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윤석열 정부 '성공의 피해자' 될 것인가
혁신 위축시키는 독으로 작용
지나친 간섭은 경쟁력 저해
정부 지원이 감독 돼선 안돼
국가 시스템으로 지속성장 이뤄야
김준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
영어에 ‘성공의 피해자(victim of one’s own success)’라는 표현이 있다.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과거 성공을 이끈 방식에 계속 집착할 경우 낭패를 본다는 뜻이다. 과거의 성공이 더 눈부시고 클수록 피해자가 될 위험이 높다.
이 같은 위험을 누구보다도 경계해야 할 주체가 바로 우리 정부다. 해외 경제원조에 의존해 겨우 연명하던 경제를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원조 공여국으로 탈바꿈시킨 주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경계 실패다. 너무나 성공적이었기에 그에 필적하는 대안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일까.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에 대한 불신이 커서일까. 아니면 복잡한 정치적 이유 때문일까. 이유야 어떻든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 정부는 민간의 경제활동에 너무 깊숙이 간섭하고 있고 국민도 정부에 너무나 많은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심각한 정부실패로 각인된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경제 운영과 관련된 정부의 역할 재정립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고 일부 실질적 진전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국민이 변화를 피부로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 더 나아가 정치권의 지나친 경제 간섭이 초래하는 가장 큰 문제는 경제 전반의 위험관리에 있어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시장의 혁신 능력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정부가 구제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시장참여자의 자체적인 위험관리 유인을 약화하고, 이로 인한 위험관리 부실은 사후적으로 정부의 구제를 합리화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가 구제할 수 있는 부실 위험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시장참여자의 도덕적 해이는 경기 과열과 급락, 기업 부도, 경제위기 등의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한다.
인구 고령화를 넘어 인구 감소에 직면한 상황에서 경제 성장을 지속할 유일한 방법은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연구개발 투자, 창의적 교육, 유연한 고용제도, 과감한 규제 완화 등이 강조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자동으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영어 표현을 빌리자면 ‘실행학습(learning by doing)’이 뒷받침돼야 비로소 가능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격언처럼,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해보고 다듬고 고쳐나가는 과정 없이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 기업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 더욱이 대부분 혁신은 실행학습 과정에서 얻어진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 시장의 실행학습 기회를 박탈하거나 제약하는 곳에서는 혁신도 경쟁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가 자유와 민간 주도의 시장경제를 지향점으로 삼은 것은 우리 경제의 미래에 대해 안도감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대통령 국정과제와 신년사에서 노동, 교육, 연금개혁에 대한 의지와 함께 법치주의가 강조된 것 역시 높이 평가할 대목이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 재정립에 대한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당장 2023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살펴보면 수백조원에 달하는 광범위한 재정 및 정책금융 지원 방안이 넘쳐난다. 올해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고 민생 회복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대규모 정부 지원을 탓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시장에 대한 상시적 간섭으로 변질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 예로, 보증 확대 등을 포함한 대규모 정책금융 지원에 일몰조항을 적용해 한시적 지원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으면 어땠을까. 단기적인 정책 효과는 더 높이고 장기적인 부작용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정부가 제시한 미래 대비 체질 개선과도 일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경제 안정과 지속 성장을 이룩하기 위한 근본 해법은 민간과 시장의 충격 흡수 능력과 혁신 역량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정부 역할의 중심이 금전적 지원과 육성 정책보다 자유시장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시스템 디자인으로 이동해야 하는 이유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대표적인 규제 대상인 금융산업의 국제경쟁력이 하위권으로 추락했지만 정부의 보호 없이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K팝과 K드라마가 세계를 휩쓰는 모습을 보며 정부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묘년 정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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