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전약후] 미국은 넓히고 한국은 막았다…'낙태약' 굴곡의 역사

이영성 기자 2023. 1.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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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프진' 주성분 '미페프리스톤' 1980년대 프랑스서 개발…임신유지 '프로게스테론' 호르몬 차단
미국·유럽 등 다수 국가서 허가…국내선 '낙태죄 입법 공백'과 함께 민감한 사안 탓 도입 '지연'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서울=뉴스1) 이영성 기자 = 이른바 '낙태약'으로 불리는 임신중단약이 지난 달 국내서 허가가 불발된 반면, 불과 보름 뒤 미국에서는 활용범위가 확대돼 엇갈린 행보를 보여 주목된다.

미국에서는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임신중단 약 '미페프렉스'(성분 미페프리스톤)를 소매 약국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그 동안 병원과 일부 특정 약국에서만 받을 수 있었던 구매처가 확대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지난달 15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현대약품이 임신중절 의약품 '미프지미소정'(성분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 허가신청을 자진취하했다"고 밝혔다. 현대약품이 식약처가 요청한 일부 보완자료를 기한 내 제출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식약처는 구체적으로 어떤 보완자료를 요청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은 채 향후 재신청할 경우 해당 보완사항을 중심으로 심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미페프리스톤 '임신 유지 호르몬 차단'…미소프로스톨 '자궁 수축'

한국과 미국에서 이슈인 낙태약의 공통 성분은 '미페프리스톤'이다. 미페프리스톤은 프랑스 기업 루셀 위클라프가 20여년간 연구해 1980년 개발한 먹는 낙태약이다. 미페프리스톤은 개발사 이름을 따 'RU-486'으로 부르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1년 10월 루셀 위클라프의 컨설턴트인 에티엔-에밀 볼리외 박사는 월터 헤르만 스위스 제네바대 캔토날병원 산부인과 의사의 여성 11명 대상 낙태 테스트를 주선했다. 1982년 4월 그 성공적인 결과가 발표됐다.

미페프리스톤은 1988년 프랑스에서 승인됐고, 루셀 위클라프는 1990년 2월 상품명 '미프진'(성분 미페프리스톤)으로 48달러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미프진은 1991년 7월 영국, 1992년 9월 스웨덴, 1999년 핀란드, 스페인, 이스라엘, 그리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에서 잇따라 승인됐다. 이후 단코연구소에 미페프리스톤을 라이선스(기술이전)해 2000년 9월 '미페프렉스'라는 상품명으로 FDA 승인을 받았다. 미국 이외 지역에선 미프진 상품명으로 판매되고 있다.

BBC 보도에 따르면 유럽 여러 국가들에서는 낙태약이 가장 흔한 임신중단 수단으로, 스웨덴과 스코틀랜드에서는 약물을 통한 임신중단이 각각 전체 임신중단의 90%, 70%를 차지한다.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유지에 필요한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을 차단하는 작용을 한다. 임신 초기 10주 이하에 복용해야 한다.

미페프리스톤은 다른 낙태약 성분인 미소프로스톨과 함께 사용할 때 임신중단에 가장 효과적으로 알라져 있다. 미소프로스톨은 1973년 개발된 프로스타글란딘 유사체다.

미페프리스톤을 통해 배아가 자궁벽에서 분리되면, 미소프로스톨은 자궁경부를 확장해 자궁 근육을 수축시켜 배아를 자궁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현대약품이 국내 도입하려는 약이 바로 미페프리스톤(200㎎ 1정)과 미소프로스톨(200㎍ 4정)로 구성된 '미프지미소정'이다. 즉, 미프진에 미소프로스톨 성분이 추가된 셈이다. 현대약품은 2021년 3월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과 미프지미소의 국내 판권을 독점 계약했다.

미페프리스톤 1정을 먹은 후 하루 이틀 뒤 미소프로스톨 4정을 먹으면 유산이 유도된다. 미프지미소는 현재 캐나다와 호주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선 약물 임신중단 '산 넘어 산'…미국, 구매처 확대로 분위기 변화

우리나라는 2021년 1월 들어 낙태죄가 폐지됐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기한 내 관련 보완 입법이 이뤄져야 했는데 국회가 이를 미루면서 아예 낙태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입법 공백'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이 없다.

국내에선 현재 미프지미소의 구매 혹은 처방이 불법이다. 아직 규제당국의 품목허가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온라인을 통해 불법적으로 약을 구매해 복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의료진으로부터 제대로 진단과 처방을 받아 복용하는 게 아니다 보니 불완전 유산 등으로 인한 여성 건강권 침해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현대약품은 2021년 7월 2일 미프지미소 허가를 신청했다. 식약처는 유효성과 안전성 등에 대한 자료 일부 보완을 요청했고, 현대약품은 이 기한을 2회 연장했으나 기한 내 일부 보완자료 제출이 어렵다고 판단해 지난해 12월 15일 스스로 품목허가 신청을 취하했다. 식약처는 미프지미소 허가 재신청시엔 제출되지 않은 보완자료를 중점적으로 심사하겠다는 계획이다.

미프지미소는 지난 2015년 7월 캐나다에서 허가받았으며, 현대약품은 이와 동일한 제품을 수입하기 위해 캐나다와 동일한 허가사항으로 국내 품목허가를 신청했으나 캐나다 규제당국의 판단과 국내 식약처의 처리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특히 식약처가 요구한 어떤 자료를 제출하기 어려웠는지 공개되지 않으면서 여성계 등에선 식약처가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슈인 낙태약 첫 허가를 부담스럽게 여긴 게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한다. 국내 일부 종교계와 보수층을 중심으로 임신중지약 판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서다.

반대하는 쪽에선 태아 생명권과 함께 낙태약 판매로 여성들이 낙태를 쉽게 선택할 수 있게 되면 낙태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낙태가 어려워진다고 원치 않은 임신이 줄어드는 게 아니며 여성들의 고통만 커진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국내와는 달리 미국에선 최근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미국은 지난해 6월 낙태권을 보장했던 판례,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49년만에 대법원이 폐기하면서 낙태약 논쟁이 커졌지만, FDA가 미페프리스톤 제조·유통사의 판매 규제 완화 신청을 받아들였다. 해당 기업은 젠바이오프로과 단코연구소이다.

이에 미페프리스톤은 앞으로 미국내 일반 약국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단 의사의 처방전은 필요하다. 기존에는 병원에서 처방 구매할 수 있었고, 일부 약국에서 원격 처방이나 우편을 통해 살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21년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라 10주 이내 임신부가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지정된 약국에서 약물 배달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다만 가능한 약국이 적었다는 설명이다. 이번 FDA 규제 완화로 접근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l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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