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휴전’이었던 우크라이나의 성탄… 포격은 계속, 교회도 분열
정교회의 성탄절(1월 7일)을 기념하겠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건 ‘성탄 휴전’ 제안은 그저 말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는 러시아의 포격이 변함없이 이어졌으며, 양국에서 진행된 예배들은 전쟁으로 드러난 정교회의 분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사가 됐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7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전황보고에서 “러시아군이 소위 휴전 체제를 발표했음에도 탱크와 포병 전력으로 우리 군을 계속 포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정교회의 성탄절을 기념하겠다며 전날 36시간 동안의 휴전을 선언했는데, 실제로는 공격을 계속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치열한 공방이 이뤄지고 있는 동부 돈바스 지역의 요충지 바흐무트 인근에 있는 15개 이상의 마을이 러시아군의 포격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헤르손과 자포리자 인근 다수 마을에서도 포격에 따른 화재 피해가 보고됐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휴전 이후 최초 3시간 동안에만 러시아군이 진지를 14번 포격했다”며 “정교도 살인마들이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보내온 것”이라고 비난했다.
러시아의 휴전 의지를 믿었던 일부 시민들은 적잖은 피해를 입었다. 바흐무트 지역 내 ‘무적 센터’(Invincibility center·식수와 난방, 의약품 등을 제공하는 구호 지역)에서 일하는 한 자원봉사자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1명이 죽고 4명이 다쳤다”며 “주로 자원봉사자들이 부상을 입었고, 한 명은 팔다리를 잃고 대피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의 공격으로 인해 대응 사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총참모부는 “우크라이나 방위군은 이날 적의 집결지와 탄약고, 대공미사일시스템이 있는 곳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반면 러시아 국방부는 “러시아군은 휴전을 준수했는데 우크라이나 측이 인구 밀집 지역과 러시아군 진지에 대한 포격을 계속했다”며 “이를 대응 사격으로 제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장의 포성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우크라이나에선 성탄기념 예배들이 치러졌다. 이날 예배는 특히 전쟁에 따른 정교회의 균열과 변화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우크라이나에선 그간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산하의 정교회와 독립적인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활동해왔는데, 러시아계 정교회가 가졌던 주도권이 전쟁 이후 급속히 약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이날 사상 처음으로 수도 키이우의 동굴 수도원(페체르스크 라브라 수도원)에서 성탄예배를 진행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어로 진행된 예배였다. 이 곳은 그간 러시아계 정교회가 임대해 사용해 왔는데,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들과의 임대 계약 연장을 거부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간첩’ 의혹이 있는 러시아계 정교회 소속 사제 13명의 시민권을 박탈하기도 했다. 정부는 앞서 러시아계 정교회의 일부 성직자들이 전쟁 이후 러시아 정부를 위한 비밀공작을 도왔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최근에는 동굴 수도원 등을 급습해 간첩 혐의가 있는 사제들을 체포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우크라이나와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계속 지지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는 최근 방송인터뷰에서 “이번 전쟁은 ‘러시아의 세계’를 보존하고, 슬라브 땅을 모스크바의 영적·정치적 영도에 두기 위해 서방과 벌이는 성스러운 투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성탄 휴전도 ‘신앙의 수호자’로서 푸틴의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취지가 반영됐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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