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제학회 “중국이 세계 경제 발목 잡을 수도”
세계 각국의 경제 석학들이 모여 지식의 향연을 벌이는 무대인 전미경제학회(AEA) 연차 총회가 열려 올해 세계 경제 향방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미국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지 여부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해소될 지를 놓고 각양각색의 의견이 개진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이 물가 목표를 2%에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AEA 연차 총회는 지난 6일(현지 시각)부터 사흘간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열렸다.
◇ “심각한 침체는 피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올해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겠지만 침체의 강도는 부드러운 편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퍼먼 교수는 “코로나 사태 당시 재정·통화 정책 대응이 과도했다는 우려가 있고 과잉 대응에 따른 부작용도 경계해야 하지만 정책 대응은 부족한 것보다는 지나친 편이 낫다”며 “소외계층 지원이나 일자리 보호에 재정 투입을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미국 경제가 확실히 둔화하고 있지만 경기 침체가 올해 경제 전망에 있어서 기본 시나리오는 아니다”라고 했다. 경기가 둔화되긴 하겠지만 침체는 피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대체로 세계경제나 미국경제가 위험하다는 인식은 공유하면서도 심각한 침체에 빠진다는 의견은 드물었다.
개막 첫날인 6일 발표된 미국의 12월 고용보고서에는 예상보다 낮은 실업률(3.5%), 예상보다 높은 취업자 수 증가폭(22만3000명), 예상보다 낮은 임금 상승률(4.6%)이 담겨 미국 경제가 ‘골디락스’(과열되지도 않고 냉각되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기 상황)를 향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인플레 완화 기대 성급하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추세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올해도 고물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에 맞서 연준 인사들은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꺾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피에르 올리비에 구린차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인플레이션이 둔화되긴 했어도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물가와 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당분간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건 이르다”고 했다. 구린차스는 “연준의 금리인상 효과가 18개월 이상의 시차를 놓고 물가에 반영된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연준 인사들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보스틱 총재는 “기준금리가 5%를 넘는 수준에서 한동안 유지돼야 한다”며 “물가 상승률이 너무 높기 때문에 우리는 하던 일(금리 인상)을 그대로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리사 쿡 연준 이사도 “일부 고무적인 신호가 최근 나타났지만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너무나 높고 큰 걱정거리”라며 “연준의 정책결정권자로서 물가상승률을 2% 목표치로 되돌리는 데 전념할 것”이라고 했다.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장기간 고물가·고금리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머스는 “세계 경제가 구조적 장기침체에서 벗어나 전반적인 고물가·고금리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며 “세계 경제가 구조적 장기침체로 되돌아갈 확률은 낮다”고 했다.
서머스는 “향후 10년간 미국의 실질 중립금리는 연준의 예상치인 0.5%를 상회할 것”이라고 했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을 뺀 수치를 말하며 물가 상승까지 고려한 금리를 말한다.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압력이 없는 잠재 성장률 정도의 금리를 말한다. 연준은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로 제시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명목 중립금리를 2.5%, 실질 중립금리를 0.5%로 추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더 높을 것이라고 서머스는 내다본 것이다.
◇ “연준 물가 목표 2% 비현실적” 상향 조정 요구 잇따라
연준이 2%인 물가 목표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주문도 잇따라 나왔다. 구조적으로 물가가 높아진 상황에서 2%까지 물가를 낮추려고 무리하게 금리를 올리다보면 경기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2%라는 물가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은 연준의 횡포가 될 것”이라며 “2%에 빨리 도달하려고 하면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했다.
데이비드 로머 캘리포니아대 버클리교 교수도 “연준이 인플레이션 2%를 달성할 때까지 계속 긴축을 유지하면 불필요한 생산 축소를 일으키게 된다”며 “2% 목표 달성을 위해 연준이 노력한다고 하지만 현재 물가가 높기 때문에 연준의 신뢰도를 손상시키고 있다”고 했다. 2%까지 단기간에 물가를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연준의 신뢰도를 낮추게 되고, 중장기적으로는 긴축 과잉으로 인한 경기 둔화를 부르게 된다는 지적이다.
◇중국이 세계경제 발목잡는 복병 될 수도
‘차이나 리스크’를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중국은 코로나 사태에 맞서 지나칠 정도의 봉쇄령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방역 제한을 풀었고, 그 여파로 감염자가 급증해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은 지난 40년간 세계 경제 성장 경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앞으로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세나이 아그카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특정 지역의 리스크가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전염된다”며 중국발 경제 위험 가능성을 상기시켰다. 아그카 교수는 “중국의 코로나 봉쇄령 시기에 공급망에 문제가 생겨 중국 업체를 협력사로 둔 기업들의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이 높아졌다”며 “납품 업체가 있는 지역이 침체에 빠지면 공급망 활동 재개도 늦어진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예비부부 울리는 ‘깜깜이 스드메’... 내년부터 지역별 가격 공개
- ‘미사포’ 쓴 김태희, 두 딸과 명동성당서 포착 …무슨 일
- [속보] ‘공천 거래’ 명태균 구속 심사 6시간만에 마쳐
- 충북 영동 농로서 50대 남녀 숨진 채 발견...경찰 수사 착수
- 與의총서 '당원 게시판 논란'... 친윤 "당무감사 필요" 친한 "경찰 수사 중" 갑론을박
- 의료사고 심의위 만든다... 필수의료는 중과실만 처벌토록
- 韓총리 “67학번인데도 입시 기억 생생… 수험생 여러분 고생 많으셨다”
- IT회사까지 차려 4조원대 도박 사이트 운영한 일당 적발
- 수능 영어, 작년보다 쉬워... EBS 교재서 많이 나왔다
- “마약 투약 자수” 김나정, 필로폰 양성 반응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