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족 대표 “살고 싶은데, 손 내미는 사람이 없다”
“모든 증인·참고인이 모른다면 조직이 썩은 거 아닌가요”
이태원 참사로 아들 이지한씨를 잃은 아버지 이종철씨는 나서고 싶지 않았다. 참사 이후 집에서, 차에서 울기만 했다. 극단적 선택까지도 생각했던 그는 다른 유가족을 찾기로 했다. 옆 빈소에 있던 유가족을 먼저 찾았다. 그렇게 찾다보니 첫 모임 때 희생자 15명의 가족이 모였다.
처음엔 ‘그냥’ 모였다. ‘그냥’이 아니게 된 것은, 유가족들이 정진석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고 나서다. 2022년 11월21일 유가족 20여 명을 만난 정 비대위원장은 “송구스럽고 죄스럽다”고 했다. 눈물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기자들에겐 “그분들의 의견이 158명 희생자 유가족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태도를 바꿨다. 이씨는 유가족들이 모인 협의체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소문 끝에 희생자 40여 명의 유가족이 모였다. 다들 한사코 ‘대표’를 맡기는 꺼렸다. 이씨는 12월10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협의회) 창립총회에서 대표로 뽑혔다. 현재 협의회엔 희생자 109명의 유가족이 참여하고 있다. 대표와 부대표를 포함해 운영위원회 17명이 협의회를 이끈다.
“대화 좀 하자”에 “야당과 같은 편이네”라는 의원
2023년 1월3일, 국회에서 기자 브리핑 일정을 마치고 녹사평역 시민분향소를 찾은 뒤 밤 9시 넘어야 집으로 향하는 이종철 대표와 전화로 ‘유가족들이 원하는 진상규명과 국정조사 방향’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22년 11월24일 여야는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를 통과시켰다. 기간은 2023년 1월7일까지 45일. 그러나 예산안 처리 뒤라는 전제조건을 달면서 국정조사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유가족들의 가슴은 타들어갔다.
“유가족들을 놓고서 협상의 도구로 핑퐁을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도대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안과 예산안이 국정조사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국정조사가 동네 시장판도 아니고 ‘이거 주면 국조 줄게’ 이런 식으로 하는 게 말이 됩니까.”
해임안을 이유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 사퇴 의사를 밝혔던 국민의힘 쪽은, 유가족들이 12월20일 찾아가 주호영 원내대표 등과 면담한 뒤에야 특위에 복귀했다. 하지만 이후 과정도 유가족들 눈에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국정조사를 보면서 유가족들 모두 똑같이 느꼈어요. 현장 조사할 때도, 기관 보고할 때도 증인과 참고인들 모두 하나같이 몰랐다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경찰이든 군대든 모든 조직이 상황이 발생하면 보고를 하지 않습니까. 그게 안 됐다는 것은 조직이 썩었다는 것 아닙니까. 너무나 답답했어요. 보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12월27일 열린 기관보고 첫째 날엔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유가족들이 회의장 앞으로 올라왔다. 당시 국민의힘 소속 특위 위원들은 “대통령실 프로세스는 어떤 정부보다 빨랐다”(조은희)거나 “각 기관의 보고가 늦어져 그 기관이 컨트롤타워로서 기능을 못한 것과 국정상황실·대통령실 대응이 부적절했냐는 다른 문제”(박형수)라고 말했다. 다른 위원들은 신현영 전 특위 위원(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닥터카’ 탑승 논란에 질의를 집중했다.
유가족들은 회의장 밖으로 나선 국민의힘 위원들에게 호소했다. 이종철 대표는 조수진 위원에게 “대화 좀 하자”고 소리쳤다. 돌아온 대답은 “(야당과) 같은 편이네”였다. 이 대표는 “진상규명을 하는데 여야가 어디 있고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느냐”며 “국민을 편가르기 하고 편을 따지는 위원은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12월29일 기관보고 둘째 날은 시작도 못하고 파행으로 끝났다. 일부 국민의힘 위원이 용혜인 위원(기본소득당 의원)의 보좌진이 국민의힘 위원 간의 대화를 몰래 촬영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항의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국정조사는 계속했어야죠. 용 위원을 특위에서 빼버려야 국조를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이종철 대표)
설 명절 전에 수사 마무리하겠다는 특수본
유가족들은 아직도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참사 당일, 소방과 경찰의 연계·공조가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이태원 참사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에서 작성된 핼러윈 축제 위험 분석 보고서는 왜 내부망에서 삭제됐고 누가 삭제를 지시했는지, 유가족 명단을 서울시는 전달했다고 하는데 왜 행정안전부는 받지 못했다고 하는지 궁금한 게 산더미다.
2023년 1월5일, 여야는 국조 기간을 열흘 늘리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기대는 크지 않다. 이 대표는 “(연장되더라도) 지금 국정조사는 결국 파행으로 가고 있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죄도 (기간 내에) 정확하게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특검까지 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간 진행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수사에 대해 유가족들은 이미 단념하고 있었다. 특수본 관계자는 1월3일 브리핑에서 “설 명절 전에 마무리하기 위해 (수사) 속도를 내고 있다”며 “사고 원인에 대한 수사는 마무리했고, 추가 입건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발표했다. “아마 저희가 여론에 더 호소하면 서울경찰청장까지는 수사 대상에 포함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이상은 없겠죠. 문제는 이런 발표를 왜 국정조사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하냐는 거예요. 미리 언론에 흘려서 반응을 보고 (추가 수사를) 하려는 거지 않을까 싶어요.”(이종철 대표)
유가족들의 예상대로 특수본은 1월5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을 불구속 송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수본은 윤희근 경찰청장에 대해선 “경찰법상 지역 내 다중 운집 상황에 대한 교통혼잡 및 안전관리는 자치경찰사무로 규정돼 있어 경찰청장이 자치사무를 지휘하거나 감독하거나 대비하거나 하는 법적 의무는 없다”고 설명했다.
정치적으로라도, 안 되면 도의적으로라도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기에도 힘이 모자란데, 유가족들은 혐오세력과도 싸우고 있다. 녹사평역 시민분향소 앞에는 추모행사를 방해하거나 자원봉사자 등을 향해 혐오발언을 내뱉는 극우단체 신자유연대의 차량이 24시간 상주해 있다. “최근에 분향소를 찾은 시민분과 신자유연대가 싸우는 일이 있었어요. 만약 사람이 다치거나 죽으면 누가 책임질까요. 법적으로 조처할 수 없으면 정치적으로라도, 그마저도 안 되면 도의적으로라도 뭔가 조처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들 듣는 척만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곳은 하나도 없어요.”
유가족들을 향해 ‘적당히 하라’거나 ‘정쟁으로 몰고 간다’는 등의 비판이 나올 때면 이 대표는 억울하다. “우리가 그렇게 힘들고 슬퍼할 때 정부나 여당이 손을 벌렸습니까. 누구 하나라도 손을 벌렸으면 우리는 고맙다며 그 손을 잡았을 겁니다. 왜? 죽을 것 같으니까요. 왜 지금 우리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나 시민대책위 쪽에 붙어서 한다고 모욕하십니까. 우리는 정쟁을 몰라요. 살기 위해 내미는 손을 잡았을 뿐이에요.”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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