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칼럼] CES서 또 베낀 中, 美 비난 자격 없다
"아주 그냥 대놓고 베꼈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CES 2023에서 중국 업체의 부스를 돌아본 한국 가전업계 관계자들이 내뱉은 탄식이다. 필자가 CES 출장을 처음 간 것이 2014년인데, 이후 9년 동안 갈 때마다 빠짐없이 들었던 말이다. 사실 그 전부터 중국의 한국가전 베끼기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콘셉트는 유사하게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냉장고에 디스플레이 패널을 추가하거나 사물인터넷(IoT) 기능을 추가하는 것은 세계 가전업계의 트렌드이니 베끼기는 아니다. 오히려 삼성과 LG 등 국내 가전업체들이 제시한 트렌드에 중국이 따라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의 베끼기는 노골적이다. 아예 디자인은 물론 브랜드 이름까지 뻔뻔하게 대놓고 가져다 쓴다. 삼성전자가 연초 CES에서 신제품을 선보이면 가을쯤 유럽 가전 전시회(IFA) 중국 업체 부스에서 똑같은 디자인의 시제품이 나온다. 2016년 1월 삼성전자가 CES에서 처음으로 냉장고에 IoT와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패밀리허브'를 공개하자, 같은 해 가을 하이얼이라는 업체가 IFA 행사에서 모니터 위치까지 완벽하게 카피한 시제품을 전시장에 버젓이 내놓았다. 당시 전시장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시제품이라 운영체제(OS) 등 구체적인 성능은 잘 모르겠다"며 "출시 예정도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말을 아꼈다. 급하게 겉모양만 베낀 것이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이센스와 TCL이 내놓은 액자형 TV 제품은 삼성전자의 '더 프레임'의 디자인 뿐 아니라, '명화감상'이 가능한 기능까지 그대로 베꼈다. LG전자가 내놓은 의류관리기 '스타일러'와 똑같은 제품도 TCL에서 볼 수 있었다. 삼성 비스포크 세탁기와 비슷한 제품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TCL 관계자는 "해외 출시 여부는 아직 검토 단계"라며 말을 아꼈다고 한다. 7년 전과 패턴이 전혀 바뀌질 않았다.
중국 업체가 한국 가전제품을 베끼면서 해당 업체에 라이선스 비용을 지급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자국 내에서만 팔면 그만이다. 국내 업체들은 감히 제소할 엄두도 못내고 있다. 국내 중간재 부품업계에서는 워낙 중국이 한국 제품을 베낀 것이 많아 중국에 수출하기가 편하다는 씁쓸한 농담도 나오고 있다. 한국의 전체 대중국 수출액에서 반도체 등 중간재의 비중은 80%안팎이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 중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진 않지만, 상하이 뒷골목의 전자상가도 아닌 글로벌 전시회에서 버젓이 한국 제품을 대놓고 베낀 중국 제품을 볼 때면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자유무역에 대한 야만적인 공격"이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는 중국에 국제사회가 냉담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14억명이 넘는 엄청난 내수시장을 앞세워 노골적으로 자국 산업을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고 있는 중국이 할 말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기업은 공산당과 소위 '콴시(關係·관계)'를 맺지 않으면 언제 쫓겨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한다. 중국이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중 공세 이후 외국인 투자 지분율 제한 등 규제를 대대적으로 해소했지만, 대부분의 외국계 기업들은 이를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중국의 독특한 시장경제는 어찌보면 지적재산권 보호를 생명으로 삼는 자본주의 발전사에서 보면 '반칙 경제'의 전형이다. 우리가 정치권을 비난할 때 주로 쓰는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자국 기업이 남의 것을 베낄 때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다, 다른 나라나 기업이 자국 기업을 견제하면 불공평하다고 강하게 반발한다.
중국은 최근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인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주도하며 인도·태평양에 걸친 자국 중심의 경제동맹을 구축해 미국과 맞서려 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를 중심으로 거대 경제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다면, 미국과 유럽 중심의 경제패권을 아시아로 옮겨놓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구상이 오로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를 만들기 위함이라면, 한국을 포함해 세계 어느 국가도 중국과 함께하진 않을 것이다. 습관적으로 시험지 답안을 커닝하는 자녀(자국 기업)들의 나쁜 손버릇도 못 고치는 중국 정부가 자유무역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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