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간호사 진로 찾아 고교 진학 준비하니 놀랍구나”
해민아 , 중학교 졸업을 축하한다 . 그간 많은 일이 있었구나 . 강아지를 키우면서 애견미용에 흥미를 갖더니 미용사가 되겠다고 했던 너 . 2 년 가까이 미용학원에 정말 열심히 다녔지 . 새벽까지 미용 기술을 연마하던 네 모습을 보면서 정말 뭔가 해내겠다 싶었다 . 미용대회에서 은상을 받기도 하고 가족들 머리의 커트와 펌은 네가 도맡아서 해주었지 .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네가 갑자기 진로 변경을 하리란 걸 엄마는 예측하지 못했어 . 어려서부터 티브이 의학 다큐를 열심히 보던 네가 정말 간호사가 될 마음을 먹었더구나 . 서점에서 간호사의 자전적 에세이를 사와서 읽는 너를 보며 엄마는 속으로 감탄했단다 . 1 년 가까이 아르바이트에도 재미를 붙여 열심이었던 네가 , 요즘 수학 공부와 일을 병행하느라 아침마다 코피를 쏟는 걸 보며 엄마는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어 . 그렇게 열심히 번 돈을 뚝 떼어 엄마가 평생 쓸 수 있는 안락의자를 선물했을 때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
초등 시절 너는 외국여행을 다녀와서는 항공기 승무원이 되겠다고 공항을 찾아다녔고 , 템플 스테이에 참여하고 나서는 스님이 되겠다고 목탁을 사오기도 했지 .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했을 때 너의 청아한 목탁 소리가 집회현장에 울려 퍼졌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는구나 .
너는 요리도 좋아해서 반찬을 만들어 경비 아저씨께 가져다 드리거나 매년 엄마 생일에 굴을 듬뿍 넣은 미역국을 끓여주었지 . 글로 쓰다 보니 ‘ 이런 아들 있으면 나와 보라 해 ’ 하고 큰소리치던 네 말에 엄마는 새삼 공감하게 된다 . 앞으로 진로탐색도 중요하지만 네가 하는 일 때문에 너의 존재가 귀해지는 게 아니라 , 원래 네 존재 자체가 천하보다 귀하다는 걸 기억해주렴 .
아기 때 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구나 . 손 한번 씻기려 해도 잠시 내 손의 힘이 풀리면 너는 먹이를 잡아채는 날쌘 독수리처럼 주변 물건들을 잡아채 떨어뜨리고 옷을 왕창 적셔서 일순간 난장판을 만들곤 했어 . 청소기와 포클레인 , 오토바이에 대한 끝없는 흠모로 가득했던 어린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 너는 항상 자신의 물건 - 그것도 찾기 난감한 작은 열쇠 , 낙서한 종이 쪼가리 , 전자제품 부속 등등 - 이 어디 있는지 찾아달라고 울먹이곤 했어 . 그래서 엄마가 이 가훈을 생각해낸 거야 . ‘ 애써 찾지 마라 , 이사 갈 때 나온다 .’ 집안에서 잃어버린 건 이사 갈 때 나올 테고 집 밖에서 잃어버렸다면 애초부터 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길 바라면서 말이야 . 잃은 대상이 사람이라면 눈물이 나겠지만 정말 네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꼭 다시 만날 수 있단다 . 저 세상으로 이사 가서라도 만날 수 있어 . 그러니 조금만 아파하렴 . 잃어버린 모든 것은 이사 갈 때 나온단다 .
중학생으로 보낸 3 년간 울고 웃었던 시간이 앞으로 네 삶에 커다란 자양분이 될 거야 . 친구와 함께 제주도 지인 댁을 방문할 계획을 짜기도 하고 , 고교 진학 전에 혼자 뉴질랜드 삼촌 댁으로 여행할 결심을 한 너 . 점점 엄마 품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상을 찾아가는 아들이 정말 자랑스럽구나 . 사랑한다는 말로는 모자란 어미의 심정을 담아 너를 응원하고 축복한다 . 앞으로 살아가며 커다란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기억하렴 . 그 장애물 자체가 너에게 열쇠가 되고 또 다른 문이 되리라는 걸 . 다시 한 번 엄마의 마음을 전할게 . “ 해민아 , 졸업 축하해 ! 태어나줘서 고마워 !”
고양/엄마 정은주 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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