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표 '노동·연금·교육개혁' 어디로 가고 있나
'노동 유연성', '노사 법치주의' 강조하며 노동개혁 박차
'교육·연금개혁안' 마련까지 난관 수두룩…방향성 '안갯속'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집권 2년 차를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각 분야에 관련이 있는 이해관계자의 입장과 의견이 다르고, 법 개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국회 의석 과반을 점한 거대 야당과의 협치가 난망한 상황에서 정부 뜻대로 개혁이 추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개혁의 방향성과 로드맵을 살펴봤다.
◆尹 "가장 먼저 노동개혁 통해 경제 성장 견인"
3대 개혁 중 속도가 가장 빠른 것은 노동개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기득권 유지와 지대추구(地代追求, 별다른 노력 없이 이득을 얻기 위해 비생산적이고 부당한 활동에 경쟁적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행위)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며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가장 먼저 노동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구상하는 노동개혁은 수요에 맞춰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꾸고, 노사 및 노노 관계 공정성을 확립하고, 근로 현장의 안전을 개선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직무 및 성과급 중심의 기업 근로 체계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윤 대통령은 "노동 개혁의 출발점은 '노사 법치주의'"라며 "노사 법치주의는 불필요한 쟁의와 갈등을 예방하고 진정으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고용노동부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달 제시한 권고안을 토대로 노동개혁을 추진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밑그림 격인 권고안에는 △근로시간 유연화(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주·월·분기·반기·연 단위로 개편) △임금 격차 해소, 공정성 회복 위한 임금체계 개편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적용 등 사각지대 해소 △노동시장 활력 제고를 위한 고용정책 강화 방안 등이 담겼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신년사에서 "지난해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제안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권고를 실천해나가겠다"며 "노동시장의 핵심적 관심사인 근로시간, 임금체계에 관한 입법안 마련 등 후속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하겠다. 조선업 상생협약을 성공시키고 타 업종으로 확산하면서, 필요한 법·제도 개선과제를 추진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 구상에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의 노동시간 유연화는 '과로사'를 부르는 노동개악이고, 임금체계 개편도 노동개악을 쉽게 밀어붙이는 여건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 원장인 정기호 변호사는 "근로시간 산정 단위를 주 단위가 아닌 더 긴 시간으로 산정하면 가능한 선에서 무한정으로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다"며 "노동시간이 주 60시간 이상이 되면 심근경색 위험이 2배 증가하고 노동시간이 1일 11시간 이상이 되면 심근경색 위험이 2.9배가 증가하며 국제 암 연구소는 야근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는데, 노동자의 건강권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장시간의 연장근로가 조장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정 변호사는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구상에 대해 "사업 또는 직군별로 동의 주체를 세분화해 노동자 전체가 아니라 개편된 임금체계를 받는 직군만을 대상으로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할 수 있도록 개악하자고 한다"며 "동의 주체를 세분화·파편화하면 노동조합의 단결력이 약화하고 대표성도 침해될 뿐만 아니라, 직군별로 갈등이 발생할 유인이 크고, 사용자는 직군을 잘게 쪼개어 지배·개입 여지를 높여 노동조건의 개악을 쉽게 밀어붙일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노동계가 반발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설득 대신 노조 회계 투명성 논란 등을 제기하며 노조를 압박하고 나섰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추진한 더불어민주당이 이보다 많은 시간 근무를 할 수 있게 하는 개혁안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 결국 노정 갈등, 당·정 vs 야당 간 갈등 등으로 올해 노동개혁 입법 추진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 다양성 보장, 산업계 도움 되는 인재 양성 주력 예고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교육개혁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고등교육에 대한 권한을 지역으로 과감하게 넘기고, 그 지역의 산업과 연계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자라나는 미래세대가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다양화하고,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5일 교육부의 2023 업무보고에선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의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 보장이고, 이를 위해 수요자와 공급자가 자유로운 교육 서비스를 선택하는 게 제도상 보장되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또한 디지털 인재를 많이 양산해서 우리 산업계와 각 분야에 공급해야 하는 책임도 교육이 맡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디지털 인재들을 많이 양산해서 우리 산업계와 각 분야에 공급해야 되는 책임을 교육이 맡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교육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산업계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양성하는 쪽으로 교육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은 "이제는 돌봄이라고 하는 것이 교육에 포함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며 "우리가 '유보(유아교육과 보육)통합' 얘기도 오래전부터 많이 나왔지만, 돌봄을 복지라는 차원에서 따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가르치는 개념이기 때문에 돌봄이 교육체계에 편입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업무보고에서 '교육개혁, 대한민국 재도약의 시작'을 주제로 학생 맞춤, 가정 맞춤, 지역 맞춤, 산업·사회 맞춤 등 4대 교육개혁 분야별 핵심 정책에 대해 보고했다.
또한 이 장관은 "국가와 지역 성장의 동력인 교육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지역 교육력 제고를 위해 개혁 과제 법제화를 추진한다"며 "지역에 보다 더 다가가는 교육으로 변화하기 위해 시·도지사-교육감 러닝메이트제(지방교육자치법 및 공직선거법 개정 사안)가 도입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적극 협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교육개혁에 대한 국민 기대감이 높은 만큼 교육 주체들의 우려 또한 있으므로, 교육개혁 과제 추진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현장 의견도 심층 수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새 정부의 교육개혁안이 오히려 경쟁교육을 심화시키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좋은교사운동은 논평에서 "교육개혁은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데, 교육부 업무보고 내용 중에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될 우려스러운 부분이 다수 있다"며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이 혁신의 우선순위인지 의문"이라며 "대학입시 문제를 개혁하지 않고선 디지털 신기술과 AI(인공지능) 기반 코스웨어로 한 줄 세우기 입시 경쟁교육을 계속 해야 한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러닝메이트 제도와 관련해서도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교육감직선제는 교육 자치 구현을 위해 더욱 보완 발전해야 할 제도이지, 교육자치를 훼손하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수 없는 러닝메이트제로 대체되어야 할 제도는 아니다"라며 "사회적 논의와 합의 없이 교육부가 러닝메이트제를 추진하는 것은 성급할 뿐만 아니라 적절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이재랑 정의당 대변인은 6일 국회 브리핑에서 "현 정부 교육 방향의 핵심은 결국 규제를 완화하고 경쟁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지금 한국 교육의 문제가 경쟁이 부족해서 생긴 것인가. (윤 대통령이) 시장자유주의라는 이념적 틀에만 맞춰 온 세상을 바라보니 교육 현장에 들어맞지 않은 정책들만 남발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 가히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대변인은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은 현재 과잉 경쟁 원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질 좋은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질 좋은 교육에 대한 기회는 '만인'에게 허락된 게 아니라 '만 명'에게만 허락돼 있다는 것을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다"며 "적극적인 평준화 교육 정책이 도입되지 않으면 부모의 재력이 교육을 통해 그대로 대물림되는 현 체계는 바뀔 리가 만무하다"고 주장했다.
◆연금, 더 내고 덜 받기? 더 내고 더 받기?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연금개혁에 대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연금 재정의 적자를 해결하지 못하면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기 어렵다"며 "연금재정에 관한 과학적 조사, 연구, 국민 의견 수렴과 공론화 작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국회에 개혁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2018년 국민연금 제4차 재정계산 결과에 따르면 2042년 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2057년이면 적립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세대의 연금지급 불안을 해소하고, 기존 수급자의 적정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선 연금개혁이 시급하다.
이에 국회도 지난해 7월 연금특위를 구성해 국민 여론, 이해당사자 및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연금개혁 방안을 마련해오고 있다.
국회 연금특위는 지난 3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민간자문위원회의 개혁 방안 중간보고를 받았다. 민간자문위는 개혁 방향을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두고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안',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고 그에 맞게 보험료도 인상하는 방안' 두 가지 주장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날 회의에서 김연명 교수는 "(국민연금) 급여 수준을 그대로 두되 보험료율을 인상하자는 쪽과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고 그에 맞게 보험료율을 인상하자는 두 가지 주장이 있는데, 민간자문위는 이 두 가지 안을 병렬적으로 제시했다"며 "최종적으로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인상을) 동시 추진할지는 좀 더 논의를 거친 뒤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더 내는 방향성을 확실히 제시됐고, 받는 부분을 어떻게 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현행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998년 1차 연금 개혁 이후 24년째 9%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8.2%)의 절반 수준이다. 보험료율 인상은 시기의 문제일 뿐 예고된 미래다.
또한 여야는 이날 회의에서 연금개혁의 대원칙을 "적정 노후소득 및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되 미래세대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세대 간, 세대 내 부담의 공정성을 확보하자"고 뜻을 모았다.
민간자문위는 추가 논의를 거쳐 이달 말까지 구체적인 방안이 담긴 연금개혁 초안을 마련해 연금개혁특위에 제출할 예정이다. 재원만 고려하면 '더 내고 덜 받는' 고강도 개혁이 필요하지만, 국민 수용성을 고려할 때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으로 갈 여지도 있는 셈이다.
정부는 연금개혁안을 오는 10월까지 마련해 각계각층의 토론과 분석 등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국민의 의견을 모아나갈 방침이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간사인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여야 합의안을 도출해 모든 국민이 연금을 통해 노후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든든한 연금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전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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