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동원 해법 "이번엔 다르다"? 2015년 위안부 합의 데자뷔[문지방]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서두르다 당사자 설득 실패해
日도 합의 후 발뺌...尹 정부, 관계 개선 당위성만 강조해서야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윤덕민 주일대사, 지난해 7월 16일 부임하며
시작은 담대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가장 시급한 문제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2015년 일본군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피해자들과 직접 소통하지 않은 채 일본과 협상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을 강화했습니다. 박진 외교장관이 지난해 9월 피해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광주로 내려가 큰절을 올리며 피맺힌 절규를 경청하는 성의를 보였습니다. 외교부는 의견 수렴을 위해 민관협의체도 만들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들은 1, 2주에 한 번씩 피해 당사자들과 접촉했다고 합니다. 오는 12일에는 국회에서 공개토론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차근차근 합의를 향해 진전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피해자 사이 간극은 여전해 보입니다. 피해자들은 정부가 보여주기식 소통을 하고 있다며 이미 민관협의체 불참을 선언했죠.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공개토론회를 여는 것입니다. 일본과 합의문을 발표하기 위한 요식행위로 비치는 대목입니다. 이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토론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박근혜 정부 위안부 합의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곳곳에서 파열음이 적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위안부 소녀상과 양금덕 할머니의 '인권상'
"외교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양금덕 일제 강제동원 피해 할머니, 지난해 12월 언론 인터뷰에서
양금덕 할머니의 '2022년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은 외교부의 제동으로 불발됐습니다. 부처 간 협의를 이유로 서훈이 무산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일본을 의식한 조치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단체는 양 할머니가 일제 강제동원 인권 운동의 상징이 되는 것을 외교부가 경계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위안부 소녀상이 그랬습니다. 위안부 합의안에 '소녀상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언급되자 피해자들과 관련 단체는 반발했습니다. 피해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대가로 당초 민간이 설치한 동상에 관여할 수 없다던 입장을 뒤집었다고 여겼습니다.
사과하고 "증거 없다"던 日…"현금화만 아니면 된다"지만
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가 개선돼야 피해자들의 명예와 피해 회복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본도 외교채널을 통해 '대한민국에 있는 일본 가해기업 자산에 대한 강제 현금화를 하지 않는다면 강제노역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해결방안의 골자는 한국 기업의 기부로 모은 돈을 피해자에게 먼저 지급하고, 추후에 일본 가해기업이 기부하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병존적 채무인수'라는 난해한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의 본질은 아닙니다. 일본 정·재계의 확약 없이 추진하는 해결책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일본은 약속을 하고도 이행하지 않은 불편한 전례가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제1조와 2조는 일본 총리의 사과와 피해자 명예·존엄 회복을 위한 사업 이행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5년 합의 직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며 가장 첫 번째 합의사안인 피해자의 명예·존엄 회복을 위한 사업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위안부 합의 한 달 뒤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도 유엔에 제출했습니다. 일본이 바로 발뺌하며 우리 정부와의 합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린 것입니다.
"조속한 해결" 강조하는 정부, 위안부 합의처럼 서두르다간...
"합리적 해결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고자 양국 외교당국 간에 속도감을 갖고 긴밀한 대화와 협의를 지속해나가고 있습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 지난 3일 정례브리핑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개토론회 소식을 알리면서 외교부 대변인이 한 말입니다. 조속한 문제해결을 바라는 정부로선 이번 토론회를 개최한 뒤 '최종 해결책'을 발표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잘못된 속도전에 되레 여론이 강하게 반발한다면 한일관계 회복을 더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2015년 당시 임성남 외교부 1차관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연휴 기간 중 (한일 간) 여러 진전이 급하게 이뤄져 사전 협의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쳤습니다. 절규하는 피해자들을 지켜본 국민 여론은 박근혜 정부에 등을 돌렸고 위안부 합의는 정당성을 잃었습니다.
따라서 12일 토론회는 강제동원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닌 '시작'이 돼야 합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반발이 거센 이유는 정부가 자신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은 채 구색 맞추기를 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채권자'가 아닌 '피해자'를 위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좀더 섬세하고 진지하고 끈기 있게 피해자들과 대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그래야서로의 간극을 좁힐 수 있고,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후의 파국적인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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