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혁신] ‘이건희 컬렉션’이라는 마중물

한겨레 2023. 1. 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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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엔 영화 제목처럼 '미술관 옆 동물원'이 있다.

이들 미술관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일군 개인 컬렉션이 토대가 돼 설립된 국립미술관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은 가와사키조선소 초대 사장을 역임한 마쓰카타 고지로의 서양미술 컬렉션에서 탄생했다.

런던과 파리에 기반을 두고 수집, 보관됐던 그의 컬렉션은 전쟁 중 화재로 소실되거나 압류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일부가 일본으로 반환돼 국립미술관의 마중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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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지난해 6월6일 오후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전시 마지막 날. 전시장이 몰려온 관객들로 북적이는 광경이다. 노형석 기자

[뉴노멀-혁신] 김진화 | 연쇄창업가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엔 영화 제목처럼 ‘미술관 옆 동물원’이 있다. 동물원 입구 오른편으로 이웃한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지난 연말부터 파블로 피카소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작품 대부분은 베를린의 베르그루엔 미술관 컬렉션이다. 여기에 서양미술관을 비롯해 일본의 국립미술관들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까지 더해져 피카소의 주요 작품은 물론이고 그와 우애와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했던 폴 세잔, 앙리 마티스, 파울 클레,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동시대 거장들의 작품이 피카소와의 관계를 축으로 밀도 있게 배치됐다.

전시 자체도 훌륭하지만 사연 깊은 두 국립미술관의 만남이라는 포인트 또한 흥미롭다. 이들 미술관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일군 개인 컬렉션이 토대가 돼 설립된 국립미술관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유대계 독일인 하인츠 베르그루엔이 나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뒤 수집하기 시작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은 시간이 흘러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됐다. 독일 통일 이후 그는 홀연 자신의 컬렉션과 함께 고향인 베를린으로 향했고, 시 당국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내건 국립미술관을 탄생시켰다.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은 가와사키조선소 초대 사장을 역임한 마쓰카타 고지로의 서양미술 컬렉션에서 탄생했다. 런던과 파리에 기반을 두고 수집, 보관됐던 그의 컬렉션은 전쟁 중 화재로 소실되거나 압류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일부가 일본으로 반환돼 국립미술관의 마중물이 되었다. 부유한 개인 또는 가문의 미술관은 드물지 않지만, 한 개인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긴 컬렉션이 국립미술관으로 발전한 사례는 흔치 않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기증품,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은 우리에게도 이런 계기가 생겨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2만여점에 이르는 규모, 10조원에 육박한다는 환산 가치 등은 그야말로 세기적이다. 하지만 별도의 ‘이건희 기증관’을 지어 2027년 개관하겠다는 계획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태도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개는 ‘촌놈 마라톤’ 같다. 문화재, 고미술에서 현대미술, 동서양을 아우르는 방대한 작품들을 ‘수집가 이건희’ 이름으로 묶기엔 뭔가 어설프고, ‘기증자 이건희’를 앞세우는 건 허망하다. 고인과 유족의 뜻도 그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도 미술관 지을 땅과 건축계획 얘기가 앞서는 걸 보면, 물 들어올 때 노 젓겠다는 식의 업적주의가 작용한 게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희 기증관’ 아이디어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확장성일 게다. 더 큰 무언가의 마중물이 아니라 화석화된 기념비가 될 공산이 커 보인다. 미술관의 역할이 수집과 기억의 장치라는 전통적인 역할에 더해 공공플랫폼과 네트워크의 임무를 강조하는 추세에 비춰보면 더 그렇다. ‘이건희 기증관’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한 역동적인 수집과 해석은 난망하지 않을까. ‘성장하는 컬렉션’(테이트모던), ‘진화하는 컬렉션’(뉴욕현대미술관) 등의 새로운 개념이 설 자리 역시 요원해 보인다.

재벌경제를 상징하는 인물이 남긴 뜻밖의 유산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니 정치권에서 외치던 재벌개혁이 왜 그렇게, 마치 재벌가를 그린 최근 인기 드라마처럼, 매번 용두사미로 귀결됐는지 알 것도 같다. 일관성은 물론, 무엇을 어떻게 바꾸는 게 기업과 경제, 나아가 사회에 두루 좋은 일이 될지 전략도 없다. 알다시피 뭔가에 반대하기는 쉽지만, 대안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올리는 것은 간단하지만, 또 다른 밥상을 차리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물 들어왔다고 무작정 노를 젓는 순발력보다는, 그것을 마중물 삼아 더 큰 물줄기를 만들어낼 지략과 근육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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