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노예제 닮은 싱가포르 이주노동…한국도 입맛 다시나

한겨레 2023. 1. 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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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홍명교의 이상동몽][한겨레S] 홍명교의 이상동몽
보호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싱가포르 시내에 있는 이주노동자 기숙사.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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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네덜란드 등과 경쟁하면서 동아시아 식민지 개척과 상품 시장 확장에 열을 올리던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믈라카해협의 작은 섬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네살 때부터 동인도회사의 충실한 구성원으로 일하던 스탬퍼드 래플스는 이곳에 무역 거점을 세우기로 계획했다. 1819년 1월 말, 말레이반도 남쪽 조호르를 다스리던 술탄의 첫째 아들 틍쿠 롱을 윽박질러 섬을 차지한 그는 이곳에 정착촌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싱가포르라는 군사·무역도시가 탄생한 순간이다.

약 150년 동안 영국은 도시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다양한 이주민을 분할 통치했다. 식민통치의 편의를 위해 화인 마을, 인도인 마을, 유럽인 마을, 아랍인 마을, 말레이인 마을, 부기스인 마을 등으로 구역을 나누고, 새로운 항구로 이주해온 사람들을 인종별로 배치한 것이다.

이주노동자 향한 불평등

식민 도시 계획의 이러한 기원은 오늘날 싱가포르 인구 분포와 특성에서도 드러난다. 2021년 싱가포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인구 545만명 중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는 이주민은 27%인 147만명(코로나19 이전엔 168만명)에 이른다. 인종별 분포도 화인계 74.3%, 말레이계 13.5%, 인도계 9.0% 등으로 다인종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모두 19세기 이후 이곳으로 이주해온 이들의 후손이다.

다른 한편 인도인들은 19세기에 남인도와 스리랑카 일대에서 반강제적으로 온 노동자, 군인, 죄수들의 후손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때로는 인도 사회의 격변에 영향을 받으며, 때로는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공동체 문화를 형성해왔다. 리틀인디아는 바로 그러한 인도인들이 밀집해 있는 중심지다.

2013년 12월, 이곳 리틀인디아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일요일 저녁임에도 출근해 온종일 건설 현장에서 일한 인도인 노동자 삭티벨 쿠마라벨루가 기숙사로 돌아가는 사설 버스에 올라타던 중 버스에 깔아뭉개져 사망한 사고가 그 발단이었다. 동료 노동자가 온몸이 찌그러진 채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40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리틀인디아 한복판에서 경찰차를 불태우고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당국에 의해 ‘폭동’으로 규정된 이 시위는 2시간이 지난 자정 녘에 진압됐다.

집회·시위를 금지한 싱가포르에서 이 시위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당국은 엄격한 법 집행을 강조하면서 약 4천명의 이주노동자를 소환조사했다. 33명의 적극 가담자를 기소했고, 57명의 단순 가담자를 강제추방했다. 심지어 2015년부터는 주말 내내 리틀인디아에서의 음주를 금지했다. 사망한 노동자가 술에 취했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벌어졌다는 게 그 이유였다. 로이 응에릉 활동가는 “싱가포르의 뿌리 깊은 불평등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라며 “(이주노동자들은) 싱가포르에 큰 기여를 했지만, 가장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저임금으로 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건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이동할 자유는 사라졌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투아스 항만에 편의점과 술집, 영화관이 있는 대규모 기숙사 단지를 건설했는데,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닭장 같은 방에는 2층 침대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고 최대 20명이 생활한다. 이는 더 이상 리틀인디아가 있는 도심 쪽으로 오지 말라는 금지 통보나 다름없었다. 투아스 항만에서 일하는 40만명 중 34만명이 이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한다. 올해 4월부터 외국인 고용자 기숙사법에 따라 위생이나 보안 수준을 제고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주거 조건을 높인 기숙사조차 10% 미만에 불과하다. 영국 식민통치의 수법을 좀 더 노골적으로 부활시킨 셈이다.

싱가포르 체류 이주노동자는 전체 노동인구의 약 38%를 차지한다. 금융이나 정보기술(IT) 분야에 극소수 엘리트도 있지만 대다수는 제조업과 건설업, 가사노동에 있어 저임금 비숙련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육체노동자다. 동아시아 전체가 신자유주의적으로 구조화되는 과정에서 값싼 이주노동자는 자본에 필수적이었다. 2003년 리셴룽 총리는 “까탈스러운 싱가포르인들은 (…) ‘폼나지’ 않는 분야에선 일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정확히 자본의 요구를 반영한다.

이주노동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태도는 대체로 임시·계약직 노동을 선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경제 침체가 왔을 때 단기 체류 노동자들을 쉽게 추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이와 같은 이주노동 정책도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겪으면서 일정한 장벽에 부딪혔다. 결국 코로나 유행 시기 이주노동자 수는 20만명 이상 줄었는데,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주여성으로 이뤄진 가사 노동자들은 홍콩의 악명 높은 현실과 유사하다. 노동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어 정해진 근무시간도 없고, 초과 근무에 대한 보호 조항도 없다. 고용주들은 일주일에 하루 휴가를 주어야 하지만, 이런 의무는 손쉽게 무시된다. 노동자들은 해고는 쉽게 당할지라도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단이 없다. 고용주의 성폭행과 감금 같은 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해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을 값싸게 부린다는 점을 과장하면서 ‘외국인 육아 도우미 정책’을 제안한 바 있다. 이는 당시 고용노동부가 밝혔듯,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호소할 곳조차 없는 노동착취

이주노동자 착취를 향해 입맛을 다시는 이 지독한 솔직함이 오세훈 시장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지난 연말, 제36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는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을 결정했다. 2004년 도입 이래 처음 추진되는 이번 개편방안의 핵심은 10년 이상의 체류를 가능하도록 하고, 고용허가제 허용 업종을 상하차 노동과 가사· 돌봄 노동까지 확대하는 것에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41만명까지 늘어난 상황에서 ‘권리 없는’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자본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업장 이전의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에 있다. 이런 조건에서 이주노동자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당해도 호소할 공간이 없다. 이주노동자들을 노예로 취급하는 상황에서 10년 넘게 일할 수 있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숙련된 노동을 좀 더 저렴하게 착취하고 싶다는 고용주의 갈망을 채우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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