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만나다] 김훈 작가 “보수로 분류되는 내게 산업재해란…”

이재석 2023. 1. 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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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매주 이 시간 함께하는 '뉴스를 만나다'입니다. 소설 '칼의 노래', '남한산성' 그리고 최근에는 '하얼빈'까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입니다.

김훈 작가를 오늘(8일) 만나봅니다.

그런데 오늘은 작품 얘기가 아니라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김훈 작가는 수년 전부터 일터에서 일하다가 죽거나 다치는 산업재해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고 여러 칼럼이나 단체 활동으로 우리 사회의 경각심을 환기해 오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 얘기를 주로 해보겠습니다.

반갑습니다.

하얼빈이 지난 8월에 나왔던 걸로 기억을 하고요.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답변]

네 고맙습니다.

[앵커]

지금은 그럼 다른 작품을 집필하고 계십니까.

[답변]

당분간 쉬고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나 뭘 좀 해보려고 그러는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앵커]

'하얼빈'뿐만 아니라 작품을 내실 때 뉴스 스튜디오에 간혹 나오셔서 그 작품과 관련된 얘기는 하셨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만, 오늘 저희가 모신 거는 앞서 제가 말씀드린 대로 산업재해 문제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돼서 얘기를 좀 해보려고 초대를 했습니다.

근데 그동안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거의 초대에 응하시지 않으셔서 혹시 어떤 이유가 있었습니까.

[답변]

네, 이유가 있었죠.

이 산업재해나 인간의 생명의 문제에 대해서 평생 동안 정열을 바쳐서 헌신해 온 지도자나 젊은 활동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뒤늦게 그 문제를 알고 참여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제가 이런 문제에 있어서 어떤 이 사회의 지도자인 것처럼 비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숨어서 글을 쓰는 건 했지만 이렇게 공개된 방송에 나오는 일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럼 오늘은 왜 나왔냐 하면 그동안, 지난 1년 동안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이 돼 있었잖아요.

그것이 결국 거의 이제 무력화돼 가지고 사문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고 이제는 좀 할 말이 있으니까 할 말을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서 나왔습니다.

[앵커]

지금 작가님께서 공동 대표로 계신 곳이 2017년에 결성된 '생명안전시민넷'이라는 곳이죠.

지금 중대재해처벌법 얘기를 하셔서 관련 질문을 제가 좀 드리자면 말씀하신 대로 지난해 이제 중대재해처벌법이 처음 시행이 됐는데 여전히 사망자가 많았고, 그 숫자가 그전과 비교했을 때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다고 보십니까.

[답변]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제 지난 1년 동안 아무 성과가 없었죠.

중대재해법이 처음 제정될 때 시민사회에서 기대했던 것은 그것이 어떤 예방 효과를 가져오기를 바랐던 거예요.

최고경영자를 처벌하는 것보다도.

전혀 예방 효과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 법을 적극적으로 적용을 안 했기 때문이죠.

기업들은 안전에 투자를 해가지고 재해를 줄이는 데 노력하지 않고 자기네들의 법률 비용을 늘렸어요. 변호사들을 고용해가지고.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오래전부터 대기업이 국민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신앙이 있어요.

아주 신앙처럼 굳어져 버렸죠.

물론 거기에는 어떤 경제적인, 경제적으로 타당한 논리와 합리성이 있을 것입니다.

근데 그것을 신앙화해서 인간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한다면 그것은 미신이 되는 겁니다.

그것은 모든 생산 활동이나 가치의 창출이나 모든 유통에 있어서 대자본과 기업이 이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것이고 노동은 거기에 종속적이고 부수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이렇게 만연되게 그 믿음을 전파시켜 놓은 거예요.

이런 토대에 의해서는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그런 이유가 있고 둘째는 이 산업재해가 누적된 것이 너무나 오래됐어요.

그래서 그것이 일상화돼버린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거기에 대한 경각심이 없고 우리는 본래 이런 사회다,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본래 그러함이다, 우리는 이런 데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일상이다, 이런 생각이 굳어져 버린 것이죠.

그러니까 그 문제에 대한 감수성을 상실한 거예요.

[앵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렇게 시행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만, 현 정부에서는 어찌됐건 이 부분을 좀 수정해 보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처벌보다는 자율 규제 쪽에 초점을 맞추겠다.

이게 노동부 쪽의 입장인 것 같아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지난 오랫동안 이것은 사실 기업의 자율에 맡겨져 있었어요.

그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이죠.

이것을 기업의 자율에 맡기겠다.

이런 발상을 하는 것도 우리가 이렇게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거예요.

근데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려면 기업 쪽에서 주장하는 것은 법인세를 낮춰야 된다, 상속세를 낮춰야 된다, 고용을 유연하게 해야 된다, 이런 것이죠. 세무조사를 좀 완화해야 된다, 이러면 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된다는 거예요.

그 말에도 어떤 경제적인 타당성은 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년에 8백 명 이상이 죽어가는 이 사태에 대해서 여기에 대한 책임을 면탈해야만 이게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된다는 것은 승복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럼 그런 죽음을 우리가 대해서 책임을 면탈하고 그런 죽음의 바탕 위에서 그런 죽음의 바탕 위에서 기업의 이윤을 건설하고 그러면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면 우리가 일자리가 늘어나고 무슨 월급이 올라가서 좋은 나라가 된다는 거잖아요.

그럼 그런 죽음의 바탕 위에서 우리가 기업의 이윤을 건설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월급을 올려서 살아야 된다면은 그것은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죠.

[앵커]

작가님의 어떤 작품관이랄까 이거를 엿볼 수 있는 인터뷰를 제가 과거에서 한번 좀 찾아봤는데 이거는 '생명안전시민넷'에 참여하기 전에 하셨던 말입니다.

"나는 내 글로 여론을 형성하겠다는 목표나 허영심이 없다" 이렇게요.

[답변]

지금도 없어요.

[앵커]

지금도 마찬가지 입장이시고.

그런데 산업재해문제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보면은 그동안의 활동이 적극적인 여론 형성을 위해 하신 게 아닌가라고 볼 여지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상호 모순되는 모습인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설명을 좀 주시겠습니까.

[답변]

모순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정말로 이런 일로 여론을 형성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나는 그것이 모순이 된다 하더라도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이렇게 논리 정연하게, 정연하게 살 수는 없어요.

나의 생애는 이런 것이다.

이런 노선으로 가겠다는 것을 정해놓고 그 길로 갈 수는 없습니다.

나는 내 생명의, 생명의 충동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다만 그 방향이 모순이 됐건 논리 정연하건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방향이 선하고 옳은 것이기를 난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앵커]

일각에서는 아마 동의를 안 하실 것 같은데 김훈 작가님을 굳이 분류하자면 보수와 진보 중에서 보수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들을 하곤 합니다.

[답변]

예, 그렇게 분류가 되어 있어요.

[앵커]

그렇게 분류들을 많이 하죠.

물론 그런 분류 자체를 또 좋아하실 것 같지 않습니다만.

그런데 그렇게 보수 쪽에 관심이 있고 그렇게 분류가 되는 분이 이런 노동문제, 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게 어떻게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답변]

그것은 아주 잘 어울리는 얘기입니다.

나는 보수적인 사람으로 분류되는데 나는 보수주의자는 아니에요.

이것만이 원칙이고 이것만이 진리의 표준이니까 다 여기다 맞춰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가령 보수, 보수주의자라면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게 사회의 안정이잖아요.

사회의 안정과 질서, 우리 사회의 공통된 정서의 편안함.

이런 것을 지향하는 게 보수주의자의 길이죠.

그런데 산업재해로 일년에 죽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이 사회는 안정되고 편안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것은 반드시 보수주의자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물론 진보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도 이 문제에 아주 지대한 관심이 있겠죠.

그러나 이것이 보수주의자의 가치를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생각은 전혀 모순이 없다고 생각해요.

[앵커]

산업재해 문제를 가지고 혹시 앞으로 장편 소설 같은 걸 써 보실 생각은 없는지 그것도 좀 궁금합니다.

[답변]

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나는 그런 피해자, 사망자, 근로자들을 현장에서 이제 그 고생하시는 근로자들의 고통을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육화된 언어로 표현할 그 역량이 아직 안 되는 거 같아요.

아무리 내 생각이 있고 뜻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할 수단을 확보하지 못하면 못하는 거예요. 우리는 말하자면 장인이기 때문에 표현 수단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거예요.

표현 수단이 없으면 100% 실패하는 겁니다.

이런 문제를 내가 다루기에는 아직도 언어가 나한테 축적되지 않은 것 같아요.

[앵커]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다음 작품은 하여튼 빨리 좀 읽고 싶다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훈 작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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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석 기자 (jaeseo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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