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국 와인 심장’ 나파밸리 점령나선 호주 ‘국대와인’ 펜폴즈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최현태 2023. 1. 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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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폴즈 시니어 와인메이커 스텝 듀톤 단독 인터뷰/캘리포니아, 미국 와인 생산 80% 차지/호주 국가문화재 등극 그랜지 빚는 펜폴즈, 미국 나파밸리에 호주 포도나무 묘목 심어/20년동안 심혈 기울인 도전 끝 빈 나파밸리 시리즈 탄생
펜폴즈 대표 와인
이혼한 뒤 후유증을 와인으로 달래는 영어 교사 마일스(폴 지어마티). 그는 절친이자 3류 배우 잭(토머스 헤이든 처치)의 결혼을 앞두고 잭과 함께 ‘총각파티’를 겸해 와인여행을 떠납니다. 2004년 개봉한 와인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s)’ 내용입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포도밭이 끊임없이 펼쳐진 풍경이라니. 당장 하던 일 멈추고 달려가고 싶게 만드네요. 마일스에겐 특별한 순간에 마시려는 아끼고 아끼는 와인이 하나 있답니다. 바로 프랑스 보르도 생테밀리옹을 대표하는 최고급 와인 샤토 샤토 슈발블랑(Chateau Cheval Blanc) 1961 빈티지.  마일스가 평소 마음에 둔 단골 레스토랑 직원 마야(버지니아 매드센)는 그런 마일스에게 “당신이 1961년산 슈발블랑을 따는 그날이 바로 특별한 순간”이라는 명언을 남깁니다.
영화 사이드웨이 포스터
영화 사이드웨이 주인공 마일스와 마야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샤토 슈발블랑을 종이컵에 따라 햄버거와 함께 우적우적 씹어 먹은 뒤 마야에게로 달려가 초인종을 누르는 영화의 라스트 씬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 비싼 샤토 슈발블랑을 혼자서 종이컵에 따라 햄버거와 함께 먹다니! 와인 마니아들이 보면 “미쳤다”는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장면입니다. 당신도 ‘언제 마실까. 아주 특별한 날에 마셔야지’라고 고민하며 셀러 깊숙하게 넣어 둔 와인이 있나요. 당장 오픈하세요. 더 늦기 전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그 와인을 마시는 그날이 특별한 순간이 될테니까요.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 아름다운 포도밭이 유혹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로 달려갑니다.
캘리포니아 주요 와인산지
나파밸리 와인산지
◆신이 축복한 땅, 캘리포니아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와인생산규모는 이탈리아가 1위이고 프랑스, 스페인에 이어 미국은 4위입니다. 칠레, 호주, 아르헨티나가 뒤를 잇습니다. 하지만 와인소비는 미국이 1위이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순입니다. 캘리포니아는 이런 와인소비 대국인 미국을 대표하는 와인 산지로  전체 생산량의 80%를 차지합니다. 그중에서도 미국 와인의 심장, 나파밸리의 생산량은 캘리포니아 와인의 4%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미국 와인하면 나파밸리가 떠오를 정도로 프랑스 보르도와 부르고뉴, 이탈리아 피에몬테와 토스카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산지가 됐습니다. 
포도밭에 즐기는 와인여행.  캘리포니아와인협회
포도밭. 캘리포니아와인협회
미국 와인의 역사는 수천년동안 와인을 빚은 구대륙에 비하면 아주 짧습니다. 1838년 나파밸리에 처음 포도나무 심어졌고 1857년 소노마에 최초의 상업적 와이너리가 지어집니다. 로버트 몬다비, 하이츠셀러, 스텍스립 등 미국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들도 1960년대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럼에도 미국 와인이 세계 와인시장의 주류가 된 것은 ‘신이 축복한 땅’ 캘리포니아의 뛰어난 기후 때문입니다. 유럽은 서리나 비 피해를 당할 수 있어 포도가 완전히 익을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큰 모험입니다. 따라서 포도수확때 당도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반면 캘리포니아는 당도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뛰어난 기후 덕분에 포도가 완전히 익을때까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처럼 늦게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잘 익어 부드럽고 풍부한 탄닌이 얻어 집니다. 캘리포니아 와인의 품질을 끌어 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이런 ‘롱 행타임(long hangtime)’이랍니다.
기후 설명. 캘리포니아와인협회
카베르네 소비뇽. 캘리포니아와인협회
포도 재배 방식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럽은 포도나무 뿌리가 땅속 깊숙하게 내려가도록  빽빽하게 심어 서로 경쟁을 붙입니다. 하지만 나파밸리는 워낙 날씨가 좋고 토양이 비옥하다보니 빽빽하게 심어도 경쟁이 안 됩니다. 이에 포도밭에 다른 작물 같이 심어서 표면의 영양분을 이런 식물이 먹게 만듭니다. 그러면 포도나무는 영양분을 찾아 깊이 뿌리를 뻗게 됩니다. 이런 토양과 기후에서 가장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는 품종이 바로 카베르네 소비뇽이랍니다. 보르도보다 훨씬 풀바디이고 탄닌도 강렬하지만 아주 부드러운 스타일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으로 빚어져 캘리포니아 와인이 명성을 얻게 됩니다. 
포도밭. 캘리포니아와인협회
오크통. 캘리포니아와인협회
또 하나. 배럴 퍼먼테이션(오크통 발효)도 큰 역할을 합니다. 부르고뉴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아예 발효부터 스틸 탱크가 아닌 오크통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면 과일 풍미와 오크 풍미가 잘 융합됩니다. 부르고뉴 외에는 유럽에서 이런 오크통 발효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캘리포니아, 특히 나파밸리의 많은 부자 와이너리들은 프렌치 오크통을 아끼지 않고 쓰면서 훨씬 부드러운 풍미와 상당히 높은 품질의 와인이 빚어집니다.
펜폴즈 그랜지
◆펜폴즈 20년 연구 나파밸리 시리즈 탄생 
나파밸리는 1981년에 캘리포니아 최초로 포도 재배 지역(AVA)으로 선정됐고 현재 세부 산지는 16개 AVA로 구성됐습니다. AVA별로 기후가 다릅니다. 샌프란시스코 만을 흐르는 한류가 내륙까지 들어가기때문에 나파밸리 아랫동네인 로스 카네로스(Los Carneros)는 서늘한 기후로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샤르도네나 피노누아가 잘 자랍니다. 반면 내륙으로 들어가면 너무 더워집니다.  따라서 너무 바닷가도 아니고 너무 내륙도 아닌, 딱 중간쯤에 있는 오크빌(Oakville)과 루더포드(Rutherford)를 나파밸리에서도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 생산지로 꼽습니다.  
BIN 704
한국을 찾은 스텝 듀톤
호주 국가문화재에 등극한 그랜지(Grange)를 빚는 ‘호주 국대 와이너리’ 펜폴즈(Penfolds)가 이런 미국 와인의 심장 나파밸리에 깃발을 꽂았습니다. 20년 세월동안 호주의 포도나무 묘목을 나파밸리에 옮겨 심어 실험을 거듭하면서 공을 들였는데 드디어 펜폴즈의 나파밸리 시리즈 첫 작품 BIN 704, BIN 600, BIN 149이 탄생했습니다. 2018년이 첫 빈티지로 BIN 704가 1월부터 금양인터내셔널을 통해 한국시장에 공급되고 있습니다. 펜폴즈 나파밸리 시리즈 프로젝트를 이끄는 인물은 시니어 와인메이커 스텝 듀톤(Steph Dutton). 한국을 찾은 그녀와 함께 섬세한 와인메이커 손길이 담긴 펜폴즈 나파밸리 와인의 세계로 떠납니다. 유전학을 전공한 그녀는 호주 모닝턴 페닌슐라의 와이너리와 독일 모젤 와이너리에서 리슬링 양조 등을 경험한 뒤  2010년 펜폴즈 레드와인 메이킹팀에 합류해 수석 와인메이커 피터 가고(Peter Gago)와 함께 펜폴즈 혁신을 이끌고 있습니다.  
BIN 704
◆나파밸리 최고의 포도로 빚는 BIN 704
BIN 704는 나파밸리에서 가장 뛰어난 오크빌, 루더포드 그리고 하웰마운틴(Howell Mountain) 카베르네 소비뇽을 사용합니다. 석류, 블랙체리의 신선한 과일향과 산도가 돋보이고 월계수 잎, 야생 타임, 후추 같은 허브향도 어우러집니다. 삼나무에서 아몬드, 다크 초콜릿까지 다양한 풍미가 따라오고 탄닌은 실크처럼 부드럽네요. “2018년은 굉장히 강한 구조감을 지닌 빈티지랍니다. 아주 부드러운 스타일로 매우 따뜻한 느낌이 많아요. 테이스팅해보면 나파밸리 토양과 기후에서 오는 영향과 펜폴즈 양조 스타일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요. 부드러운 느낌의 검은 과일, 약간 그릴한 육류, 생고기 같은 세이버리한 느낌까지 와인에서 찾을 수 있답니다. 기후조건은 비슷했지만 2019년보다 마일드한 빈티지랍니다.”
스텝 듀톤
펜폴즈는 1998년 남호주 바로사 밸리와 펜폴즈 역사가 시작된 애들레이드 매길 에스테이트(Magill Estate)의 포도나무를 나파밸리와 파소 로블로스 두곳에 옮겨 심어 실험을 거듭하는 나파밸리 프로젝트에 돌입합니다. 그동안 계속 와인을 만들었지만 상업적인 판매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오랫동안 피터 가고, 앤드류 발드윈(Andrew Baldwin)와 함께 나파밸리와 호주를 오가면서 와인을 만들었어요. 2017년 빈지티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뤄냈고 드디어 2018년 빈티지를 2021년부터 시장에 내놓게 됐어요. 만족할 만한 품질을 얻으려 집착하다보니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답니다.” 
BIN 704와 BIN 407
BIN 704와 BIN 407
BIN 704 이름은 펜폴즈의 기존 작품 BIN 407에서 가져왔습니다. 남반구와 북반구, 지구 반대편에서 만들고 서로 흡사한 양조 방식을 선택했기에 와인 이름에 ‘거울 이미지’를 담았다는 군요. “407과 704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나오지만 와인을 최종 블렌딩하기 전에 포도즙의 등급을 나는 클래시피케이션(classification)을 거치는 양조방식은 굉장히 유사해요. 두 와인 모두 퓨어하고 깔끔하죠. 특히 품종 특성이 잘 드러나는 교과서적인 카베르네 소비뇽의 캐릭터를 지녔다는 점이 비슷합니다. 검은계열 과일과 말린 허브류 풍미가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다른점은 704는 모든 포도를 나파밸리에서 조달하고 프렌치 오크만 사용합니다. 그러다보니 풍미가 아주 쨍한 붉은 과일에 좀 더 집중돼 있고 향신료 등 스파이시한 풍미도 느껴집니다. 반면 407은 프렌치 오크와  미국 오크를 섞어 쓰고 붉은 흙인 테라로사 토양으로 유명한 쿠나와라를 비롯해 바로사밸리, 맥라렌베일, 패써웨이, 와튼블리의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빚는 멀티 리즌, 멀티 빈야드 와인입니다. 검은 과일향이 지배적이고 스파이시한 느낌이 더 강합니다.”
BIN 704를 소개하는 스텝 듀톤
BIN 704는 아시아에선 한국 시장에만 출시됐습니다. “나파밸리 와인이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는 한국 소비자들 좋아하는 풍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아시아에선 한국에만 독점적으로 출시했습니다. 한국 시장은 소비자들이 와인을 잘 알고 교육도 많이 이뤄집니다. 와인을 평가하는데 조예도 깊더군요. 나파밸리 시리즈는 펜폴즈 와인의 최상급 레인지로 요즘 프리미엄 와인이 소비가 크게 늘고 있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으면 좋겠네요.” 
펜폴즈 와인메이커
◆섬세한 와인메이커 손길로 빚다
듀톤은 풀바디이면서도 굉장히 우아한 풍미와 개성을 지니고 질감이 탁월한 와인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군요. 피터 가고가 와인메이킹을 총괄하고 있는데 여러 와인메이커들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어느 정도 반영될까요. “매년 1% 정도 펜폴즈 양조에 변화를 주려고 노력해요. 더 나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항상 더 나은 펜폴즈를 만들면서 어느 정도 개성을 담기 위해 약간 실험적인 접근을 한답니다. 와인 양조는 패션산업과 비슷해요. 옷은 각각 브랜드 마다 독자적인 스타일 있죠.  각각의 크레이티브 디렉터들이 브랜드 자체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개성을 담는데 이런 패션 업계랑 와인 양조는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것은 와인메이커들끼리 블렌딩 하기전 양조된 와인의 등급을 분류하는 시음을 하면서 엄청 많은 대화를 하는데 의견이 98% 의견 일치해요. 2%는 불일치하지만 이 때문에  펜폴즈 와인이 점점 발전하고 더 좋은 와인이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피터 가고
펜폴즈는 그랜지를 탄생시킨 초대 수석 와인메이커 맥스 슈버츠(Max Schubert)에 이어 돈 디터(Don Ditter), 존 듀발(John Duval)을 거쳐 현재 4대 수석 와인메이커 피터 가고 양조를 이끌고 있습니다. 피터 가고 시대의 펜폴즈 양조 스타일은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펜폴즈는 언제나 장기숙성형으로 와인을 만들어요. 그런데 요즘은 와인 구매 고객 98%가 24시간내에 와인을 소비한답니다. 와인시장은 파인 와인 시장과 일반 와인 시장이 있다고 생각해요. 존 듀발과 피터 가고의 가장 큰 차이점중 하나가 피터 가고는 와인 메이킹 팀에게 지금 먹어도 마시기 편한 와인 만들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숙성시킬수 있는 와인을 만들라고 요구한답니다.”
멀티리즌으로 빚는 펜폴즈 그랜지와 생 헨리
펜폴즈는 멀티리즌·멀티빈야드와 싱글빈야드 와인이라는 ‘투 트랙’을 추구합니다. 그랜지와 생 헨리(St. Henri)가 대표적인 펜폴즈 멀티리즌 와인입니다. 나파밸리 시리즈 BIN 149와 BIN 600에도 이런 펜폴즈 멀티리즈·멀티빈야드 스타일이 잘 담겨있습니다. BIN 149는 나파밸리 오크빌, 루더포드, 하웰마운틴 카베르네 소비뇽과 바로사 밸리 등 남호주 카베르네 소비뇽를 섞어 만듭니다. 프렌치오크(새오크 80%)와 미국오크(새오크 20%)를 함께 써 17개월 숙성합니다. BIN 600은 카베르네 소비뇽 84%, 쉬라즈 14%로 나파밸리, 소노마, 파소 로블스 포도로 미국오크(새오크 40%)에서만 17개월 숙성합니다.
BIN 149
BIN 600
스텝 듀톤
그렇다면 밀티리즌과 싱글빈야드중 어떤 와인이 더 좋은 걸까요. “와인에서 남호주의 얘기를 들려주려면  멀티 리즌을 선택해요. 처음에는 이런 멀티 리즌으로 와인을 빚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와인메이커의 터치는 달라졌고 싱글빈야드의 스토리도 알려주고 싶어졌죠. 솔로와 합창의 차이라고 할까요. 둥글둥글하게 다 보여주고 싶을 때 멀티 리즌,  하나만 보여주고 싶을때는 싱글빈야드를 선택하는 거죠.”

와인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궁금했다. “와인 이즈 엔조이먼트(Wine is Enjoyment)! 와인을 즐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냥 단순하게 접근할수도 있고 탐닉한다고 볼수도 있죠. 하지만 그 공통점은 즐기는 것이랍니다. 엔조이먼트하세요.”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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