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오마카세'는 어쩌다 대세가 되었을까
새롭게 시작된 한 해 계획은 잘 세우셨나요? 아니면 혹시 당신의 새해는 설 연휴부터 시작? 2023년의 끝자락엔 어떤 분위기와 풍경이 펼쳐질까요. 좀(?) 이르지만 대충 그려볼 순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언론사들이 한 해를 요약하는 10대 뉴스라는 걸 만들 테고요.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고(참고로 지난 2022년은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의 '과이불개'였습니다), 그리고! 김난도 교수팀은 새로운 트렌드 리포트를 내겠죠.
매해 새로운 키워드들로 요약되는 새 책이 나올 수 있을 만큼, 트렌드의 주기와 속도는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파도치고 있습니다. 트렌드, 말하자면 유행이라는 건 때로 아주 작은 계기 때문에, 또는 그간 차곡차곡 쏟아붓던 물독이 마침내, 터지듯 흘러나올 때도 있죠.
'스강신청' 열풍 안 식었다…파생 상품으로도 확장
[ https://www.bigkinds.or.kr/v2/news/newsDetailView.do?newsId=01100401.20020725062021020 ]
그로부터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거의 연간 1-2회 단위로 언급되었던 키워드 '오마카세'는 언급된 기사가 2019년 98건, 2020년 144건, 2021년 22건, 2022년 413건으로 본격 폭증했습니다. 시작된 겁니다, '스강신청'이요. 오마카세를 판매하는 스시야 예약 잡는 일이 대학교 인기 강의를 신청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고 붙여진 별명입니다.
이제는 많이들 알고 계시지만 '오마카세(おまかせ)'는 일본어로, 어떤 일 처리를 타인에게 맡기는 서비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시 오마카세가 셰프에게 그날의 메뉴를 전담시키는 것처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특정 서비스를 맡기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서도 단지 스시뿐 아니라 오마카세 요금제, 오마카세 배송처럼 '맞춤형' 서비스를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하고 있죠. 순화 운동 차원에서 '맡김' 또는 '일임' 차림으로 부르자는 캠페인도 있는데 어떠세요? 그래도 '-카세'가 아직 입에 짝짝 붙죠?
호텔에서나 즐기던 미식이 동네 맛집이 되기까지
보통 전식, 본식 스시, 후식의 세 구성으로 진행이 되는데 전체 코스의 개수와 셰프가 선택한 그날의 '재료'가 이 등급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입니다. 전식은 전복이나 문어 같은 매끄러운 질감의 재료로, 이후 담백한 흰 살 생선에서 등 푸른 생선, 참치, 장어 순으로 제공되고 스시 코스가 끝나면 우동이나 소바, 이후 디저트의 구성이 일반적입니다.
가격 상방이 열려있는 하이엔드 등급 오마카세는 재료 사용의 자유도가 높고,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엔트리 등급 오마카세의 경우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주류를 필수로 주문하게 하는 곳들이 많습니다.
요식업계에 따르면 국내에 오마카세를 처음으로 선보인 곳은 바로 신라호텔(아리아케)과 조선호텔(스시조) 두 곳입니다. 소수의 국내 미식가를 대상으로 두 호텔은 각각 일본 유명 스시야에서 대표 셰프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하며 국내 오마카세 부흥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성업 중인 압구정 청담 등지의 스시야는 두 호텔에서 배출한 셰프들이 독립해 차린 가게들입니다.
[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BQqkb4NLZ0v2Ml1gAfamEqx9mie5MwZLCUbGH8IiUHE/edit#gid=145191961 ]
오마카세는 '요즘 요식 창업'의 정답일까
실제로 대다수의 스시야가 테이블 좌석이 아닌 바(bar) 형태의 카운터석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에서 손님들을 받을 수 있어 임대료 등 공간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 경제적이고, 하이엔드 스시야에서 시작한 '예약 보증금 제도'가 안착하면서 재고 관리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스시를 만드는 거의 전 과정을 고객들에게 보여주면서 대화를 통해 라포를 형성하기도 쉽고, 고객과의 가까운 거리 덕에 홀 서빙 직원을 고용해야 하는 부담도 대폭 줄어들 수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주방장의 실력이 그대로 드러나기 쉽고, 작은 스시야의 경우 여러 역할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주방장이 체력적으로 고되다는 점은 있겠습니다만 '작더라도 확실한 장점'을 원하는 역시 '요즘 세대' 젊은 사장님들에게 오마카세는 너무나 매력적인 선택지라는 겁니다.
6년 전 경기 화성시에 미들급 스시야를 연 백승엽 셰프도 "생존을 위해 창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마카세가 가장 적절해 보였다"고 운을 뗐습니다. 창업 당시엔 고가의 식대 때문에 타깃 고객층을 '비즈니스 접객'으로 잡았지만 지금 대부분 고객은 2-30대 연인들 또는 가족들입니다.
'허세'냐 '문화'냐
한 부동산 유튜버는 오마카세를 일컬어 분수에 맞지 않은 소비 행태라 젊은 세대들이 지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허세의 인플레이션'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가 SNS 등을 통해 전파되면서 젊은이들이 자산을 모으는 데 악영향을 끼친다는 겁니다. 그 표현이 유행이 되면서 오마카세는 요즘 젊은이들의 사치 풍조를 상징하는 '오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RuCAeIMo5xI&t=433s ]
계급의식을 조장하는 맥락에서 쓰이기도 합니다. 소속을 인증하고 가입할 수 있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한 의사 유저가 유명한 스시야를 예약하기 어려우니 월 소득이 세후 400만 원 이하인 사람들은 오마카세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시글을 올려 열띤 토론이 붙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국 사람들의 미식 문화가 본격화된 시점에서 오마카세 열풍을 단순 '허세'로 규정하는 건 납작한 해석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오마카세 유행을 "기존 문화에서 해결해주지 못했던 결핍의 해소 창구"로도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해진 규격과 규칙처럼 식사를 주고받는 기능을 수행한 그간 주류 한국 식사 문화에서, (오마카세는) 일종의 '쌍방성'을 획득한 경우라고 본다." 소비자들이 음식을 먹는 행위를 목적 수행 차원에서 인식하기보다 일종의 '콘텐츠'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실제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셰프들도 근래 고물가에 '짠테크'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지만 아직은 가게 경영 상황이 경기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고 전해왔습니다. 오히려 경쟁자들이 늘어 오마카세 구성의 재료 질과 참신함, 즉 셰프의 실력으로 금세 도태될 곳과 성공할 곳이 확연히 나누어지는 게 추세라는 겁니다.
부산에서 가게 문을 연 지 1년 반이 되었다는 김준호 셰프는 "경기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만 한 번 높아진 입맛은 내려가지 않는 것 같다"며 "오마카세가 유행을 탄 건 맞지만 입맛의 수준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4-5년 전 식당에서 일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등 푸른 생선에 대한 선입견과 활어만 좋다는 인식 때문인지 고등어는 빼달라고 했지만 요즘엔 고등어만 따로 찾는 손님들이 생길 정도다. 숙성 회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미식에 대한 수준이 높아졌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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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기자choic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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