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미세먼지 공습…‘무방비’ 야외 노동자

박하얀·전지현 기자 2023. 1. 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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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새해 첫 주말인 7~8일, 전국이 황사와 미세먼지에 갇혔다.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는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졌다.

고농도의 미세먼지는 환경미화원이나 배달업 종사자, 물류·운송, 건설 노동자 등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피하고 싶어도 피하기 어려운 노동 환경이다.

배달업·물류·건설 노동자들
마스크 하나로 버티며 근무
“위험수당 신설해야” 요구도

서울 용산구에서 만난 환경미화원 A씨(68)는 이날 오전 6시부터 거리를 청소했다. 휴식 시간을 제하면 하루 6시간을 밖에서 일하는 그는 KF(미세먼지 등 유해물질 입자 차단 성능 지수) 마스크가 아닌 일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A씨는 “회사에서 주는 게 이것이라 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2시간 일하고 1시간 남짓 쉬는 공간에 씻을 수 있는 시설은 없다. A씨는 “미세먼지 때문에 눈이 침침하다”고 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목이 아프고 눈이 따갑습니다. 그래도 일을 안 나올 수는 없지 않나요.”

용산구의 한 골목에서 배차 콜을 기다리고 있던 배달 라이더 한상원씨(49)는 추위와 먼지를 막는 임시방편으로 넥워머를 택했다. 마스크를 끼면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아 업무에 지장이 생겨서다.

쿠팡 배송기사 B씨는 “회사에서 예전부터 (일반)마스크를 비치해놓았으나 일하다 보면 마스크 안에 수분이 차서 따로 산 마스크를 여러 번 갈아 끼운다”고 말했다. 그는 “봄처럼 황사가 심할 때 눈이 따가워서 회사에서 고글이라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은 ‘미세먼지가 많으니 운행에 주의하라’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문자를 라이더들에게 보냈다. 라이더들은 지침 하달에 그칠 것이 아니라, 미세먼지나 혹한, 폭염 등 날씨에 따른 위험수당을 신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통상 하루 10시간가량을 실외에서 일하는 건설 현장 노동자들도 미세먼지에는 속수무책이다.

중구의 한 공사장에서는 몇몇 인부들이 마스크 없이 맨 얼굴로 비계에 올라선 채 작업 중이었다. 현장 관리감독자는 기자와 만나 “공사 일정이 잡혀 있으니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양근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미세먼지가 심하면 보통 마스크를 지급하는 정도이고 현장 작업을 중지하지는 않는다”며 “물을 뿌리기도 하는데 겨울에는 얼어버려 이마저도 못한다”고 했다. 용산구의 한 종합병원 주차 관리 요원 전모씨(47)는 사무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전씨 업무는 하청에 하청으로 이뤄지는데, 그를 고용한 업체에서는 미세먼지 농도가 치솟아도 마스크 지급이나 업무량 감축 등의 조치는 없다.

노동부 가이드라인 있지만
대부분 권고에 그치는 수준

고용노동부의 미세먼지 주의보·경보에 따른 야외 노동자 보호조치 가이드라인을 보면,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면 사업주는 노동자에 대해 미세먼지 농도 정보 제공, 마스크 지급 및 착용, 민감군(폐·심장질환자, 고령자 등)에 대한 중노동 단축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미세먼지 경보가 내려지면 이에 더해 적절한 휴식, 일반 노동자의 중노동 일정 조정 또는 단축이 이뤄져야 한다. 노동부는 사업주가 호흡용 보호구를 지급해야 하는 조건에 미세먼지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권고에 그치는 수준인 데다 관리·감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실태 조사를 하고 나서 근무 시간 조정 등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들을 노동부가 찾아야 한다”고 했다.

박하얀·전지현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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