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칼럼] 정권장악을 위해 착취당하는 호남

한겨레 2023. 1. 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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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그렇게 해서 지난 수십년간 호남에 굳건한 뿌리를 내린 게 바로 ‘일당 독재’다. 영남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국가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은 채 단기적 탐욕에 눈먼 중앙정부가 지방소멸을 부추기는 정책을 펴도 그 흔한 시위 한번 하지 않는 게 ‘일당 독재’ 지역들이다. 견제와 경쟁이 없는 곳에서 경제인들 잘될 리 만무하다.
제8회 지방선거일인 지난해 6월1일 광주 남구 한 태권도장에 마련된 진월5투표소에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형식민주주의가 정착한 이후에 ‘민주화의 성지’는 민주당 계열 정당이 독식하면서 정치적으로 ‘착취’당했다. 광주시민의 열정은 광주를 위해 쓰이지 못하고 전국정치 연료로 징발당했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를 휩쓴 구호는 언제나 정권교체였다. 광주는 없었다. 심지어는 지방선거를 하는 데도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해 한표 행사를 강요받았다.”

이른바 ‘위장 탈당’ 뒤 더불어민주당 복당을 위해 애쓰고 있는 무소속 의원 민형배가 광주 광산구청장 시절인 2017년에 출간한 <광주의 권력: 민주화의 성지에서 민주주의 정원으로>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나는 최근 민형배가 보여준 정치적 언행엔 동의하지 않지만, 그가 이 책을 낼 때까지 보여준 지역정치에 대한 애정과 비전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지금은 그의 생각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2017년까지 민형배가 역설한 지역정치론은 광주만이 아닌 모든 지역민이 귀를 기울여보는 게 좋겠다.

민형배는 ‘정권장악을 위해 착취당하는 광주’의 변화를 위해 열변을 토했지만, 이는 광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호남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다. 지난 대선에서 전남은 86.10%, 광주는 84.82%, 전북은 82.98%의 몰표를 민주당 후보인 이재명에게 던졌다. 총선과 지방선거에선 무소속 후보들의 당선이 다양성을 조금이나마 살려주지만 대부분 민주당 계열이어서 사실상 대선에서의 민주당 집중도와 다를 게 없다.

나는 한때 호남의 그런 몰표 현상을 공개적으로 옹호했지만,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이후엔 달라졌다. 노무현 정권 탄생 이후엔 더욱 달라졌고, 문재인 정권 탄생 이후엔 더더욱 달라졌다. 이젠 호남인들의 투표 행태에 상식 수준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민형배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뒤처진 광주’라는 제목의 이 책 제7장에서 민주화 이후 망가져 가고 있는 호남 내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민형배는 앞서 2013년 출간한 <자치가 진보다>라는 책에선 호남 유권자들이 사실상 호남 엘리트의 인질로 전락해 이용당하고 있는 현실을 이렇게 고발하기도 했다. “민주정부 10년을 거치고도 광주는 그냥 광주에 머물러 있다. 광주·전남에 연고를 둔 정치엘리트, 고위관료,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 등이 잠깐 동안 괜찮은 기회를 누렸을 뿐이다. 이 진실을 뒤집으면, 정치권력을 ‘빼앗긴’ 현재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광주·전남 시·도민이 아니다. 한때 괜찮은 기회를 누린 그들이 기회를 박탈당했을 뿐이다.”

그렇다. 이게 바로 호남의 문제요, 한국 지방정치의 문제다. 민형배는 “그들의 기회 박탈을 우리 모두의 기회 박탈로 포장한 다음, 지역의 유권자를 중앙정치에 동원했던 것이 지금껏 우리 지역에서 벌어진 정치행태였다”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치와 지역을 잃었다”고 개탄, 아니 분노한다. 호남 유권자의 인질화를 부추기는 건 민주당과 강성 지지자들의 ‘증오·혐오 마케팅’이다. 반대 정당 악마화는 여야가 모두 똑같이 써먹는 수법이지만, 호남 유권자들은 그런 선전·선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경험과 상처를 갖고 있다.

그렇게 해서 지난 수십년간 호남에 굳건한 뿌리를 내린 게 바로 ‘일당 독재’다. 영남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국가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은 채 단기적 탐욕에 눈먼 중앙정부가 지방소멸을 부추기는 정책을 펴도 그 흔한 시위 한번 하지 않는 게 ‘일당 독재’ 지역들이다. 견제와 경쟁이 없는 곳에서 경제인들 잘될 리 만무하다. 유권자들이 그 폐해를 모르는 게 아니다. 사석에선 ‘일당 독재’에 대한 온갖 개탄과 비난이 난무한다. 그러나 투표장만 들어가면 자기 지역 정당의 정권장악과 유지를 위해 평소 그리도 욕하던 정당에 표를 주고야 만다.

이제 그런 악성의 ‘승자독식 정치’를 청산할 때가 됐다. 최근 기존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대안이 제시됐지만,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소선거구제 기득권자들의 반대와 더불어 중대선거구제의 효과에 대한 의문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다. 치열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최적의 방안을 찾아보자. 어차피 ‘완벽’은 없다. 존재하지 않는 ‘최선’의 이름으로 ‘차선’마저 죽이진 말자.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지역 발전을 위한 자치 역량을 키우는 데에 스스로 노력과 열정을 바치는 자율성 회복이다. 지역을 외면한 중앙정치 승리에 대한 집착이 그런 노력과 열정의 씨앗마저 죽이고 있는 현실을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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