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우주패권 뺏길라”…낡은 국제우주정거장 지키기 힘 쏟는 미국
중국은 작년 ‘거주·우주 실험’ 가능한 톈궁 완성해 도전 예고
미, 2030년 새 우주정거장으로 대체까지 폐기 결정 쉽지 않아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허공에 떠 있는 우주선의 동체에서 무수히 많은 물방울이 흩어진다. 조금씩 졸졸 새는 수준이 아니라 분무기를 사용해 넓은 범위에 다량으로 뿌리는 것 같은 모양새다.
이 장면은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붙어 있던 러시아 우주선인 소유즈 MS-22에서 지난달 15일(미국시간) 냉각수가 갑자기 누출되는 모습이다.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물체가 MS-22 동체와 충돌하며 지름 0.8㎜의 작은 구멍을 낸 것이다.
냉각수 유출로 MS-22 내부에서 일정하게 온도를 유지하는 시스템이 정상 작동할지 장담하기가 어려워졌다. 우주에선 햇빛이 없는 곳은 영하 100도, 햇빛이 비치는 곳은 영상 100도를 훌쩍 넘긴다. 이 상태로는 유인 비행을 실행하기 어렵다.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 대체 우주선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대로 놔두면 ISS에 체류 중인 우주비행사 7명 가운데 3명은 지구로 돌아올 길이 없다.
그런데 ISS에서 일어난 비상 상황에 대응해 긴밀히 협력하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과 러시아의 속내는 사실 복잡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 제재에 항의하며 ISS 운영에서 발을 뺄 방침을 지난해 밝혔고, 여기에 미국이 강력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건 중국이다. 중국은 독자 우주정거장인 ‘톈궁’ 건설을 지난해 말 완성했다. ISS 운영을 주도하는 미국의 영향력이 러시아의 이탈로 줄어들 가능성이 생기면서 중국이 달과 화성에 이어 지구 궤도에서도 미국에 우주 패권 경쟁을 걸어올 공산이 커지고 있다.
■ ISS 운명 두고 미·러 갈등
2010년대까지만 해도 지구 궤도에서 각종 실험을 하고, 인간을 장기 체류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갖춘 건 미국과 러시아뿐이었다. 인류 최대의 우주 구조물인 ISS를 두 나라가 이끌며 2000년부터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도 ISS 운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건 미국이었다. 미국은 ISS 운영 비용 대부분에 해당하는 연간 약 30억달러(3조7900억원)를 부담한다. 러시아는 약 3억3000만달러(4160억원)를 낸다.
중국은 2011년에 시험용 우주정거장 ‘톈궁 1호’를 지구 궤도에 띄웠다. 하지만 덩치부터 차이가 컸다. ISS의 길이는 108m, 톈궁 1호는 10m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국이 지난 10여년 새 완전히 달라졌다. 2021년부터 모듈을 지구 궤도에 올리더니 지난해 말 우주정거장 ‘톈궁’을 완전히 조립해 운영에 들어갔다. 톈궁은 길이가 37m다. ISS에 비해선 3분의 1 수준이지만, 시험용 우주정거장이었던 톈궁 1호보다는 4배 가까이 길다. 톈궁에선 ISS에서처럼 거주와 우주 실험이 모두 가능하다.
이처럼 중국이 지구 궤도에서 본격적인 우주정거장을 가진 세계 3번째 국가로 부상한 상황에서 최근 러시아의 태도는 미국의 속을 타게 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 제재에 항의하며 지난해 5월 ISS 운영에서 빠지겠다고 밝혔다. 그 뒤 미국과의 조율을 통해 2028년까지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정리되는 흐름이지만, 태도가 바뀔 가능성은 상존한다. 지난해가 아닌 이전에도 러시아는 ISS 철수 의사를 밝힌 적이 있어서다. 미국은 2030년까지는 ISS를 운영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러시아가 ISS에서 맡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러시아는 ISS 동체에 부착된 우주 화물선 ‘프로그레스’의 엔진으로 ISS가 고도 약 400㎞를 유지하게 한다. 프로그레스가 없어지면 중력과 대기의 저항으로 ISS는 지상으로 추락한다. 미국은 만일을 대비해 민간기업 우주선으로 고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역할을 정확히 대체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 아르테미스 계획과 연계…중 견제
ISS는 임무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은 낡은 장비다. 1986년부터 운영된 옛소련의 우주정거장 ‘미르’는 발사된 지 15년 만에 폐기됐다. 대부분의 다른 우주정거장은 미르보다 수명이 짧았다. ISS에서도 크고 작은 고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이 ‘ISS 지키기’에 힘을 쏟는 이유는 뭘까.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ISS를 국제정치적인 영향력을 유지할 수단으로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을 의식한 행보라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추진 중인 ‘아르테미스 계획’과 연계해 지구 궤도를 활용할 계획을 짜고 있다. 아르테미스 계획은 2025년 달에 인간을 재착륙시키고, 2020년대 말에 상주기지를 짓는 게 목표다. 궁극적으로는 달에서 광물을 채굴하거나 우주선 터미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서 ISS를 고쳐 쓰면서 수명을 연장해야 할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이 교수는 “달과 통신을 원활하게 하려면 중계 장치를 우주에 띄워야 하는데, 이때 지구 궤도에 있는 우주정거장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역시 2020년대 말에 달에 기지를 구축하려는 계획이 있는 만큼 미국은 자신들이 선점한 기술력과 인프라를 무기로 우주 패권 경쟁에서 선두를 내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미국이 ISS를 유독 2030년까지 유지하려는 건 그때쯤 미국 민간기업이 참여하거나 주도하는 새로운 우주정거장이 나와 ISS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ISS 폐기 시점을 너무 당겼다가는 중국이 지구 궤도에서 우주정거장을 운영하는 유일한 나라인 시기가 있게 되고, 이는 미국의 전략과는 맞지 않는다.
■ 상업적 가치 올라…“달 정거장 참여를”
미국이 ISS 운영에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또 있다. 최근 ‘우주경제’가 각광을 받으며 ISS의 상업적인 가치가 재조명받고 있어서다. 핵심은 무중력이다. 반도체는 표면에 불순물을 첨가해 생산자가 원하는 전기적인 성질을 만든다. 그런데 무중력 상태에선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에서보다 불순물이 골고루 퍼진다. 반도체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무중력에선 줄기세포가 빨리 자라기 때문에 생산성을 높여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 무중력에서만 나타나는 화학반응을 이용해 암이나 골다공증 등에 대응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은 20여년 전 ISS 건설 당시 참여를 모색했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무산됐다. 이 교수는 “한국이 ‘루나 게이트웨이’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나 게이트웨이는 지구가 아니라 달을 도는 우주정거장이다. 아르테미스 계획의 일환으로 구축될 예정이다.
루나 게이트웨이는 월면 기지에 물자를 보급하거나 지구와 달을 잇는 중간 기착지 기능을 할 예정이다. 화성 등 먼 우주로 나아가는 전진기지 역할도 맡는다. 이 교수는 “미국이 아르테미스 계획 추진 과정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달에서의 통신과 에너지 조달 문제”라며 “우주인터넷 등 한국이 가진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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