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설은 삭막한 상처들의 집, 그래도 해피엔딩 꿈꿔요"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 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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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허들' 출간 신주희 작가
예술 본질 사유하는 소설들
죽음 다룬 묵직한 주제의식
"내면의 허들 뛰어넘으려는
독자를 상상하며 글을 썼죠"

뛰어난 예술은 모두 죽음에 대한 각주다. 신주희 작가(45·사진)의 소설은 죽음과 예술에 관한 사유가 깊고 넓다.

자신의 몸을 캔버스 삼아 극단의 미학을 추구하다 사망에 이르는 예술가(단편 '햄의 기원'), 편지 형식의 유서를 매일 쓰며 자기 내면의 울타리를 초월하려는 여성(단편 '허들')이 그렇다. 이들은 죽음을 외투처럼 껴입고 살지만 자기만의 해피엔딩을 그린다.

얕은 주제의식이 유행가처럼 반복 재생되는 소설시장에서 보기 드물게 죽음과 예술을 탐색하는 신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허들'(자음과모음 펴냄)이 출간됐다. 신 작가를 만나 새 소설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며 겪는 여러 고난을 허들로 비유하잖아요. 하지만 삶을 견디며 이겨내야만 성숙한 삶으로 여기는 태도야말로 우리 내면의 허들이 아닌가 싶어요."

책에 실린 7편 중 표제작 '허들'의 내용은 이렇다. 한 여성이 있다. 그는 불운과 불안과 불행을 동시에 겪었다. 남편의 외도와 이혼, 그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양육권 포기. 화자인 주인공 '나'는 매일 숨을 참고 유서를 쓴다. "자식도 뺏기고 이렇게 살 거면 좀 버티지. 좀 참고 버텼어야지"라고 타박하는 그의 어머니가 언제 건네줄지 모르는 유서의 수신인이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의 목소리에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면서 안정과 안전을 추구해요. 그렇게 사는 것이 보편타당하다고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넘어섰던, 혹은 넘어섰다고 여겼던 허들이 과연 그런 의미와 가치가 있었나 하고 돌아보며 썼어요.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유서'라는 극단적 가정이 필요했는데, 유서를 쓸 때마다 죽음은 꼼짝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개처럼 문밖에서 화자인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책의 맨 앞에 수록된 단편소설인 '햄의 기원'은 3년 전 이효석문학상 본심 진출작이다. 당시 심사 과정에서 최고 문제작으로 집중 거론됐다.

죽음을 불사하고, 자신의 혈관에 말(馬)의 혈청을 수혈하는 매우 극단적인 예술가란 설정을 통해 신 작가는 '예술의 기원'을 집요하게 질문한다. 죽음을 "작업(예술)의 한 가지 형식"으로 활용하고 죽어버린 남자. 예술이 주는 멸시와 모욕을 예술가는 견딜 수 있는가라는 주제의식에 이르면 이 기막히고 기괴한 이야기는 풋내 나는 요즘 소설과 결부터 다르다.

"절친한 작가분 중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아세우는 분이 계세요.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자기 부모의 알몸을 영상으로 담아 작품으로 전시한 소설 속 주인공은 바로 그 작가분의 실제 전시 작품이기도 했어요. 느낌으로 설명할 길이 없는 예술 혹은 미의식이란 제게 막연히 꿈같고 아련하며 가슴 어딘가를 시리게 하는 것들이에요."

2012년 문예지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하고 올해로 11년 차. 소설가로서의 삶 이면에서, 사실 신 작가의 생업은 카피라이터다. "광고주를 만나는 자리가 직장이고, 거기서 카피를 판다"고 그는 자신을 정의한다.

"소설가라는 평생 직업을 갖기 위해 지금도 카피라이터 일을 하고 있어요. 소설가로서의 신주희, 카피라이터로서의 신주희는 좀 많이 다르고, 달라야 해요. 그 간극에서 어쩔 수 없이 양면성을 가지게 되고, 종종 마음이 불편해지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불편함 덕분에 소설을 놓지 않고 쓸 수 있었어요."

그는 자신이 쓰는 소설을 "삭막한 상처들의 집"으로 은유한다. 상처의 외피는 비슷하지만 첫 번째 소설집과 이번 소설집에선 어떤 변화가 감지된다.

"첫 소설집 '모서리의 탄생'은 아주 오래 살다가 떠나온 주소지 같아요. 제 이름이 적힌 우편물들이 그곳으로 배달되는데 그곳엔 받아줄 이웃이 없어요. 그래서 삭막하고 또 삭막한 상처들의 집이에요. 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소설집 '허들' 역시 비슷한 풍경이지만 전에 없던 사람들이 등장해요. 각자의 열린 해피엔딩을 꿈꾸는 사람들이죠. 이번 책에는 이야기 안에 많은 빈칸을 남겨뒀어요. 독자들이 각자의 허들 앞에 서보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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