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수 대신 삶 가르치는 ‘마을 방과후 교사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는 곳.”
초등학교 수업이 끝난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에는 ‘학교 일과’를 마친 아이들이 영어학원, 미술학원, 태권도장 등 ‘학원 일과’를 시작하는 대신 찾는 곳이 있다. 친구들과 온전히 쉼과 놀이에 집중할 수 있는 이곳의 이름은 ‘도토리마을 방과후’. 이곳에서 벌어지는 여러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가 오는 11일 개봉한다. 지난 4일 ‘터전’이라고 불리는 방과후 공간에서 만난 대표교사 한은혜씨(48)와 7년차 교사 박상민씨(48)는 “도토리마을 방과후는 아이들에게 집 다음으로 안전하고 행복한 공간”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2017년 시작된 사회적협동조합
간식 그릇 치우며 살림 익히고
토론하며 약속 지키는 법 배워
그저 노는 곳? 돌봄과 교육은 하나
‘도토리마을 방과후’는 공동육아 운동의 하나로 2017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한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교사 5명이 초등학생 57명을 돌본다. 아이들은 학기 중에는 낮 12시부터, 방학 중에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이곳에서 생활한다. 육아에 부모와 사회가 함께 참여하자는 정신에서 시작된 전국의 17개 생활형 마을 방과후 중 하나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수학이나 영어 같은 교과를 학습하는 대신 일상을 사는 방법을 배운다고 한다. 자신이 먹은 간식 그릇을 직접 치우며 살림을 익힌다. 한 예로, ‘다락방을 동시에 이용할 인원을 몇 명으로 할지’를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토론 뒤 함께 정한 약속을 지키는 방식을 배운다. 박씨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어떻게 교육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고 했다.
코로나 지원 배제·경력 불인정 등
사회의 ‘이분법적’ 기준 고발도
한씨와 박씨는 분명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사회는 두 사람을 ‘교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도토리마을 방과후’가 미인가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10년을 일해도 교사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박씨는 “이직한 동료 교사가 키움센터로 갔는데 호봉 인정을 못 받았다”고 했다. 키움센터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초등돌봄시설로, 마을 방과후와 유사한 형태인데도 도토리마을 방과후의 교사 경력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들의 취약한 지위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문을 닫은 학교를 대신해 방과후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아이들에게 긴급돌봄을 제공했다. 2021년 6월 당시 유치원·어린이집·초등학교(1~2학년) 교사와 돌봄인력들은 ‘백신 우선 접종 대상자’로 분류돼 먼저 접종을 했다. 그러나 온종일 아이 60여명과 함께 있어야 했던 두 교사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씨는 “아이들이 등원 중이니 당연히 우리도 접종 대상자일 줄 알았는데, 보건소나 구청에 전화를 해도 모르겠다고 하더라. 사회적으로 우리에 대한 인지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가면 직업란을 체크해야 하지 않나. 거기서 무엇을 눌러야 하나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돌봄과 교육을 칼같이 분리해서 보는 시선도 이들을 그림자 취급하는 요인이다. 박씨는 “(사회에) 돌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것, 교육은 고차원적인 것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돌봄이 아닐까”라고 했다.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해서 ‘그저 노는 곳’이기만 한 걸까. 한씨는 마을 방과후를 ‘노는 곳’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을 향해 “아이들도 다양하듯이 돌봄기관의 다양성도 인정해주면 좋겠다”며 “방과후 돌봄 형태를 획일화하기보다는 각 기관의 성격과 색깔을 존중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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