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복구·변화'로 살펴본 화정아이파크 붕괴 후 1년
"구호뿐인 안전" 참사 후에도 건설 현장 '변화' 난망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천정인 차지욱 기자 = 오는 1월 11일이면 6명의 희생자를 낸 HDC 현대산업개발의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만 1년이 된다.
관련 수사가 종료돼 관련자들은 재판을 받는 등 처벌을 앞두고 있지만, 참사라고 할 만한 사고를 겪은 유가족의 상처와 아픔은 여전하다.
사고 발생 1년을 앞두고 '상처·복구·변화' 등 세 단어를 열쇳말 삼아 유가족의 아픔, 남은 철거 절차, 건설 현장 변화상 등을 다시 살펴봤다.
아물지 않은 그 날의 '상처'
"그날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참사로 형을 잃은 오모(52)씨는 1년 전 그날을 잊지 못했다.
형과 마찬가지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그는 작업 전 안전교육을 받을 때면 참사 당시의 상황이 떠오른다고 했다.
문득문득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운 마음이 생겨, 참사 후 1년이 다 됐지만 일터에 나가지 못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오씨는 "평소에도 생각이 많이 나는데, 1월이 되니까 더 떠오르는 것 같다"고 아픈 마음을 털어놨다.
애써 일상으로 돌아가 보려 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술에 기대보기도 하고, 마음이 통하는 지인들을 만나기도 해보지만, 그때뿐이었다.
주변의 과도한 관심과 시선은 오히려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오씨는 "주위에서 궁금한 게 많은지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며 "걱정해주시는 마음은 알지만 불편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바라는 게 있다면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붕괴 건물이라도 빨리 철거되는 것이다.
그는 "사고 현장이 아직도 저렇게 남아있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며 "적어도 올해는 사고가 난 건물이 철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희생자가족협의회 안정호 대표도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아무런 사고 없이 철거 및 재건 공사가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오는 11일 사고 현장 앞에서 당시 영상과 기록을 되돌아보며 현장 근로자들과 함께 안전을 다짐하는 추모식을 연다.
3월부터 본격 철거, 부실 흔적 지운다
참사 현장은 1년 전과 다름없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부서지고 무너진 참혹한 폐허는 가림막으로 가렸으나 부실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는 작업은 오는 3월에야 시작된다.
지난해 말 현대산업개발에서 서구에 제출한 해체계획서에 따르면 본 철거는 이르면 3월부터 착수한다.
해체계획서가 건축위원회 해체심의를 통과하고 국토안전관리원의 안전관리계획서 승인 등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면 철거가 본격화된다.
무척 더디게 진행된 철거 사전 작업인 붕괴건물 안정화 작업은 오는 16일에야 완료된다.
외벽 안정화 작업은 지난달 30일 마무리됐으나, 잔재물을 치우는 과정에서 25층 바닥에 균열이 다수 확인돼 바닥 철거에 시간이 더 소요되고 있다.
본 철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가 시설물 설치 작업이 이뤄진다.
전면철거는 압쇄와 절단을 혼용한 방법을 적용할 예정이다.
바닥과 벽체는 압쇄기를 설치해 철거하는 일반적인 철거방식으로, 기둥과 내력벽은 다이아몬드 재질로 된 쇠톱(다이아몬드 와이어 소우) 장비로 잘라가며 철거한다.
광주 서구청 관계자는 "고층 건물을 철거하는 건 우리나라에 사례가 없다"며 "행정절차를 이중으로 해 안전 확보를 철저하게 해 본 철거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철거 후 재시공은 2027년 12월 입주를 목표로 이뤄지는데, 입주예정자들의 고통은 이어질 전망이다.
보상 협의를 마치지 못하고, 손님이 끊긴 거리에 남아있는 상인들도 사고 1년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구호뿐인 안전…건설현장에 오지 않은 '변화'
"안전에 공들일 시간과 비용을 주지 않습니다. 원청이 변해야 하는데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광주 한 아파트단지 신축 공사장에서 골조 공정을 맡은 전문업체 관계자는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 점검이 원청 측 책임 회피를 위한 '요식행위'일 뿐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까지 맞물리면서 안전사고 예방에 들이는 노력은 커졌지만, 공기 연장이나 공사비 증액 등 원청의 분담이 받쳐주지 않아 현장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원자잿값은 폭등하고 주어진 시간도 그대로인데 조금이나마 이익을 건지려면 화정아이파크 때처럼 무리할 수밖에 없다"며 "곳곳에 안전 구호가 나붙고 회의도 수시로 열려 외견상 개선된 듯 보이지만 똑같은 사고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현행법이 원청은 전문인력을 채용하고 안전 점검을 열심히 했다는 기록만 남기면 책임을 피하도록 만들어졌다"며 "눈앞에서 참사를 목격하고 그렇게 큰 기업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지켜본 뒤로 우리 같은 하청업체만 전전긍긍 피를 말린다"고 토로했다.
참사의 대가를 목숨으로 치러야 했던 건설노동자들도 현장은 참사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에 힘을 보탰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추락 방지용 고리나 안전 발판 등 사고 예방 조치가 더 촘촘해지기는 했다"며 "그러나 안전 관리를 강화하면 작업공정이나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전의 속도와 일정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속도전에 따른 위험이 현장에 상존한다"고 진단했다.
최저가 입찰제 폐지 등 제도 보완으로 이어지지 않은 안전 강화는 되레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하청받은 전문건설사 고충도 심할 것이다. 원청, 국토교통부, 지방자치단체의 형식적인 안전 관리만 증가했으니 점검에 대비하는 시간과 노력이 공기 촉박만 가중할 것"이라며 건설 현장에 대한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요구했다.
hs@yna.co.kr, iny@yna.co.kr, uk@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르포] 세븐틴 보려고 美 전역에서 몰려든 2만명, LA 스타디움서 열광 | 연합뉴스
- 아이유 측 "표절의혹 제기자 중 중학교 동문도…180여명 고소" | 연합뉴스
- 英병원서 뒤바뀐 아기…55년만에 알게 된 두 가족 | 연합뉴스
- 트럼프 장남 "젤렌스키, 용돈 끊기기 38일 전" 조롱 밈 공유 | 연합뉴스
- 일면식도 없는 40대 가장 살해 후 10만원 훔쳐…범행 사전 계획 | 연합뉴스
- [삶] "누굴 유혹하려 짧은치마냐? 넌 처맞아야"…남친문자 하루 400통 | 연합뉴스
- '환승연애2' 출연자 김태이, 음주운전 혐의로 검찰 송치 | 연합뉴스
- 투르크 국견 알라바이, 대통령 관저 떠나 서울대공원으로 | 연합뉴스
- 대만 활동 치어리더 이다혜 "미행당했다" 신고…자택 순찰 강화 | 연합뉴스
- 첫임기때 315차례 라운딩…골프광 트럼프 귀환에 골프외교 주목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