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핫이슈]꿀벌, 영원한 실종을 막아라
꿀벌이 사라졌다. 잠시의 월동이 아닌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실종'이다.
꿀벌 실종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이미 몇 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꿀벌 군집 붕괴 현상(CCD)'으로 정의되는 이러한 현상은 2006년 11월 미국에서 처음으로 보고된 이후 매년 평균 28.7%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남아프리카, 중국 등에서도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나라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농촌진흥청, 앙봉협회 등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약 60억마리에 달하는 꿀벌이 사라졌다.
이 같은 꿀벌 집단 실종에 대한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과학계는 이상기후를 가장 큰 원인으로 주목하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 꿀벌 집단 실종이 본격화된 2020년은 어린 꿀벌이 성장하는 시점인 가을이 예년보다 낮은 기온을 나타냈으며, 겨울은 오히려 기온이 높아 꿀벌들이 월동을 일찍 마치고 활동에 나서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이상기후로 인해 호르몬 등 꿀벌 체내 변화가 발생, 꿀벌 수명을 단축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기후 외 또 다른 원인으로는 해충 가능성이 크다. 꿀벌에 기생하면서 체액을 빨아먹는 진드기과의 '꿀벌응애'가 적기 방제 미흡 등으로 급속히 증가하면서 피해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꿀벌 실종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과학계는 이에 따른 인류 위협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꿀벌은 전체 재배작물이 필요로 하는 수분 작용 가운데 약 30%를 책임진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꿀벌이 전 세계 식량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가운데 70%에 달하는 작물의 수분 작용을 돕는다고 발표했다.
실제 꿀벌 실종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지난해 딸기, 수박 등 농가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꿀벌에 의한 화분 매개 역할이 사라진 탓이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농작물 수확이 급감, 식량 위기에 봉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엔(UN) 생물다양성과학기구는 2035년 꿀벌 멸종 가능성을 제기했으며 미국 하버드대는 연구 조사를 통해 꿀벌 멸종 이후 해마다 영양실조로 약 140만명이 사망할 것이란 결과를 내놓았다.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는 4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한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경고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다행히 이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은 활발하다.
최근 미국 농무부는 자국 바이오 기업이 개발한 꿀벌 전용 백신 조건부 사용을 승인했다. 세계 최초로 꿀벌을 위한 백신이 나온 것이다.
백신은 미국 내에서 꿀벌을 대상으로 급속도로 확산 중인 '미국형 부저병'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이 병에 감염되면 꿀벌 애벌레는 몸체가 썩고 벌집이 파괴되면서 꿀벌이 집단으로 폐사한다. 지금까지는 치료제가 없어 전체를 불태우는 것만이 확산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백신 조건부 사용 승인이 떨어지면서 해결 가능성이 열렸다. 백신은 여왕벌 주식인 로열젤리에 박테리아를 주입, 여왕벌이 낳는 알에서 태어난 유충 내 항체를 형성하는 원리다.
국내에서도 꿀벌 멸종을 막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충남도는 지난해 말 축구장 4700여개 면적 규모의 '꿀벌 먹이숲'을 조성했다. 이곳에는 꿀벌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나무인 '밀원수' 800만 그루를 심었다. 이상기후 등 기후변화에 따른 꿀벌 집단 실종 사태 해결책으로 제시된 방법 중 하나를 선제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연구계도 힘을 보태고 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 연구팀은 2019년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꿀벌응애 개체 수를 확인하는 앱을 개발, 꿀벌응애를 없애기 위한 방제 시기를 확보하는 데 활용되도록 했다. 이외에도 국내외에서는 꿀벌응애 영향을 받지 않는 등 꿀벌 개량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과학계는 아직까지 꿀벌 실종을 막기 위한 대책이 완전하게 확보되지 못한 만큼 정부와 산·학 협력 등을 통해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우기 위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인희기자 leei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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