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칼럼] 이효리, 에너지 간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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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고 나서야 혹은 떠나보내고 나서야 의미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확실히 부부만 있는 것보다 할머니도 있고 아이들도 있는 것이 화목해 보인다는 이효리가 캐나다에서 본 것은 바깥으로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가족 중심으로 따뜻하게 살아가는, 삶에 충실한 사람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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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에너지를 간직한 삶 꿈꿔
소박한 일상에 충실하다 보면
그 별일 아닌 일들이 변화 이끌어
잃어버리고 나서야 혹은 떠나보내고 나서야 의미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불같은 사랑, ‘나’의 뿌리인 가족, 울타리이자 감옥인 일, 나이 들수록 빛나는 우정, 평생 ‘나’인 줄 알았던 몸의 건강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원할 것 같았던 청춘, 청춘의 방황!
그런데 그녀가 살고 싶다는 평범한 삶은 우리 사회에서는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 마당이 있는 집, 온화한 인격의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울타리, 무조건 믿을 수 있는 배우자, 그와 함께 낳거나 입양해 키우고 싶은 아이들, 그리고 역시 아이들처럼 대접받는 동물들, 무엇보다도 그들과의 뿌리 깊은 교감의 삶, 어느새 그런 삶이 특별한 풍경이 된 것이다.
물론 그런 삶을 향한 동경을 전근대적인 대가족제도에 대한 향수로 읽지 않으리라 믿는다. 핵심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여기저기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는 삶 혹은 상황에 있으니. 그중에 온화한 인격을 가진 어른의 울타리는 삶을 믿고 단단하게 성장하도록 만들어주는 좋은 기반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이효리가 툭, 내뱉은 그 말, “고요히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는 삶”은 오히려 전쟁 같은 삶 속에서 승리하여 얻고 누린 명성과 재물이 불안과 두려움 위에 쌓아 올린 바벨탑일지도 모른다는 각성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산전수전이 고향집으로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믿지 못하고 초초해할 수밖에 없는 적진에서 뱅뱅 도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각 말이다. 그러니 선택할 수 있다면 화려한 삶보다는 따뜻한 삶이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의 현실은 에너지를 간직하게 하지 않는다. 하루도 쉬지 않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내 작은 성취를 부끄럽게 만드는 화면들, 끊임없는 비교, ‘창의’라 쓰고 ‘성과’라 읽어야 하는 업적주의, 편견과 차별의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올가미들, 꿈꾸고 싶은데 꿈꿀 기회조차 없어 꺼내보지도 못한 채 꺾인 의지, 그 악몽과도 같은 시끄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고요히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분석심리학자 중에 로버트 존슨이 있다. 그는 ‘그림자 대면하기’를 권한다. 매일 파티나 하고 지냈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느 날 갑자기 젖소의 젖을 짜는 허드렛일을 하고 싶었단다. 그녀는 베르사유 궁전에 외양간을 짓게 하고 스위스에서 젖소까지 수입하게 했다. 그런데 젖소를 보자 마음이 바뀌었다. 뒤에 있던 하녀에게 네가 짜라, 하며 자리를 뜬 것이다. 그녀의 그림자는 소박하고 소탈한 일상을 통해 삶의 균형추를 맞출 것을 권했지만 그녀는 권위와 통념을 넘어서지 못했고, 그 결과는 우리가 다 안다.
그림자는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허상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허드렛일이라고 우리가 무시하는 그 일들이 연금술적인 변화를 만드는 중요한 일이다.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고 설거지하는 일, 집안 구석을 닦는 일, 시선을 받지 않는 낡은 운동복을 입고 산책하는 일, 최저시급을 받고 알바를 하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처럼 그 일을 즐기는 일, 잠들기 전 30분이라도 차분히 앉아 요가나 명상하기 등등. 그런 일에 온전히 마음을 두다 보면 그 별일 아닌 일이 에너지를 간직하게 만드는 어른의 울타리였음을 알게 되는 날이 온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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