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월요일] 탑은 허무하다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1. 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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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쩔 수 없는 무너짐 앞에

뚜렷한 명분으로 탑을 세우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면

맨 처음 탑을 세웠던 사람이 잊혀지듯

탑에 새긴 시와 그림이 지워지고

언젠간 무너질 탑이 마침내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디에 탑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탑을 바라보면 무언가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 불안하고

무너져선 안 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하다.

- 원구식 作 '탑' 중

탑을 왜 세우는가. 높은 곳을 지향하는 꿈이 탑을 세우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탑을 세우고 축원한다 해도 탑은 하늘 끝에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탑은 허무하다. 시인은 언젠가는 무너지는 '탑'을 상징으로 이다지도 깊은 허무를 멋지게 그려낸다. 그렇다. 탑은 불안의 형상이다. 그래도 인간은 탑을 쌓는다. 허무하기 위해 탑을 쌓고, 허무를 견디기 위해 탑을 쌓는다. 탑 쌓기는 인간의 행위 중 가장 허무한 일이다.

[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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