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과다르 수렁’에 빠진 일대일로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등으로 촉발, “중국인 떠나라” 구호까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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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중국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을 푼 이후 폭증하는 코로나 19 환자로 골치를 앓고 있죠.
밖으로는 시진핑 주석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가 말썽입니다. 우방국 파키스탄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해 확보한 인도양 북부 과다르항에서 작년 10월부터 대규모 주민 시위가 계속돼 공사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고 해요.
◇미중 충돌 대비한 전략 수송로
인도양 북부 아라비아해에 있는 과다르항은 중동 산유국의 원유 수출 루트인 호르무즈 해협을 불과 500km 거리에 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동쪽으로는 중국의 앙숙인 인도를 바라보고 있죠.
중국은 2015년 162억 달러를 투자해 과다르항을 남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항구로 개발하고 43년간 직접 운영하기로 파키스탄과 합의했습니다. 여기서 출발해 동북쪽으로 3000㎞ 떨어진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까지 중국·파키스탄경제회랑(CPEC)을 구축한다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죠. 중국은 이 프로젝트 성사를 위해 파키스탄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했고,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직접 방문하는 등 각별히 공을 들였습니다.
CPEC는 사실상 일대일로를 대표하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어요. 중국 입장에서는 미중 충돌로 남중국해가 봉쇄되더라도 중동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계속 들여올 수 있는 전략적 루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항모전단이 이 항구에 들어온다면 인도를 군사적으로 견제하는 것도 가능해지겠죠.
중국은 오는 2030년까지 과다르항 건설과 중국으로 이어지는 도로, 철도, 송유관, 가스관 구축에 총 620억 달러를 투입한다는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분리독립세력 테러사건 속출
하지만 중국이 2016년 정식으로 항구 운영에 들어간 이후부터 이 지역에서는 분리주의 세력의 테러와 주민 시위가 끊이질 않고 있어요. 과다르항이 있는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는 소수민족인 발루치족의 분리독립운동이 거센 지역입니다. 발루치스탄해방군이라는 무장단체까지 있죠. 이들에게는 중국의 파키스탄 정부 지원과 중국·파키스탄경제회랑 프로젝트가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2017년부터 중국 기업이 건설한 호텔에 대한 무장 공격, 주파키스탄 중국 대사를 노린 폭탄 테러, 카라치대학 공자학원 버스 자살 폭탄 테러사건 등이 잇달아 일어났어요. 파키스탄 정부가 3000명의 군 병력을 투입해 중국인 보호에 나섰지만, 테러는 끊이질 않습니다.
파키스탄 당국은 2020년 과다르항 지역 중국인 보호를 위해 주변에 총 20㎞ 길이의 철책을 설치했는데, 이 일로 현지 주민들까지 들고일어났어요. 철책과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로 인해 주민 생활이 크게 불편해진 겁니다. 파키스탄 정부는 철책을 설치하면서 사전에 주민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해요.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도 주민들을 자극했습니다. 대형 저인망 어선을 동원해 어족 자원을 싹쓸이하면서 지역 어민들의 생계가 어려워진 거죠.
◇“발전은커녕 바다와 생계만 잃었다”
이 지역 어부와 근로자 등은 2021년 8월 이 일대 도로를 점거하고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현지 정치 단체와 민권운동가가 주도하고 부녀자, 아이들까지 가세하면서 규모가 커졌다고 해요. 결국 임란 칸 당시 총리가 불법 어로 단속 등을 약속하면서 겨우 불을 껐다고 합니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가 제대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작년 11월부터 다시 시위가 불붙었어요. 과다르권리운동이라는 단체가 중심이 돼 과다르항 출입구, 과다르항과 고속도로를 잇는 연결 도로 등지에서 수백명에서 수천 명이 연좌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검문시설 축소, 이란과의 비공식 국경 무역 제한 완화,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단속 등 40개 항의 요구 사항을 내걸고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경제회랑 건설을 막겠다고도 했어요. “1주일 이내로 중국인들은 모두 떠나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영국 가디언지의 현지 취재 내용을 보면 주민들의 불만을 짐작할 수 있어요. 한 70대 어부는 “과다르항 개발하고 경제 회랑 건설하면 지역도 발전하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결과는 바다와 생계만 잃은 꼴이 됐다”고 했습니다.
◇‘반중의 길’이 된 일대일로
지난 연말 파키스탄 정부는 5인 이상이 모이는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시위대 100여명을 체포했어요. 중국 정부가 현지 중국인 안전과 경제적 이익 보호를 요구하며 압박하자 강경책을 동원한 겁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 1명과 시위대 1명이 사망했고, 취재 중인 기자가 감금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해요.
중국 정부는 그동안 과다르항 개발을 포함한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프로젝트를 일대일로의 모범 사업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해왔죠. 양국에 서로 도움이 되는 윈윈 프로젝트라는 겁니다. 현지 주민들의 이번 시위는 이런 선전이 얼마나 공허한 말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중국 외교부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해요. 외교부 대변인은 작년 11월 이 사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시위가 중국이나 경제 회랑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활동은 아니다”고 주장했습니다. 파키스탄 정부와 현지 주민 간 갈등이라는 주장인데, 실상과 큰 차이가 있는 발언이었어요. 시진핑 주석 역점사업이다 보니 사실을 알면서도 엉뚱하게 둘러댄 겁니다.
일대일로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미얀마 등 가는 곳마다 현지 주민들의 거센 반대 여론에 직면하고 있어요. 중국이 주장하는 ‘공존공영의 21세기 비단길’이 아니라 중국에 대한 반대 여론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반중의 길’이 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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