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경원 저출생 대책’ 번복 소동, 2년차 정부 맞나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8일 저출생 대책으로 제안한 헝가리식 ‘대출 탕감’ 방안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켜 유감스럽다”고 물러섰다. 지난 5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소개한 해외 정책을 다음날 대통령실이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선을 긋자 바로 몸 낮추며 거둬들인 것이다. 장관급 인사의 말이 내부 조율 없이 튀어나오고, 대통령실이 어깃장 놓고 철회시키는 일이 또 일어났다.
논란이 된 헝가리식 저출생 대책은 ‘결혼 시 4000만원을 대출해주고 첫 자녀 출산 시 무이자 전환, 둘째 출산 시 원금 일부 탕감, 셋째 출산 시 전액을 탕감해주는’ 제도이다. 헝가리에서 효과를 본 정책이고, 국내 시행 시 12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위원회 쪽 설명도 더해졌다. 나 부위원장은 “신혼부부 주택·전세 자금 지원이 불충분한 측면이 있다”며 좀 더 과감하게 원금 일부를 탕감할 부분은 없나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내부 검토 중인 해외 사례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다음날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정부 정책과 무관하다”고 일축했고, 나 부위원장은 발언 사흘 만에 “당장 추진할 계획이 아니다”라며 물러섰다. 대통령 직속 조직의 아이디어를 대통령 참모가 공개적으로 묵살·진화한 꼴이다. 중요하고 민감한 저출생 대책이 사전 조율 없이 불쑥 나왔다가 이내 ‘없던 일’로 번복되는 행태가 한심스럽다.
이런 국정 혼선이 처음도 아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일 대기업의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15%까지(올해 투자증가분은 25%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불과 열흘 전 여야가 합의한 ‘8% 인상안’을 대통령이 확대하라고 하자 추가 감세안을 내놓았다. 여야 합의안은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한 ‘10% 인상안’보다도 낮다. 당시 기재부는 건전재정을 외치며 연구개발비를 합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세액 공제를 하고 있다고 버티더니, 재계 반발과 대통령 지시에 방침을 바꿨다. 추 부총리는 4조원이 감세되고 입법 절차도 다시 밟아야 할 정책을 뒤집고도 아직 국민과 국회에 사과 한마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언한 ‘책임장관제’도 형해화되고 있다. 이 약속은 작년 6월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주 52시간제 개편안’을 대통령이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뒤집을 때부터 흔들렸다. 화물연대 파업 당시 협상에 나선 국토교통부 차관은 대놓고 “대통령실에 보고할 뿐 아무 교섭권이 없다”고 실토했다. 그러다 경제 수장의 국회 발언은 열흘 만에 거짓말이 되고, 저출생 대책 수장이 논쟁해보자는 아이디어까지 봉쇄·번복되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실 대응에 나 부위원장의 여당 대표 출마를 막으려는 ‘친윤 주자 교통정리’로 보는 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설익은 정책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내부 조율이 무너진 국정은 국민 불안과 혼선을 높인다. 대통령실의 만기친람이 도진 게 아닌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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