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통증에도...2시간 30분 공연 엄수한 넬 김종완 [조은별 기자의 ★★레터]

조은별 2023. 1. 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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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조은별기자]새해의 첫 날을 여는 2023년 1월 1일 서울 잠실 학생 체육관. 4인조 모던록밴드 넬은 연말연시 공연 브랜드 ‘넬스룸’의 마지막 공연을 가졌다.

7시부터 9시 30분까지 2시간 30분에 달하는 공연을 모두 마친 뒤 대기실에서 만난 넬의 리더 김종완(42)은 탈진한 듯 했다.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그는 왼쪽 팔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는지 팔을 쭉 뻗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연신 신음을 토해냈다.

김종완은 2020년 6월 급성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지속적인 기타연주로 인한 고질적인 팔의 통증은 별개다. 김종완을 잘 아는 한 측근은 “아무리 작은 수술이어도 수술을 받은 뒤에는 휴식을 취하는 게 상식이다. 김종완은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복대를 차고 음악 작업을 계속했다. 그런 사람은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종완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지난해 모친상을 당한 뒤 공연을 강행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모친상을 당한 뒤 발인을 치른 다음 날, ‘2022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이하 부산록페)무대에 섰다.

당시 소속사 스페이스보헤미안 관계자는 스포츠서울에 “행사를 위해 장시간 준비한 주최 측, 그리고 이미 티켓을 구매한 팬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연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는 김종완 자신의 의지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평소 공연할 때 과묵한 편인 김종완은 이 무대에서 메가 히트곡 ‘기억을 걷는 시간’을 부를 때 “어머니가 좋아했던 곡”이라고 소개하며 팬들에게 같이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꿈과 열정...24주년 넬을 이끄는 힘

집착에 가까운 음악에 대한 열정은 결성 24주년이 된 넬을 이끄는 힘이다.

2008년 발표한 4집 수록곡 ‘기억을 걷는 시간’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모던록밴드로 자리매김했지만 지난 24년간 발표한 9장의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몽환적인 록발라드부터 샤우팅이 돋보이는 록킹한 곡까지 다채로움을 자랑한다.

연인을 잃었을 때 오는 슬픔과 상실감,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혼란과 불안감, 그럼에도 자신이 가진 꿈을 향해 달려가라는 뚝심은 다양한 장르를 변주한 넬 음악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다.
새해를 여는 ‘넬스룸’은 넬이 전하는 메시지를 청각과 더불어 시각적으로 전달하며 눈과 귀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경쾌한 리듬이 인상적인 싱글 ‘스틸 선셋’은 묵직한 단조로 변주돼 2시간 30분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마치 혁명을 앞둔 군인들의 결기를 표현한 듯한 변주가 불꽃과 함께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자 관객의 함성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떠밀려 왔다.

‘홈’, ‘디어 제노비스’, ‘환생의 밤’, ‘번’까지 최근 몇 년간 공연에서 한꺼번에 들려주지 않던 록킹한 셋리스트들은 한 폭의 그림같은 영상과 함께 몰입도를 높였다.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홈’의 간주 영상, 차가운 도심을 관통하는 ‘디어 제노비스’, 정사각형의 공간감이 돋보이는 ‘환생의 밤’, 그리고 불에 타 붕괴되는 도심을 통해 디스토피아의 단면을 묘사한 듯한 ‘번’의 영상은 스펀지처럼 관객의 기를 빨아들이며 화면을 빛냈다.
“전체적인 감정의 흐름을 생각해 셋 리스트를 짰다. 개별곡의 이미지를 살리면서, 앞뒤곡과의 차별성을 두는 것에 중점을 두고 영상을 제작했다. ‘홈’의 경우 확장돼 커지는 감정을, ‘디어 제노비스’는 제노비스 신드롬에 착안한 이미지를 표현했다.”(김종완)

‘넬스룸’ 브랜드를 만든 뒤 때로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고집스럽게 관객의 만족드를 위해 시청각 이미지를 고민한 넬의 리더 김종완의 설명이다.

공연의 정점은 9집 수록곡 ‘소버’에서 빛났다. 천정에서 흩뿌리는 인공비가 바닥에 출렁이며 곡의 짙은 서정성과 상실감을 배가시켰다. “사랑보단 이별에 더 능숙한 우리였지만 그래도 우리를 기억해줘요”라는 어른의 이별을 그린 가사가 축축한 습기와 함께 전달됐다.
히트곡 ‘기억을 걷는 시간’은 별다른 설명과 영상이 없어도 넬과 관객이 소통하는 곡이다. 이 곡을 통해 넬이라는 밴드의 이름을 기억하는 수많은 팬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유일한 시간, 공연장을 돌며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치고 관객에게 마이크를 건네는 ‘떼창’은 록커의 자부심이다.

마지막 곡은 8집 수록곡 ‘꿈을 꾸는 꿈’. 김종완이 3살 조카를 보며 느낀 감정을 시간이 지난 뒤 만든 곡이다. 불혹을 넘겨도 여전히 꿈을 향해 정진하는 네 사내들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곡이기도 하다.

“요즘에 현실에서 꿈에 대해 얘기하면 ‘꿈깨’, ‘정신차려’ 같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게 된다.꿈은 책이나 영화, 드라마에서나 진지하게 다루는 소재가 됐다. 사실 꿈이란 가질 수 없는 것이라 우리 삶을 많이 힘들게 할 수 있다. 반대로 꿈은 바닥을 쳤을 때 나를 끄집어내는 역할이기도 하다. 꿈이 없는 사람은 바닥에서 홀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게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다. 새해, 거대한 포부를 안고 꿈을 향해 달려가길 바란다.”

mulgae@sportsseoul.com

사진제공|하쿠나마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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