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79] 영화보는 것도 직원 교육
재벌의 1대가 창업이고, 2대는 수성, 3대는 경장(更張)의 단계로 진입하면 이상적이다. 3대에서 경장을 감행할수 있을 것인가? 불행한 경우는 1대 용(龍), 2대 이무기, 3대에서 꽃뱀으로 축소지향의 자손이 나오는 경우이다. 꽃뱀은 무늬는 화사한데 카리스마와 내공이 없음을 의미한다. 꽃뱀이 껍질을 벗으려면 감옥에 2년 정도는 갔다 와야 되는 것 같다. 재벌은 3~4세 체제로 들어갔지만 중소기업은 아직 창업주가 현업에서 일하는 상황이다.
필자가 방점을 찍는 대상은 중소기업 창업주 가운데 조실부모나 인생 파탄이 난 젊은 시절을 겪은 인물이다. 77세의 오너 정 회장을 만나 보았다. 조실부모의 케이스이다. 조실부모를 당하면 최고 경영자 수업료를 일찌감치 선납한 셈이다. 정 회장은 회사 직원들에게 당부하는 5가지 지침이 있다. 1. 독서, 2. 신문 칼럼을 읽어라, 3. 현장 답사를 해라, 4. 사자성어를 많이 써라, 5. 영화를 한 달에 1회는 의무적으로 봐라.
정 회장의 학력은 마산상고 졸업이다. 짧은 가방끈을 보충하기 위해서 독서가 살길이라고 보았다. 사무실에 가보니 ‘한비병법(韓非兵法)’이란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책의 표지나 귀퉁이는 스카치 테이프로 땜빵을 했다. 35년을 읽었으니 그럴 수밖에. 곳곳에 줄이 쳐져 있다. 1985년에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책이다. 무림 세계의 실전 무술을 터득하게 해준 비결서였다. ‘불우한 때의 처세’ ‘측근등용 원칙’ ‘직언 조건’ ‘비서, 측근의 마음가짐’ 같은 제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직원들에게 신문 칼럼을 꼭 읽도록 시키는 이유는 세상 돌아가는 흐름과 관점, 그리고 논리적 의견 개진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장 답사를 해 보아야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있다. 사무실에서는 파악 안 되는 부분이 현장에 가면 눈에 들어 온다. 아울러 여행 기분도 나기 때문에 기분 전환도 된다. 사자성어는 수신(修身)에 관한 문구가 많다. 좋은 문구를 반복해서 노트에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격 연마가 된다. 영화는 왜? 정 회장은 마산중 3학년때 ‘자이안트’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6교시 수업을 빼먹고 영화관으로 튀었던 사람이다. 수업을 빼먹을 때 2층 교실 창문에서 화단으로 뛰어내려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그때 화면에서 보았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미모가 지금까지 눈에 아른거린다고 한다. 정 회장은 직원들이 영화를 보아야 상상력이 생기고, 감성이 확장된다고 생각한다. 회사 내에 영화 관람실을 설치했다는 게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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