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덕담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싶다

2023. 1. 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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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상임자문위원·전 언론인

우리는 늘 이맘때 '희망찬 새해'라는 덕담을 주고 받으며 한 해를 시작한다. 그러나 올해 그런 덕담을 주고 받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국내외적 상황이 너무 암울한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11개월 째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이로 인한 곡물 등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 인상으로 전 세계가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다. 인플레 억제를 위한 각국의 고금리 정책은 경기침체를 불러 오고, 제3세계에서는 외환위기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미중 대결도 그 끝이 안 보인다.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IRA)법 등에서 보듯 노골적인 자국 우선 경제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 '너 죽고 나 살자'식으로 나가고 있다.

한반도는 북한의 핵무장 고도화, 잇단 미사일 발사, 드론 침투 등에서 보듯 불안정한 상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전쟁 발발 위험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좌파는 북한의 핵무장이 우파나 미국의 대결 정책에서 비롯 된 북의 자위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북한이 절대 남한에 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통일 되면 우리는 핵무기를 갖게 돼 북한의 핵 소유가 나쁘지 않다고도 한다. 물론 우파는 이에 반대 논리를 편다. 안보문제도 진영논리가 판단의 기준이다. 새해벽두부터 너무 암울한 이야기만 한 것 같다. 김정은이 아무리 정신 나간 사람이라 하더라도 '너 죽고 나 죽자'고 덤비지는 않을 것으로 자위해 본다. 그러나 우발적으로 일어난 조그만 사건이 종종 전면전으로 비화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남북한처럼 적대적 긴장관계에 있는 지역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해리스 전 주한 미 대사는 지난 3일 워싱턴타임스가 주관한 모임에서 "제재 완화, 핵무기 보유, 한미동맹 약화, 한반도 지배가 북한의 일관된 노선"이라고 주장했다. 내부적으로는 국론 분열, 야당과 윤석열 정권의 첨예한 대립,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정쟁, 이태원참사 등으로 여야는 공존이 아니라 원수처럼 대결하고 있다.

경기침체와 고금리, 인플레, 수출 부진 등으로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양극화 또한 점점 심각해지고, 출산율 저하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없어질 정도의 위험 수준이다. 상황이 이처럼 엄중하지만 겨우 6개월 된 윤 정권 퇴진 운동까지 벌어지는 등 진영 갈등은 나라를 두 조각 낼 정도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 내 것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지금 세계는 '반도체 전쟁'이 소리 없이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2020년 평균 기준)나 돼 우리경제의 사활이 걸렸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은 지원은커녕 재벌이라는 이유로 발목잡기가 더 많았다. 국회에서 뒤늦게 반도체 지원법이 통과됐지만 미국의 지원책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투자에 대한 세액 감면이 6%에서 8%로 겨우 2%포인트 늘어났을 뿐이다. 정부가 다시 이를 최고 25%까지 확대하겠다고 나섰지만 국회문턱은 민주당이 지키고 있다. 반면 법인세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차감 전 순익 중에서 삼성전자의 법인세 비중은 25%다. 우리의 경쟁기업인 대만의 TSMC는 10%, 미국 마이크론은 7%다. 미국은 더 나가 대규모 지원책으로 한국, 대만의 미국내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그 결과 삼성과 TSMC는 미국에 수백억 달러를 들여 공장을 짓고 있다.

만년 흑자이던 국제수지도 위험하다. 아직 전체적으로는 흑자이지만 지난해부터 적자를 기록하는 달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수입가격인상이 큰 이유지만 대 중국 무역 흑자 감소 내지 적자도 원인 중 하나다. 수출은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대들보다. 수출이 무너지면 우리 경제도 무너진다.

물가는 올라 서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돈은 시중에 많이 풀려 차고 넘친다. 대출이자는 엄청나게 올랐다. 부동산 폭등 시기에 대출로 집산 사람들은 깡통 집에 살게 됐다. 반면 강남의 아파트 촌에는 외제차가 국산차보다 많다. 국산차도 중대형 고급 차의 인기가 높다. 일본에서 많이 보는 경차는 인기가 없다. 골프장은 만원이다. 양극화가 가져온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조선일보 여론 조사(2023년 1월3일 보도)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64.3%가 '나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은 국가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 더 관심이 많다'고 응답했다. 국론 분열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노동·연금·교육 개혁 등도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국회문턱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퇴진을 주장하는 민주당이 윤 정부의 치적이 될 개혁에 찬동할 리가 없다. 서로 원수처럼 상대를 보는 분열된 국론으로는 이 같은 국내외 난국을 헤쳐나갈 수가 없다. 정치권이 앞장서야 문제가 풀린다. 그렇지 않으면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한 남미의 전철을 밟게 된다. 내년에는 '희망찬 새해'라는 덕담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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