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이슈&포커스] 다시뛰는 원자력 `R&D 심장부`… "안전·경제성 두 토끼 잡을 것"
수소경제 대비 초고온 헬륨루프도… "올해부터 수소생산 본격 연구"
르포-원자력연구원, 스마트·초고온가스로 실험실
지난 4일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 '대한민국 원자력 R&D 심장부'의 실험실을 오가는 연구자들의 바쁜 발걸음에서 활기가 느껴졌다. 지난 5년간 원자력 침체기를 보낸 원자력연구원은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선언한 윤석열 정부 들어 새롭게 각오를 다지고 있다. 미래형 원전과 차세대 초소형 원자로 개발, 한국형 소형 원전 '스마트' 수출을 통해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는 각오다. 전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원자력연 출신의 주한규 서울대 교수가 새 원장으로 취임해 미래 지향형 원자력 연구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해외수출 위한 소형 원전 '담금질'= 원자력연은 지난 5년간 주춤했거나 축소된 미래형 원자로 개발을 올 들어 재개했다. 그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출입증을 발급받아 정문에서 차로 5분 여를 달려 'SMART-ITL(스마트 종합효과 시험장치) 전용시험동'에 도착했다.
SMART는 원자력연이 2012년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한 300㎽ 이하 규모 소형 원자로다. 노심과 증기발생기, 가압기, 원자로 냉각재펌프 등 주요 기기를 하나의 원자로 압력용기에 담아 안전성과 경제성을 높인 게 특징으로,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수출 전략형 원자로'다.
시험동 1층에 들어서자 7층 짜리 건물에 맞먹는 높이 30m의 녹색 철 구조물에 각종 배관들이 복잡하게 이어진 '스마트-ITL'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제 스마트 원자로의 주요 계통을 7분의 1로 축소한 것으로, 성능과 안전성을 종합 검증하기 위해 2012년 완공됐다.
이태호 원자력연 혁신원자력시스템연구소장은 "스마트-ITL은 실제 스마트 원자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고 상황을 구현했는데, 현존하는 소형 원자로 시험장치 중 세계 최대 규모"라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스마트 표준설계인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스마트-ITL 덕분이었다"고 밝혔다.
원자력연 연구진은 해외 수출을 위해 안전성과 전기출력, 노심손상 빈도 등을 모두 기존 스마트보다 향상시켜 개발한 '스마트100'에 대한 성능과 안전성도 지난해까지 스마트-ITL를 통해 검증했다. 이어 스마트 100 표준설계인가를 받기 위해 그 시험 결과와 데이터를 원자력 규제기관에 제출한 상황이다.
원자력연은 스마트100를 앞세워 글로벌 소형원자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장 빠른 성과가 기대되는 곳은 캐나다 앨버타주로, 스마트 실증로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인도, 필리핀 등 소형원전 잠재 수요국가를 대상으로도 수출을 타진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인구 10만명 이하 소규모 도시에 스마트를 지어 전력생산(10만㎾)과 해수담수화(하루 4만톤)를 동시에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원자력연은 스마트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스마트100에 혁신적 기술을 도입해 안전성과 경제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차세대 스마트'와 올해부터 개발을 본격화하는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를 통해 소형 원전시장을 주도하겠다는 구상이다.
◇탄소중립·수소경제 대비 '초고온가스로' R&D 탄력= 스마트-ITL 시험동 옆에는 초고온가스로(VHTR) 실험을 위한 '초고온 헬륨루프' 실험장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장치는 원자력을 이용해 950℃ 이상의 열을 얻은 뒤, 이 열로 물을 분해해 대량의 수소를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VHTR의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한 것으로, 2011년 구축됐다.
초고온가스로의 열교환기 등 1차 계통, 2차 계통, 부속 계통 등 주요 계통을 원래 출력 대비 200분의 1 수준으로 축소해 만들었다. 특히 슈퍼 알로이(철, 니켈, 코발트 계열의 특수합금) 등 초고온가스로와 동일한 재질을 사용하고, 우라늄 대신 전기를 이용해 초고온가스로의 실제 운전 온도인 950℃와 80기압을 구현한 세계 유일의 헬륨 기반 폐쇄형 실험장치다.
김찬수 원자력연 원자력수소연구실장은 "헬륨루프를 활용해 현재 750℃ 고온가스로 개념설계가 가능한 수준의 기술을 확보했고, 가스로의 핵심 장비인 '인쇄기판형 열교환기'에 대한 성능시험, 900℃ 초고온 시험에도 성공했다"며 "앞으로 초고온시스템 성능평가, 초고온 재료 성능검증, 초고온 연계 수소생산 등 요소기술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초고온가스로는 헬륨 기체를 냉각재로,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하며 사고 발생 시 공기 순환만으로 원자로의 열을 식힐 수 있어 안전성이 높은 게 강점이다. 기존 원자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사용후핵연료를 발생시키는 장점도 있다.
원자력연은 지난 2004년부터 초고온가스로를 연구개발해 설계코드, 초고온 시험기기·재료, 피복입자 핵연료, 요오드-황(SI) 열화학 공정 등 핵심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초고온가스로에 쓰이는 삼중미세피복입자 핵연료(TRISO)도 개발했다. 이 핵연료는 직경 0.5㎜ 내외의 우라늄 연료를 삼중으로 감싼 직경 0.9㎜ 크기로, 핵분열을 통해 발생하는 방사성물질을 차단해 외부 누출을 막는다. 최대 1800℃까지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하는 화성탐사용 유인우주선의 핵연료 후보로도 검토되고 있다.
원자력연은 10년 이상 투자해 초고온가스로 관련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도 전 정부의 탈원전 기조 때문에 수년간 관련 R&D를 사실상 접어야 했다. 최근 세계 각국이 탈탄소와 친환경 에너지 확보, 수소시대 개막을 위해 원자력을 재조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5년 '원자력 암흑기'가 없었다면 우리 원자력 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훨씬 큰 조명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김찬수 실장은 "원자력을 활용해 초고온 열과 수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초고온가스로는 석유화학, 제철 등 탄소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우리나라 주요 산업의 탄소중립 실현에 가장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미래형 원자로"라며 "올해부터 헬륨루프 실험장치를 이용해 6㎾ 이상의 고온 수전해를 통해 수소를 생산하는 연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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