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 조장" vs "내로남불"…항우연 OB로 번진 누리호 갈등

김인한 기자 2023. 1. 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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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연 지난달 12일 조직개편 이후 내부갈등 평행선…전임 원장들도 '논란 부채질'
나로호(KSLV-I) 3차 발사가 성공한 2013년 1월 30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당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가운데, 현 교육부 장관)과 김승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오른쪽, 9대), 조광래 나로호 추진단장(왼쪽, 10대 원장)이 기뻐하는 모습.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항우연은 조직개편 문제로 내부가 표류하고 있다. 기관 중심을 잡아줘야 할 전임 원장들까지 관련 '갈등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 사진=뉴시스


조직개편을 둘러싼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내부 갈등이 전임 원장들 간 다툼으로 비화했다. 항우연 전 원장 6명은 조직개편에 반발하는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발사체본부) 일부 연구자를 겨냥해 "'언론 플레이'로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며 공개 비판했다. 그러자 발사체 전문가인 조광래 전 원장은 "내로남불"이라고 맞섰다.

8일 과학계에 따르면, 항우연 내부 갈등이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또 다른 갈등을 부르는 양상이다. 항우연은 지난달 12일 발사체연구소를 신설하고 그 산하에 발사체 본부와 차세대 발사체 사업단, 고도화 사업단 등을 두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발사체본부 인력 240여명에 미래 발사체 기술개발 인력 10여명을 더해, 발사체 관련 전체 인력은 260명가량이 됐다. 그러나 발사체본부는 '시스템 자체가 와해됐다'며 반발한다. 발사체는 위성·항공 분야와 달리 군사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 기술을 모두 독자 개발해야 하는데, 연구소 산하에서 여러 조직으로 나뉘면 조직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나로호(KSLV-I)와 누리호(KSLV-II)를 개발해 온 기존 체제대로, 올해부터 차세대 발사체(KSLV-III) 개발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조직개편을 단행한 배경 및 구조(파란색)와 항우연 내 발사체 조직이 반발하는 배경 및 대안(빨간색). /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한 달 가까이 갈등 평행선…이젠 원장들까지 싸움 가세 '점입가경'
항우연과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 달 가까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서 전임 원장들까지 갈등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앞서 조광래 전 원장은 지난 3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갑작스럽게 조직개편을 해서 조직이 완전히 해체돼 일할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홍재학·장근호·채연석·이주진·김승조·임철호 항우연 전 원장 등 6명은 다음날 이를 반박하는 공동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일부 연구자들이 조직개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듯하다"며 "조직 내부 논란을 언론으로까지 끌고 와 국민들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럽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 조 전 원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발사체 전문가인 채연석 전 원장을 포함해 6명은 이상률 현 원장이 단행한 조직개편에 공감하기도 했다. 발사체본부가 항우연이 아닌 과기정통부 운영관리지침에 따라 별도 관리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한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하려면 조직개편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조 전 원장이 재반박에 나섰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궤변과 모순'이란 제목의 게시글에서 "'가재는 게 편'이라고 전임 원장님들이 현 원장 편을 들고 있다. 현장을 떠나신 지 오래돼 그런지 발사체 개발 경험이 없으셔서 그런지, 전임 원장님들의 주장은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며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내용도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또 "해외 민간기업 사례를 주로 언급하시는데 기술·자본·인력·경험·환경 등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위에 있다"며 "걷지도 못하는데 뛰지 못한다고 야단치는 격"이라고 썼다.

앞서 항우연 전 원장 6명은 호소문에서 이번 갈등을 '젊은 연구자'를 중용하는 계기로 삼자고 제안했다. 현재 조직개편에 반발하는 고정환 본부장을 비롯해 보직자들 모두 50대 이상으로, 젊은 연구자들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를 두고도 조 전 원장은 "젊은 사람이 책임을 맡으면 기술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가격도 싸게 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방법은 말씀 주시면 진짜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비꼬았다.

정작 젊은 연구자들은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이들은 항우연 내부 익명 게시판에 책임을 지우려면 처우부터 개선하라고 지적했다. 조 전 원장이 라디오에서 "누리호를 개발한 조직 안에선 처우(개선) 얘기는 별로 안 나온다. 봉급 몇 푼 더 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게시글에도 수십 개의 비판 댓글이 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항우연 신진 연구자 사이의 처우 개선 요구가 그만큼 뜨겁다는 방증이다.

2021년 기준 25개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신입 초임 임금. 국가보안기술연구소는 제외. /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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