힘이 진정 방송의 독립성을 원한다면 마냥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고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맞다. 반대만 하는 국민의힘 속내는 뭘까? 그동안 보여줬던 일련의 행태를 보면 현행 제도 틀 내에서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것이 아닌지 자못 의심스럽다. 공영방송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사퇴를 주장하고, KBS와 방송통신위원회를 장기 감사하고, 종편 재승인 심사위원을 감사·수사이첩하고, MBC 대통령 전용기 탑승 거부, TBS 지원 중단을 결정하고.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공영 언론의 독립성을 강화할 대안을 제시하든지 아니면 민주당 안 논의에 적극 나서는 것이 그나마 공영방송 장악 오명을 씻는 길이 아닐까?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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