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어르신, 복지등기요~” 집배원이 위기가구 살핀다

정인선 2023. 1. 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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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우체국 복지등기 시범사업
복지등기우편 체크리스트 들고 방문조사
복지 일손부족 메우고 의심가구도 발굴
부산 영도우체국 소속 김해현 집배원이 5일 오후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 한 반지하 가구에 복지등기우편을 전달한 뒤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계십니까, 등기 배달 왔습니다.”

지난 5일 오후 부산 영도우체국 소속 김해현 집배원이 영도구 청학동의 한 언덕진 골목에 위치한 빌라 반지하에 사는 집 문을 두드렸다. 집 안에서 나온 70대 어르신 ㄱ씨가 “등기 올 곳이 없는데...”라고 말하자, 김 집배원이 친절히 설명했다. “어르신 잘 지내고 계신지 구청 복지정책과에서 보낸 거예요. 안에 보시면 안내문이랑 마스크 있으니 잘 살펴 보세요.”

김 짐배원은 이어 ㄱ씨에게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했다.

김 집배원: “어르신, 요즘 생활하시는 데 어려운 것 없으세요?” ㄱ씨: “특별히 없어, 사는 게 그렇지 뭐.” 김 집배원: “식사는 잘 하시고요?” ㄱ씨: “응.” 김 집배원: “혹시 구청 복지 담당자한테 하고싶은 말씀 있으세요?” ㄱ씨: “아니, 없어.”

골목으로 나온 김 집배원은 ㄱ씨와 나눈 대화 내용을 토대로 빠르게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는 “등기 받는 분이 집에 안 계시면 한 차례까지 재방문을 해요. 그 때도 계시지 않으면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죠”라고 말했다.

김 집배원을 비롯한 영도우체국 집배원 20여명은 매달 첫째, 넷째 주마다 영도구청이 위기 의심 가구들에게 보내는 등기우편물을 배달한다. 집배원들이 우편물을 가져다주며 관찰하고 대화를 나눈 뒤 작성한 체크리스트는 영도구청 복지정책과에 다시 등기로 보내진다.

부산영도우체국 소속 집배원들이 영도구청이 발송한 복지등기우편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체크리스트.

우정사업본부(이하 본부)는 지난해 7월부터 부산 영도구와 서울 종로구·용산구·서대문구, 광주 북구, 전남 영광군, 강원 삼척시, 충남 아산시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 8곳에서 ‘복지등기우편’ 시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단전·단수 등이 이뤄진 위기 의심 가구에 집배원들이 복지 정보와 생필품 등이 담긴 등기우편을 배달하면서 생활 실태 등을 파악해 지자체에 전달한다. 집배원들이 모은 정보는 지자체 전산망과 인력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위기 의심 가구를 발견해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는 데에 중요한 참고 정보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집에 불이 켜져 있거나 티브이 소리가 나는데 정작 인기척이 없다’와 같은 정보는 고독사의 가장 큰 징후 가운데 하나다. 이전에 배달한 우편물이 여전히 쌓여 있다거나, 현관문 앞에서 악취가 나는 등 정보도 마찬가지다.

이 사업은 영도구 영성2동 주민센터의 한 직원이 2021년 본부 공익 사업 공모전에 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골목 구석구석 가 닿을 수 있는 집배원들과 협업한다면 위기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제안을 본부와 영도구청이 받아 지난해 시범사업으로 만들었다. 아이디어가 나온 영도구에서 첫 선을 보인 뒤 8개 지자체로 확대됐다. 이들 지차체 8곳을 통틀어 4669개 위기 의심 가구 중 483가구가 눈 밝은 집배원들 덕에 공공·민간 복지 서비스를 새롭게 지원받게 됐다. 본부는 올해에도 여러 지자체와 협업해 서비스 범위를 적극적으로 넓힐 계획이다.

복지등기우편 내용물. 중앙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다양한 복지 지원 정책 안내문과 마스크 등이 들어 있다.

김정은 영도구청 복지정책과 희망복지팀장은 “수도, 가스, 전기 요금을 제때 못 내는 등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려내는 위기 의심 가구가 매달 800가구쯤 되는데, 구청과 각 동 주민센터 인력만으로는 이들을 모두 방문해 살피는 데 한계가 있어 고민이 컸다”며 “이 중 200가구 가량을 집배원들이 대신 살펴 주니 업무 부담이 크게 줄었다. 특히 실제 거주지와 주민등록지가 다른 경우는 구청에서 파악하기가 정말 어려운데, 집배원들이 이런 경우를 샅샅이 발견해 줘 주소지 이전 등을 더 잘 안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집배원들이 이웃들에게까지 물어 가며 병원에 입원을 했다거나 장기 요양 중이라거나, 날이 너무 덥거나 추워 잠시 자녀들 집에 가 지낸다는 등의 정보까지 파악해 주기도 하니, 복지 지원 대상자를 정확히 선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지난 5일 부산시 영도구 부산영도우체국 2층 우편물류과 업무 공간에 복지등기사업 관련 문구가 붙어 있다.

복지등기우편 사업은 구청 직원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데에뿐 아니라 집배원들의 직업적 자긍심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날 만난 또다른 집배원 김태형씨는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에 한 가구에 복지등기우편을 전달하러 갔다가 아무도 안 계셔서 되돌아 나오는데, 맞은편 집에서 나온 다른 어르신이 ‘고생이 참 많다’며 동지 팥죽을 나눠줘 참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상호 영도우체국 우편물류과 물류실장은 “시범사업 시행을 처음 검토할 땐 집배원들 사이에서 ‘업무 부담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거나 ‘괜히 책임질 일이 생길까봐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나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시행해 보니 집배원 한 명당 배송해야 하는 복지등기우편물 양이 한 번에 많아야 열 건 안팎으로 많지 않고, 실제로 자신이 발굴한 위기 의심 가구에게 필요한 지원이 돌아가면 보람을 느낀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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