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험연극 ‘전설’ 뉴욕 리빙시어터 첫 내한···차별에 맞선 사랑을 전한 ‘로제타’
미국 실험연극 시초 리빙시어터
알 파치노·로버트 드니로 등 거쳐가
‘아나키즘과 비폭력 저항운동’이 극단의 정신
한국 극공작소 마방진과 함께 창작 연극 ‘로제타’
미국 실험연극의 시초라 불리며 20세기 연극사에 큰 영향을 미친 극단 리빙시어터(The Living Theatre)가 한국의 극공작소 마방진과 함께 연극 <로제타>를 오는 13~14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올린다.
이번 공연에는 50년 넘게 리빙시어터에서 배우로 활동해 이 극단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토마스 워커를 비롯해 극단 대표이자 배우인 브래드 버지스 등 리빙시어터 배우 3명이 한국 배우들과 함께 출연한다. 리빙시어터 출신으로 현재 한국에서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요세프 케이(한국명 김정한)가 극작과 연출을 맡았다.
리빙시어터는 1947년 주디스 말리나와 추상표현주의 화가 줄리안 벡이 미국 뉴욕에서 설립한 실험극단이다.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의 시작을 만든 전설적인 극단으로 알 파치노·로버트 드니로 등 명배우들이 거쳐갔다. 혁신적인 실험극으로 급진적인 주제를 담아온 단체다. 아나키즘과 비폭력 저항 운동은 이 극단의 정신이기도 하다. 196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비롯해 베트남전 참전 반대, 여성 해방 등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재정난으로 인해 여러 차례 활동 기반을 옮기며 명맥을 유지해 왔다. 연극평론가인 김미혜 한양대학교 명예교수는 “리빙시어터는 뉴욕에서 출발했지만 2~3년에 한 번씩 극장을 옮겼고 유럽에서도 기반을 다졌다”며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연극사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극단”이라고 말했다.
조선 최초 여성병원 설립하고 한글 점자 만든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의 일기 바탕
“국적을 뛰어넘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이야기”
<로제타>는 구한말 조선에서 활동한 여성 선교사이자 의사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1865~1951)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다. 조선에 최초의 여성 병원을 설립하고 한글 점자를 개발하는 등 의료와 선교 활동을 벌인 인물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양의사 에스더 박을 지원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타계한 이후엔 미국이 아닌 한국 땅에 묻혔다. 공연은 로제타가 남긴 일기를 바탕으로 성별과 장애 등 당시 시대가 가진 선입견과 차별에 맞서며 종교와 정치를 초월한 활동을 벌인 그의 여러 순간들을 조명한다. 출연 배우 8명 모두가 로제타와 그밖의 다른 인물들을 연기한다.
연출을 맡은 요셰프 케이는 6일 서울 영등포구 연습실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몇 년 전 양화진 절두산 순교 성지에 갔다가 그곳에 전시된 로제타의 일기를 봤다”며 “삐뚤빼뚤한 한글로 ‘하나님, 나 어찌할 바 모르겠사오니 도와주소서’라고 쓰인 일기였는데, 그 문장이 너무 강렬해 눈물이 났다. 그녀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리빙시어터가 추구하는 무정부주의 혁명의 근간, ‘사랑’의 정신이 로제타가 추구했던 것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 리빙시어터에 협업을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리빙시어터 대표인 버지스는 “리빙시어터의 역사는 75년이 됐다. 미국 슈퍼볼보다 역사가 길다”며 “리빙시어터의 연극은 시대에 따라 그 스타일이 변화해 왔지만, 우리는 작품을 만들 때 관객이 극장을 떠나며 변화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을 좀더 좋게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온 일이고 계속해서 해 나가려고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1968년 리빙시어터에 입단해 주디스 말리나, 줄리안 백과 함께 활동해온 토마스 워커는 “아나키스트 혁명을 믿었던 주디스에게 사랑과 평화는 삶의 지향이었고, 그런 면에서 로제타의 목표와 닿아 있다”며 “리빙시어터의 소명과 맞닿은 로제타의 이야기로 협업을 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빙시어터와 공동 제작을 맡은 극공작소 마방진의 고강민 대표는 “로제타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연출의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처음엔 반대했다. 우리가 ‘로제타기념사업회’도 아닌데 어려울 때 한국을 도운 미국 선교사의 이야기를 미국 극단과 한다는 것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이 됐기 때문”이라며 “연출과 오랜 시간 대화를 했고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로제타의 국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ACC 국제 공동 창·제작 공연사업’의 일환으로 무대에 오른다. 13~14일 공연은 제작 과정에서 공개하는 쇼케이스 공연이다. 이강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은 “리빙시어터 외에도 일본, 베트남의 극단과 함께 하는 공연을 제작하고 있다”며 “관객과 전문가 평가를 거친 뒤 완성도를 높여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 본 공연으로 다시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