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 연말의 사면에 대하여 [아침을 열며]

2023. 1. 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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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이명박 전 대통령과 지난 정권에서 권력형 비리로 유죄판결을 받은 여러 사람들을 포함한 1,373명에 대해 특별사면이 있었다.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형 비리 사범들에게 사면·복권의 특혜를 누리게 하는 것은 모순이다.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부패·비리 인사들을 무더기로 사면에 복권까지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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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신년 특사 대상자를 발표한 27일 서울역 대합실에 관련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연말 이명박 전 대통령과 지난 정권에서 권력형 비리로 유죄판결을 받은 여러 사람들을 포함한 1,373명에 대해 특별사면이 있었다. 작년 광복절 특사 이후 이번 정권의 두 번째 특사다. 정부는 "광복절 사면에 포함하지 않았던 정치인·주요 공직자를 엄선해 사면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부여한다"며 "범국민적 통합으로 하나 된 대한민국의 저력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면을 통해 국가 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주고 국민통합을 위한 사면으로는 대상들이 의아하다.

사면권은 사면법에 따라 행하는 국가원수의 헌법상 권한으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통치행위다. 그래서 사면권 자체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사면은 입법이나 재판 과정에서 나타나게 된, 다른 방법으로는 시정할 수 없는 오류를 제거하기 위한 장치이다. 즉 사면은 범죄에 대한 법과 판결의 효력을 교정해 주는 기능을 갖는다. 반면 사면권 행사는 법 적용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적 요청과 권력분립의 원칙을 무시할 가능성을 갖고 있어서, 법치국가적 관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사면권이 원칙 없이 정략적으로 행사되면, 입법이나 사법에 의한 시민의 기본권 침해를 제거해 주는 법의 안전판이 아니라 군주시대 국왕의 시혜적인 권한인 것처럼 여겨지고, 대통령이 강조하는 법과 원칙과 형사사법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형 비리 사범들에게 사면·복권의 특혜를 누리게 하는 것은 모순이다.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도 없다. 이로 인해서 사면권의 본질이 훼손되고 사법부의 권위와 법치국가이념이 시민들의 불신을 받게 될 위험이 있다. 재벌, 비리 정치인이나 부패 공무원에 대한 처벌도 일반인보다 가볍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 쉽게 사면·복권까지 된다면 시민들은 법의 형평성을 의심할 것이며 특권층의 부패·비리 예방도 어려워질 것이다.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부패·비리 인사들을 무더기로 사면에 복권까지 해줬다. 대통령과 가깝게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사면·복권도 공정성에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권력형 비리자들에게 어떻게 국가발전과 국민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말인가.

1948년 사면법이 제정된 이후 사면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2008년, 2012년 사면심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사면심사위원의 명단 공개와 관련되는 사항을 추가했지만 사면 대상자의 요건이나 절차에 대한 규정이 없다. 검찰총장의 신청을 통해 법무부 장관이 상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면은 사법부의 판단을 변경하는 효과를 갖기 때문에 판결 주체인 사법부가 사전에 의견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사면·복권 대상자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사람으로 한정하고, 절차도 엄격하게 강화하여 사면권의 행사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독일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사면 대상자가 4명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면권은 헌법에서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이지만 입법과 사법에 대한 암묵적인 비판이 담겨 있다. 그 안에는 어렵게 수사하고 기소했던 검찰에 대한 비판도 담겨있다. 사면권의 행사가 공정하지 못하고 시민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면 대통령의 권위는 물론 입법, 사법, 검찰 모두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석배 단국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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