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서툴러" "폐쇄적 문화"…외국인 K창업, 외면받는 이유
[편집자주] 국내 창업생태계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코리안 창업 드림'을 꿈꾸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창업가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국내 창업생태계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실정이다. 한국이 혁신창업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스타트업뿐 아니라 창업생태계도 글로벌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머니투데이가 국내 외국인 창업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개선방안을 모색해봤다.
"한국 벤처캐피탈(VC)과 스타트업 업계는 인적 네트워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언어 장벽까지 있는 외국인 창업가 입장에서 이를 뚫고 투자 유치를 받기란 쉽지 않다."
국내에서 배달 스타트업 '셔틀 딜리버리(Shuttle Delivery)'를 운영 중인 제이슨 바테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바테 대표는 "학력 혹은 지연 등 인적 네트워크 의존도가 높은 폐쇄적인 환경이다 보니 외국인 창업가가 정착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바테 대표는 2014년 셔틀 딜리버리 전신인 '와이낫-테이크아웃(Ynot-Takeout)'을 창업하면서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뛰어들었다. 이후 2016년 셔틀 딜리버리를 공동 창업했다.
10년 넘게 한국 스타트업 업계에 몸담아왔지만 국내 VC로부터 투자 유치는 받지 못했다. 바테 대표는 "그동안 한국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 데 공을 들였다"며 "관계를 쌓고 '계속해서 한국을 중심으로 성장하겠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폐쇄적 문화는 외국인 창업가에게 큰 장벽이다. 국내 외국인 스타트업 커뮤니티 '서울스타트업스'를 운영하는 마르타 알리나 사우스벤처스 이사는 "특히 스케일업이 쉽지 않다. 외국인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를 하려고 하면 투자자들은 '언제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질문한다"며 "한국 사업에 대한 진전성을 보여줘도 신뢰를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2019년 한국에서 패션 플랫폼을 창업한 외국인 A씨는 "최근 사업 확장을 위해 후속투자 유치에 나섰지만 '한국인 직원 채용 수가 적다'는 이유로 외면 받았다"며 "협업 파트너사들이 대부분 한국 기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채용 여부를 문의했다"고 말했다.
오픈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에 오픈이노베이션을 제안해도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설령 오픈이노베이션 협약을 맺었다 하더라도 원활하게 진행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홍콩 출신 창업가가 설립한 전기차 충전 스타트업은 2019년 국내 대기업 CVC(기업형 벤처캐피탈)와 오픈이노베이션을 위한 협약을 맺었지만 3년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VC 업계도 이런 지적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는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폐쇄적인 분위기가 있었다"며 "그러나 K-브랜드 인기로 외국인들의 한국 창업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내 분위기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는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가 2016년 시작한 외국인 창업 프로그램이다. 씨엔티테크는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의 액셀러레이터(AC)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다만 전 대표는 "한국의 기술력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이에 걸맞는 기술력과 서비스를 갖추지 못하면 외국인 스타트업도 살아남을 수 없다. 자체적인 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 창업을 시도하는 외국인 (예비)창업가들도 늘고 있다. 국적도 인종도 다르지만 이들은 '서울스타트업스'라는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일원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서울스타트업스는 "우리의 미션은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까지 모든 창업가들에게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글로벌하고 포괄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끼리라도 모이자"…설립 7년차 맞은 서울스타트업스
서울스타트업스를 만든 것은 폴란드 출신의 마르타 알리나 사우스벤처스 이사다. 주한폴란드대사관 출신인 아버지를 통해 어렸을 적 한국에 방문했던 알리나 이사는 대학시절부터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 액셀러레이터 씨엔티테크, 스타트업 이사직 등을 거쳤다. 현재는 사우스벤처스 이사, 서울스타트업스 대표, 독일계 액셀러레이터 GEA의 한국 총괄을 맡고 있다. 한국에 머문 기간은 15년여에 달한다.
그가 서울스타트업스를 조직한 것은 2017년이다. 시작은 강남의 한 작은 술집에서였다. 당시 씨엔티테크에 재직 중이던 알리나 이사는 외국인 창업가 정착 프로그램인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에 지원한 창업가들을 만나 한국 생활의 고충을 들었다. 대부분 언어나 문화 등에 대한 문제였다. 알리나 이사가 모든 걸 도울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하나만큼은 해결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타지 창업가로 겪는 '외로움'이었다.
알리나 이사는 그 길로 메신저 슬랙에 채널을 개설하고 외국인 창업가 10여명을 초대했다. 한국인 네트워크에 들어갈 수 없다면 외국인끼리라도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시간이 흐르며 외국인 창업가들과 한국 스타트업에 종사 중인 외국인 직원들의 합류가 이어졌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한 스타트업 생태계 관계자라면 내국인 가입도 막지 않았다. 10여명에서 시작한 서울스타트업스는 지난해 회원수가 3765명까지 늘어났다.
◇"대기업 협업 기대, 유학와서 창업…외국인의 한국창업, 이유는 다양"
이들은 왜 한국에 왔을까. 알리나 이사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인 스타트업 (예비)창업가들은 크게 두 가지 나뉜다"고 설명했다. 첫번째는 해외에서 창업아이템을 떠올리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경우다. 알리나 이사는 "한국 시장이 미국, 중국처럼 크지는 않지만 ICT인프라가 우수하고 얼리어댑터가 많다는 장점이 있다"며 "삼성, LG 등 대기업들도 많아 오픈 이노베이션을 기대하고 한국에 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 등을 통해 한국행을 택하는 경우는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두번째는 유학, 결혼, 주재원 등으로 한국에 정착해 생활하다 창업을 선택하는 경우다. 알리나 이사는 "사실 이 유형이 대부분"이라며 "한국 생활 중 사업아이템을 찾고 창업에 도전하는 유형"이라고 말했다. 서강대 학생창업기업 VHP나 삼성전자 사내벤처 태그하이브 등이 대표적이다. 각각 브라질, 인도 출신 대표들이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서울스타트업스에는 이처럼 서로 다른 배경의 외국인 창업가들이 모여서 네트워킹하고 성장을 도모한다. IR행사나 정부지원사업 설명회 등도 진행한다. 올해 첫 정책설명회는 '오아시스(창업이민종합지원시스템)' 등 비자 관련 설명회로 예정돼 있다. 알리나 이사는 "최근에는 서울산업진흥원(SBA), 아산나눔재단, 창업진흥원 등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후원해주고 있다"며 감사를 표했다.
◇"외국인 스타트업, 세금주머니 아냐…올해 인바운드 창업 지원 기대"
알리나 이사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 내부가 글로벌화돼야 한국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무대에 더 쉽게 진출하고 시장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서울스타트업스의 목표도 단순 '외국인 창업가의 정착'이 아닌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글로벌하게 만드는 것'이다. 알리나 이사는 "정부는 물론 창업가나 대기업 등에서도 한국 창업 외국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덧붙였다.
중기부는 올해 스타트업 글로벌화 정책의 일환으로 인바운드 창업 활성화를 추가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에는 알리나 이사 등 관계자들과 간담회도 진행했다. 알리나 이사는 "한국의 밀레니얼(MZ) 세대는 이미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고 있지만 정부·기업의 고위관계자들은 아직도 폐쇄적이어서 걱정"이라며 "다행히 최근 분위기가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어서 반갑다"고 말했다.
서울스타트업스와 알리나 이사도 이같은 분위기에 발맞춰 외국인 창업가 지원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특히 올해는 '서울스타트업스'에 이어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한 '사우스사이드 스타트업스'를 조직할 계획이다. 알리나 이사는 "부산·울산·경남에도 외국인 스타트업들이 늘고 있다"며 "남부 지역에서 커뮤니티를 시작해 외국인 네트워크의 지역범위를 넓히고 K스타트업 생태계에 긍정적 영향을 확대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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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기자 thkim124@mt.co.kr, 고석용 기자 gohsy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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