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문화를 창출하는 기술사회로 가는 길

2023. 1. 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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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술에 유독 개방적
반면 문화적 감수성은 부족
하이터치와 분리된 하이테크
지속가능한 기술혁신 어려워
인문 지식 갖춘 리더가 필요

한국 사회는 기술에서 미래를 찾는 성향이 강하다. 경공업, 중공업, 하이테크 산업, 지식정보 산업 등 한국 산업의 성장 궤도가 기술 고도화 단계를 따른 영향이 크다.

기술 성공신화 탓인지 선진국 중 한국만큼 기술에 우호적인 나라를 찾기 어렵다. 러다이트주의, 초월주의, 반문화주의 등 19세기 이후 서구 사회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반(反)기술 운동은 한국에서 만나기 힘들다. 친(親)기술 정서는 빅테크, 이커머스, 인공지능(AI), 유전자 조작 기술 등 선진국에서 민감하게 다루는 여러 규제 현안에 대해 기업 입장을 지지하는 여론에서도 엿볼 수 있다.

기술에 대한 개방성은 한국의 장점이다. 하지만 맹목적 기술주의는 기술과 문화의 균형을 깨 기술 혁신 능력은 물론 문화 창출 능력을 저해한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의 언어를 빌리면 하이테크에 문화적 감수성을 의미하는 하이터치를 결합해야 진정한 의미의 하이테크, 즉 지속적으로 기술을 혁신하고 문화를 창출하는 사회가 가능하다.

하이터치와 분리된 하이테크 사회는 지속가능한 기술 혁신이 어렵다. 혁신 시스템을 지탱하는 문화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혁신 문화가 부족한 혁신 시스템에 물리적 자원을 투입해도 원천기술을 개발하지 못한다. 한국이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에도 불구하고 원천기술을 아직 외국에 의존하는 이유도 기술중심주의가 초래한 문화력의 빈곤에서 찾아야 한다.

하이테크에 편중된 기술 사회는 또한 문화산업의 부진을 의미한다. 한국 기업이 K팝 등 일부 대중문화 분야에서 선전하지만 미술, 음악, 건축 등 전통적인 문화산업과 소비재, 디자인, 리테일 등 급속하게 문화산업으로 전환되는 생활산업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패션, 식품, 화장품, 가구, 디자인에서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명품 브랜드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하이테크와 하이터치의 균형을 복원할 수 있을까? 선진국 사례는 개인 창의성 중심의 하이테크와 하이터치 산업에 주목한다. 선진국을 추격해야 하는 한국 산업은 개인의 창의력보다 기업의 조직력을 강조했다. 원천기술과 명품 브랜드를 창조할 수 있는 인재와 조직문화가 아닌 압축 추격을 위한 중앙 집중적 자원 동원 체제에 투자한 것이다.

한국이 선망하는 실리콘밸리는 개인 창조성 중심으로 혁신 문화를 키웠다. PC, 스마트폰, 플랫폼, 공유경제, 블록체인 등 1970년대 이후 실리콘밸리가 개척한 기술은 일관되게 개인을 해방하고 연결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개인 중심 기술이 실리콘밸리의 중심 가치다.

개인 창의성을 조직의 문화 창출 능력으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인재만으로는 부족하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와 같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잡스는 단순히 가격, 편리성 등 소비자의 물질적 욕구를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을 수용하자고 말한 것이 아니다. 자아실현이라는 더 높은 수준의 인간 본능을 만족할 수 있는 기술을 찾은 것이다.

잡스는 구체적인 기술·문화 통합 방법도 제시한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를 경영하면서 개발자와 애니메이터가 일상에서 협업할 수 있는 공간의 디자인에 주력했다. 다른 능력을 가진 개발자와 애니메이터에게 상대방의 기술을 배울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기술과 문화 인재 양성, 기술과 문화의 융합이다. 한편으로는 창의적인 엔지니어와 크리에이터를 양성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술과 문화 인재가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부에서도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모든 부처가 산업부가 돼야 한다고 발언해 화제다. 한 단어를 추가하면 어떨까. 모든 부처가 문화부와 산업부가 되어야 한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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