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양현석은 협박하지 않았다…한서희가 '오빠'라고 했으니까
"네가 아마 연예계나 화류계에 있을 애 같은데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변호사를 선임해 줄 테니 진술 번복해"
같은 업계에 있는 까마득한 후배한테 이렇게 말하면, 협박일까요 아닐까요? 그것도 업계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선배가요.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전 대표는 가수 연습생 한서희씨에게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라며 마약 수사 관련 진술 번복을 요구했고, 실제로 한씨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보복 협박에 수사 방해까지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양 전 대표, 어떻게 자유의 몸이 됐을까요?
한서희 만나 진술 번복 압력…사법 기능 저해 맞지만
이번 공판의 쟁점은 8월 밤 만남에서 양 전 대표가 한씨에게 장래를 담보로 협박을 했는지 여부, 그의 협박이 한씨의 진술 번복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공포심을 유발했는지 등입니다. 양 전 대표는 "(비아이와 함께 마약을 했다는) 진술을 번복해라, 너 착한 애가 되어야지. 니가 진술을 번복했는지 안했는지 나는 조서를 다 볼 수 있다"라며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니가 진술을 해도 비아이는 일본에서 약을 빼오면 어차피 음성 나온다"고 했는데, 이게 법적 처벌을 받을 만한 수준의 보복 협박이냐는 거죠.
한씨는 양 전 대표의 협박에 같은달 30일 경찰에 '비아이에게 마약을 교부한 사실이 없다, 대마 흡연한 사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주장합니다. 김 전 실장은 거짓된 진술 번복을 방조했다고 하고요. 반면 양 전 대표는 비아이가 대마를 흡연하거나 다른 마약류를 매매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씨에게 사실대로 진술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입장입니다.
참고로 비아이는 당초 혐의를 부인하다가 2016년 3월과 4월 세차례에 걸쳐 대마 흡연을 했고 비슷한 시기 LSD도 구매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비아이는 2021년 10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렇게 명확한 범죄 사실에 대한 진술을 번복하라고 했으니, 연예계 제왕인 양 전 대표도 재판장인 조병구 부장판사의 일갈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조 부장판사는 "양현석이 피해자를 설득하거나 압박하는 언행은 한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행위는 형사적 사법 행위의 기능을 침해하는 것으로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오빠, 오빠' 한서희, 엄청난 공포심 느끼지 않았다?
버닝썬 게이트부터 비아이 마약 수사 무마 의혹까지, 양 전 사장에 대한 대중적 비난은 이미 임계치를 넘은 상황입니다. YG엔터테인먼트가 마약 관련 범죄에 있어 우리 법 제도 위에 군림하다시피 했던 것 역시 어느 정도는 사실로 드러났지만, 그럼에도 한씨를 협박해 진술 번복까지 하게 했다는 것은 법리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양 전 대표의 비윤리적인 면모와는 별개로 그를 처벌하려면 '해악의 고지'가 인정되어야 하거든요.
2022. 12. 22 양현석, 비아이 마약 의혹 무마 의혹 선고심 中 |
재판부: 보복 협박은 해악을 고지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중략)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는 '너가 아마 연예계나 화류계에 있을 것 같은데'라고 하는 것인데, 이 발언이 있었다면 그 의미만으로 피고인이 국내 대형 연예기획사의 지위에서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어서… 다른 발언이나 행동에 비춰서도 피해자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면 그 또한 협박으로 평가될 수 있다. (중략) 협박이라는 것은 공포심을 일으켜 사람의 의사결정을 제한하거나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한 행위가 있어야 한다. 행위자의 지위분만 아니라 상대방의 성행이나 사후관계 등을 모두 비춰 요구사항에 불응하면 해악에 이를 것이라는 해악을 인식하고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지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판례다. 특히 행위자가 어떤 행위를 요구했는데 그에 대한 어떤 이익을 요구하면서 그 대가로 응한 것이라면, 그 요구 행위는 의사 결정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해악의 고지로 단정하기 어렵다. |
자, 그럼 재판부는 한씨의 어떤 행동을 보고 그가 의사결정을 바꿀 정도로 공포심을 느낀 것은 아니라고 봤을까요? 재판부는 크게 세가지 이유를 꼽았습니다.
먼저 한씨는 경찰에 마약 관련 진술을 한 뒤 김 전 실장을 '오빠'라고 부르며 웃는 취지의 문자를 보내거나 먼저 연락을 하는 등 친근한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오빠, 오빠'가 무의식적인 습관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당할 정도로 엄청난 공포심을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 결론입니다. 여기에 더해 한씨가 양 전 대표로부터 진술 번복에 대한 사례금을 받으려는 의사를 드러냈던 것, 또 YG 측으로부터 변호사 수임료 명목으로 현금 200만원을 받은 것이 결정타가 됐습니다.
2022. 12. 22 양현석, 비아이 마약 의혹 무마 의혹 선고심 中 |
재판장: 한씨 스스로도 YG 측의 도움을 받아 마약 매매와 관련된 책임을 덜고자 하는 유인이 있었고, 진술 번복 이후 5억원을 요구하는 등 지속해서 사례를 요구했다. 의사자유가 침해될 정도의 공포심을 느끼는 상황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
재판부는 양 전 대표의 협박과 관련 한씨의 진술이 점점 더 자극적이고 구체화되는 것 역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습니다. 사건 그 이듬해인 2017년에는 '연예계에서 못 뜨게 하겠다', 2019년 9월에는 '연예계에서 죽이겠다', 10월엔 '화류계에서도 죽이겠다'고까지 했다는 것이 한씨의 진술입니다.
2022. 12. 22 양현석, 비아이 마약 의혹 무마 의혹 선고심 中 |
재판장: 야간에 YG 사옥에 가서 직접 들었다는 직접적 해악 고지라는 충격이나 공포심이 피해자(한서희)에게 있었던 것으로 드러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구체적 진술은 1년이 지난 인터뷰에서는 '연예계에서 못뜨게 하겠다' 정도였다가 구체적 내용이 조금씩 다르게 표현된다. (중략) 피해자는 경찰에서 9번 정도, 검찰에서 5번 정도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를 받을 수록 진술 내용이 바뀌고 말투나 행동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덧붙여지는 등 오히려 구체화됐다. (중략) 이러한 태도 변화에는 디스패치에서 양현석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쓰려고 할 때 피해자가 이에 호응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이고 자극적인 피해 진술을 이끌어내기 위해 검찰에서 암시를 줘서 왜곡시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사람의 기억은 경험칙상 흐려지는 것이 마땅한데 피해자의 기억은 점점 더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진술이 없다. |
실제로 디스패치 측은 2017년 8월 한씨를 인터뷰하면서 "어떻게 이때까지 검찰에 손을 대고 애들을 회유해서 넘어갔는지 스토리가 쭉 가는 거지"라고 발언합니다. 디스패치 측의 이같은 발언에 한씨가 호응하는 내용도 공판 중에 드러나기도 했죠.
양 전 대표는 조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는 내내 두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두 손은 공손히 모은 채 말이죠. 무죄가 선고되자 재판부를 향해 '폴더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연예매체들은 양 전 대표의 복귀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법리 오해를 이유로 항소한다지만, 법조계에서는 명료한 판결이라는 반응입니다. 다만 '보복 협박'에 대한 혐의가 무죄라고 해서, 그가 윤리적인 비판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아닙니다. 조 부장판사의 말마따나 비난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법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딱 여기까지, '꾸중'이었습니다. 양 전 대표는 새해가 되자마자 YG엔터테인먼트의 총괄 프로듀서로 복귀했습니다. 사건의 발단이었던 비아이는 집행유예 상태로 다른 소속사로 옮겨 활동을 이어가고 있구요. 판결 일주일 만에 신인 걸그룹을 소개하며 화려하게 복귀한 양현석 총괄 프로듀서의 모습을 보니 "도덕은 우리가 법을 만들 때 도움이 되지만, 법을 적용할 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It is morals that help us make the laws, but morals do not help us apply them)"는 법언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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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희원 기자 wontim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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