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100분 성함 다 외웠죠"…복지관의 야구선수 손자[김민경의 비하인DOO]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어르신, 잘 지내셨어요?"
두산 베어스 투수 김명신(30)은 지난 2018년부터 2020년 6월까지 강동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했다. '노인 대학' 프로그램 담당 부서에 배정돼 100명에 이르는 어르신들을 살뜰히 챙겼고, 우등생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는 체육을 가르쳤다. 김명신은 1년 6개월 동안 복무하면서 100명의 어르신에게는 귀여운 손자로, 아이들에게는 멋진 야구선수 선생님으로 시간을 보냈다.
야구선수로만 살던 김명신에게 복지관 근무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6일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김명신은 "어릴 때부터 운동만 했으니까. 사실 처음 출근할 때는 회사에 입사하는 느낌이었다. 운동복이 아닌 깔끔한 옷을 입고 출근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게 색달랐다. 야구선수는 보통 아르바이트를 할 기회도 잘 없다. 정말 운동 말고 다른 일은 안 해봤다. 그런 면에서 내 삶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복지관에도 김명신은 낯선 존재였다. 복지관 직원들은 새로운 사회복무요원으로 운동선수가 배정됐다고 듣고는 긴장했다고 한다. 운동선수는 우락부락하고 무서울 것이란 이미지가 있었다고.
출근한 김명신을 보자마자 긴장감은 순식간에 풀렸다. 우락부락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평소에도 싱글싱글 잘 웃는 김명신은 빠르게 복지관 직원들과 친해지며 팀에 녹아들었다. 복지관 관장은 하루도 지각하지 않고 오전 7시에 가장 먼저 출근해 잠긴 문을 다 열고, 불을 켜는 김명신을 기특해했다.
김명신은 "처음에 정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 30분에 퇴근하고 운동을 하려고 하니까 어두워서 공이 잘 안 보이더라. 복지관에 말씀을 드렸더니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관장님께서 내가 일찍 나오는 것을 좋아하셨다. 배려해주신 덕분에 감사하게 다녔다"고 마음을 표현했다.
일도 성실하게 잘했다. 노인 대학에 나오는 어르신 100명의 이름을 다 기억했을 정도다. 어르신들은 그런 김명신을 특히 예뻐했다.
김명신은 "출근해서 어르신들께 안부 전화를 돌린다. 어르신들 소풍 가시면 명단을 확인해서 다시 전화 드리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노인 대학 수업 준비를 내가 했다. 출석부 갖다 놓고, 의자 깔아놓고, 차도 타서 드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글 교실, 영어 교실, 장구, 수지침, 탁구 교실 등 프로그램이 다양했는데, 그중에서도 금요일 노래 교실이 가장 인기 있었다. 강당에 100분 정도가 매번 오신다. 늘 인원 파악을 해야 해서 '어르신 성함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어봤더니 나중에는 다 외워지더라. 성함을 안 여쭤보고 바로바로 적으면 어르신들께서 좋아하신다. 어르신들은 그러면 내게 귤이나 요구르트, 비타민 음료, 커피 등을 주셨다. 소풍 가는 날이면 어르신들 앞에서 노래도 불렀다"고 덧붙이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에게도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다. 김명신은 "아이들과 수업은 1주일에 한 번이었는데, 아이들은 매일 복지관에 오니까 앉아서 같이 얘기하거나 과자를 사주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이름도 다 외웠다. 정민이라고 통통한 친구가 정말 귀여웠다. 배도 만지고 야구도 티볼을 가르쳐줬다. 사실 말이 체육 수업이지 같이 피구하고 재미있게 뛰어노는 시간이었다. 정말 재미있게 보냈던 것 같다"고 되돌아봤다.
김명신은 행복한 1년 6개월을 선물한 복지관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특히 아이들이 야구선수인 선생님을 야구장에서 보고 싶어 했는데, 김명신은 지난해 8월 12일 잠실 NC 다이노스전에 우등생지역아동센터 아이들 25명을 초대했다. 아이들의 보호자와 인솔 교사들까지 포함하면 40명 정도 됐다. 김명신은 구단의 도움을 받아 이들의 경기 티켓과 간식, 야구공과 야구 모자 등을 준비해 대접했다. 즉석에서 아이들의 물건에 다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김명신은 이날 마운드에 서진 못했지만, 두산은 뜨거운 응원을 보낸 아이들에게 7-1 승리를 선물했다.
김명신은 이 일로 지난해 8월 병무청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그는 "감사장 같은 것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할 때 기억이 좋아서 하고 싶은 일이었을 뿐이다. 아이들 덕분에 감사장을 받았으니 빵이라도 사서 복지관에 한번 인사를 하러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답하며 멋쩍게 웃었다.
김명신은 구단과 상의해서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야구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해볼 예정이다. 그러려면 올해도 불펜 핵심 요원으로 버텨야 한다. 김명신은 지난해 68경기에 등판해 79⅔이닝을 책임질 정도로 전천후로 활약했다. 생애 처음으로 10홀드를 달성하는 등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냈다.
새해 소망은 늘 그렇듯 성실한 선수로 남는 것이다. 김명신은 "나는 임팩트 있는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조금 빛나려면 많이 던지고,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내년에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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