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멘터리] "아바타"가 몰고 온 극장 경쟁…명당 찾기 어렵네
“아바타”는 어느 극장에서 보는 게 가장 좋을까요?
“아바타:물의 길” 개봉 전부터 영화 커뮤니티들을 뜨겁게 달궜던 질문입니다. 관객 850만 명을 돌파한 흥행 열기만큼 멀티플렉스들의 특별상영관 스펙 경쟁도 치열합니다. “아바타”는 영화 역사에서 CG와 3D 혁명을 일으킨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현존 최고의 영상 기술을 구현한 영화입니다. 그래서 이 기술들을 가장 제대로 볼 수 있는 영화관이 어디냐는 영화 팬들의 갑론을박과 관람기가 게시판에 이어진 거죠.
국내 3대 멀티플렉스인 CJ CGV와 롯데시네마, 그리고 메가박스는 각각 용산 아이맥스관과 롯데월드타워 수퍼플렉스관, 코엑스 돌비시네마관이라는 시그너처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화팬들은 이 극장들을 각각 ‘용아맥’과 ‘월수플’, ‘코돌비’로 줄여 부릅니다. 각사에서 가장 뛰어난 시설을 가진 특별관의 별칭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영화팬들의 성지’로 불리는 이 세 극장에서 어떤 '아.바.타. 경.험.'을 할 수 있을지 멀티플렉스 3사 기술 담당자들의 설명을 듣고 비교해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아바타”는 3D 영화입니다. (물론 2D로 보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4K 화질의 영화입니다. 4K는 풀HD의 4배 화소수를 가진 초고화질(UHD) 영상입니다. 또, 영상의 밝기와 명암비를 최적화한 ‘하이 다이내믹 레인지(HDR)’ 기술이 적용된 영화이고, 영상의 움직임이 매끄럽게 보이도록 초당 48프레임으로 제작된 ‘하이 프레임 레이트(HFR)’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플랫 또는 비스타비전 비율이라 불리는 1.85:1의 화면비로 제작됐습니다.
CGV 용산 아이맥스관
‘용아맥’은 CGV 아이맥스관 중 유일하게 ‘GT 레이저’를 씁니다. 벨기에 바코사의 제품을 아이맥스에 맞게 개조한 4K 듀얼 레이저 영사기입니다. (그만큼 화면이 밝다는 겁니다. 화면 밝기는 3D 영화에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3D 안경은 돌비사의 편광 방식 제품을 사용합니다. 스크린은 빛 떨림 현상(스펙클링)을 막기 위해 96개의 쉐이커를 배치한 실버 스크린입니다.
‘용아맥’ 사운드는 ‘아이맥스 12채널’을 구현할 수 있는데, IMDB(인터넷영화데이터베이스)에는 “아바타”가 아이맥스 6채널, 돌비 애트모스 등으로 제작된 걸로 나와 있으니 어쨌든 원본의 사운드는 충실히 구현할 수 있는 극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맥스 사운드는 중저음에 특화돼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용아맥’은 HFR 영상도 구현합니다. CGV는 “아바타” 상영을 준비하면서 아이맥스 본사에서 HFR이 가능하도록 서버와 영사기를 업그레이드했다고 밝혔습니다.
다음으로 HDR인데, 좀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뒤에서 따로 얘기하겠습니다. HDR이란 개념 자체가 아직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기술표준 격이기 때문입니다. CGV는 ‘용아맥’은 아이맥스 나름의 밝기와 명암비를 구현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주문 제작된 영사기(Customized Projector)로 비교할 수 없는 밝음과 뛰어난 선명한 화질 제공’이라고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CGV 상영 기술 담당자인 심영애 씨는 “진정한 HDR, 리얼 블랙 영상은 기존 스크린 영사관이 아니라 LED영화관에서만 가능하지 않겠냐”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LED관은 영사기로 스크린에 빛을 쏘지 않고 TV처럼 디스플레이 자체가 발광합니다) 어쨌든 ‘용아맥’은 공식적으로 HDR을 구현한다고 밝히고 있지는 않습니다.
메가박스 코엑스 돌비시네마관
크리스티사와 공동 개발한 4K 듀얼레이저 영사기를 쓰고, 3D는 ‘용아맥’과 마찬가지로 돌비사의 편광 방식 안경 등으로 구현합니다. 영사기에 3D 필터를 낄 필요가 없고 제품 단가가 높은 만큼 반복해서 사용하지만, 흔히 접하는 일회용 편광 안경보다는 다소 무겁습니다.
스크린은 3사 대표관 중 유일하게 화이트 펄 스크린입니다. 국내 스크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버 스크린에 비해 펄 스크린은 색감이 우수하고 측면에서 볼 때 눈부심이 덜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실버 스크린보다 밝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3D 영화에는 불리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돌비 비전’ 기술을 적용한 ‘코돌비’ 스크린은 3D 환경에서도 일반 2D 영화 수준인 14 풋램버트(휘도의 단위로 약 30㎝ 앞에서 초를 켰을 때 조명을 받은 면의 밝기가 1풋램버트)의 밝기를 보여준다는 게 메가박스 쪽의 설명입니다.
돌비사가 설계와 시공 감리한 ‘돌비시네마’관이기 때문에 ‘코돌비’의 사운드는 극장 곳곳에 배치된 100개 가까운 스피커를 통해 입체적인 사운드를 내는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또 ‘돌비 비전’이라는 이름의 기술로 HDR과 HFR을 구현합니다. 그래서 메가박스는 예매 사이트에서도 상영관 스펙에 ‘돌비시네마 4K HDR HFR’이라고 명기하고 있습니다. (CGV는 ‘IMAX LASER 3D’, 롯데시네마는 ‘3D Dolby Atmos’라고 표시)
스크린 크기는 16.8m×6.7m으로 3사 대표 극장 중에서는 가장 작습니다. (물론 프로젝터로 TV를 볼 때 화면 크기를 줄이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동일한 사양의 영사기로 투사한다고 가정했을 때 작은 스크린은 화질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화면비는 2.39:1 스코프 비율입니다. 영화 볼 때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면비인데, 문제는 “아바타”가 1.85:1로 제작됐다는 점입니다. 1.85:1 비스타비전 화면비의 극장에서 볼 때와 비교해보면 화면 아래위가 일부 크롭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극장에서 크롭하는 것은 아니고 배급사인 디즈니에서 스코프 비율의 DCP(상영본)를 따로 공급합니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수퍼플렉스관
3D는 ‘용아맥’이나 ‘코돌비’와는 다른 편광 방식으로 구현합니다. 영사기에 3D필터가 필요한 리얼D사의 3D안경과 장비를 씁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접하는 3D 안경인데 상대적으로 단가가 낮은 대신 일회용이고 가볍습니다.
스크린은 실버 스크린이고, 가로가 길기 때문에 스크린을 살짝 휘고 기울여 관람 각도를 개선했습니다. 지난달 재개관하면서 좌석 수를 무려 절반이나 줄인 대신 고급 리클라이너석 등을 설치해서 국내 최고 수준의 쾌적한 관람 환경을 제공합니다.
‘월수플’은 크리스티사의 최신 4K 듀얼 레이저 영사기를 운용하는데 “아바타”는 2K HFR 버전으로 상영하고 있습니다. HFR은 일정 수준 이상의 영사기와 서버가 뒷받침돼야 가능한데 ‘월수플’은 HFR 구현이 가능한 돌비 서버를 쓴다고 밝혔습니다. 또 롯데시네마는 ‘월수플’에 국내 최다인 152개의 쉐이커를 설치해 화질을 높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월수플’도 ‘돌비 애트모스’관입니다. 새롭게 단장한 극장이라 돌비의 최신 사운드 시스템인 ‘돌비 136 사운드 패키지’와 ‘배플 시스템(스크린 후면 흡음 칸막이로 반사음과 간섭음을 차단)’를 도입했습니다. 돌비 서버를 쓰고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지만, ‘월스풀’은 ‘돌비시네마’관은 아닙니다. 돌비 시스템을 구매해서 운용하는 극장이지요.
'HDR'(하이 다이내믹 레인지)이 뭐길래
다만, 최대한 많은 관객들에게 기술 혁신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 불타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특별한 동기' 없이 일부러 일부 상영본 사양을 낮춰서 공급한다? 그건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로 보입니다.
HDR 이슈와 관련해 "씨네21" 최근호(1387호 ‘VFX 슈퍼바이저가 말하는 “아바타:물의 길”의 시각효과’)에 참고할 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아타바” 제작에 참여했던 한국인 VFX 슈퍼바이저인 박영빈 씨의 말입니다.
“합성 파트에서 HDR 개념을 확실히 많이 적용했다. HDR은 기존 SDR(스탠다드 다이내믹 레인지)에 비해 가장 어두운 포인트와 가장 밝은 포인트 값의 범위가 훨씬 넓다. 사람의 눈은 어두운 공간에서도 밝은 창밖을 볼 수 있는 반면에 SDR 눈에는 그게 다 날아가 보이지 않는다. HDR이 이 단점을 기술적으로 보완해서 모두 잡아내도록 했다. 전체적인 밝기가 높아지자 아이맥스 레이저나 3D 효과에서도 더 잘 인식하게 됐다.”
“아바타”에 적용된 HDR 기술이 (‘돌비 비전’이 아닌) 타 시스템에서도 화질 개선의 효과가 있다는 말입니다. HDR을 둘러싸고 이런 이슈가 생기는 것은, HDR이 단일한 기관이 국제적으로 엄격하고 명확하게 규정한 기준에 따라 정의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아직은 일종의 기술 표준/규격으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현재 HDR 기술 표준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돌비입니다. 삼성전자는 HDR10+라는 이라는 고화질 영상 기술 표준을 내놓고 TV플랫폼을 중심으로 엔비디아, 아마존 등과 손잡고 영역을 넓혀가고 있고, 돌비는 삼성전자에 앞서 ‘돌비 비전’이란 이름으로 HDR 기술 표준을 제시해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에서 우위에 서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삼성전자의 HDR10+보다 낫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글로벌 특별관 시장의 양대 산맥 IMAX 대 Dolby
캐나다의 아이맥스사와 미국의 돌비사는 둘 다 1960년대 설립된 영상과 음향 관련 회사입니다. ‘이미지 맥시마이징(image maximizing)’에서 나온 말답게 아이맥스(IMAX)는 전용 카메라와 영사기, 스피커를 제작하고 극장을 설계하는 등 영상과 전문 상영관 분야에서 출발해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영화관으로 성장했고, 물리학자인 돌비 박사의 이름을 딴 돌비는 카세트테이프 노이즈 제거 기술 등 음향 기술을 바탕으로 시작해 점차 영상 기술 시장과 극장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아이맥스는 압도적인 스크린 크기와 웅장한 사운드로, 돌비시네마는 입체감 충만한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와 뛰어난 색감의 ‘돌비 비전’ 영상으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아이맥스 극장과 돌비시네마 극장을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두 상영관은 영화 상영 직전 극장 시스템 자체에 대한 홍보 필름을 상영합니다.
아이맥스는 “차라리 영화와 하나가 되십시오(Be a part of one)” , 돌비는 “당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삶(Life as you’ve never seen it)", "당신이 느끼지 못했던 감정(Emotion as you’ve never heard it)”이라는 카피로 자사 극장의 강점과 우수성을 자랑합니다. 코로나 대유행과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 등으로 이왕 극장 가서 볼 거면 특별관 가서 본다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이 두 영화관 브랜드에 대한 영화 팬들의 관심도 높아졌고 자연히 두 브랜드 간 자존심 대결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아이맥스 쪽에서 보면 돌비가 장악하고 있는 극장용 HDR 기술에 대해 아이맥스가 이를 충족하네, 아니네라고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릴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맥스는 자신들만의 아이맥스 카메라와 (디지털)필름 포맷, 스크린, 레이저 영사기, 고출력 스피커로 돌비의 HDR 규격(‘돌비 비전’)과 ‘돌비 애트모스’에 뒤지지 않는(또는 넘어서는) 극장 경험을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명당은 어디…
스펙은 스펙일 뿐, 영화 관람에는 주관적 요소가 많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관 평가는 개인 취향을 타고, 상영되는 영화를 타고, 극장이 구현 가능한 스펙을 타는 것은 물론, 해당 극장이 '실제로 운용하는' 스펙을 탑니다. (영사기가 구현할 수 있는 최대 밝기가 100이라고 해서 극장이 매번 100을 가동하는 게 아니고, 스피커 최대 출력이 10이라고 할 때 극장이 항상 10을 트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2D를 선호하는 관객들도 많고, HFR 영상이 눈에 거슬릴 때도 있다는 관객도 있습니다. 4K, HDR의 구현 여부가 극장에 따라 어느 정도의 관람 차이를 가져오는지는 개인별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때로는 너무 쨍한 화면보다 필름처럼 부드러운 화면이 더 보기 좋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하니, 일단 관람석에 앉은 뒤라면,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라는 구상 시인의 시구를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극장 선택 전이라면 일단 상영되는 영화가 어떤 기술로 제작된 영화인지 살펴보고 극장을 결정하세요. 돌비 애트모스관에서 영화를 봐도 돌비 애트모스로 제작된 영화가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4K가 구현되는 상영관에 가야 4K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2K 상영관에서 4K 영화를 봐도 그건 2K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할 겁니다. (4K 영화관은 국내 전체 영화관 중 10% 남짓입니다)
또, 플랫(1.85:1)인지 스코프(2.39:1)인지 화면비를 보시기 바랍니다. 화면비는 의외로 중요합니다. 감독은 화면비에 따라 미장센을 구성하겠죠? (한 영화에서 화면비를 3개나 쓴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같은 영화도 있습니다) 어떤 내용과 어떤 스타일의 영화인지도 미리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잔잔한 멜로 영화를 아이맥스에서 보면 뭐 하겠습니까? 진지하고 소박하게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돌비시네마에서 본들 효용이 클까요?
영화관 접근성도 보고 관람료도 잘 따져 가성비를 판단해보세요. 누구와 보느냐도 중요하겠죠? 벼르고 벼른 데이트라면 극장 선택할 때 또 다른 기준을 적용하겠죠. 저는 대개의 경우에는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가깝고 적당한 크기의 쾌적한 영화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작은 극장이라도 집에서 보는 것보다는 훨씬 큰 스크린, 암전, 함께 본다는 느낌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면 적당한 영화적 체험에 크게 부족하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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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기자joo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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