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학폭·항명·윗선 개입…흥행 이면 바람 잘 날 없는 女 배구

권혁준 기자 2023. 1.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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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 활약 바탕 겨울 인기스포츠 등극…'슈퍼스타' 김연경 효과도
3시즌 째 경기 외 이슈로 홍역…어설픈 대처로 일 키우기 반복돼
여자 배구 슈퍼스타 김연경(35·흥국생명). /뉴스1 DB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여자배구는 확고한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의 활약과 김연경(35·흥국생명)이라는 '슈퍼스타'의 존재까지 더해지면서 관심도나 시청률, 관중 수 등 모든 면에서 겨울 스포츠 '일인자'라는 타이틀에 부족함이 없다.

2022-23시즌도 반환점을 돈 현재까지도 순항 중이다. 한국배구연맹(KOVO)에 따르면 1~3라운드까지 여자부 총 관중 수는 14만9215명, 경기당 평균 2368명이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이던 2019-20시즌(10만3574명) 수준을 뛰어넘는 흥행이다.

같은 기간 남자부가 총 8만8869명, 경기당 1411명을 동원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확실히 배구 인기의 중심은 여자부에 쏠려있다. '배구 여제' 김연경이 복귀한 것은 기름을 부은 격이다.

하지만 이면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여자배구는 최근 3년 동안 매년 굵직한 이슈에 휘말렸다. 스타 플레이어의 학교 폭력, 선수와 코치의 항명 파동, 프런트의 선수 기용 개입 등 하나같이 부정적인 내용들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시작은 2020-21시즌 이재영-이다영(당시 흥국생명) 쌍둥이 자매의 학교 폭력 논란이었다. 이들이 학창시절 학교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였다는 폭로가 나왔고, 국가대표 주축이자 인기 스타로 관심을 모으던 쌍둥이 자매는 무기한 출장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2021-22시즌엔 IBK기업은행의 주전 세터 조송화와 김사니 코치가 시즌 중 당시 사령탑이던 서남원 감독에게 항명하며 팀을 이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사퇴한 서 감독 대신 김 코치가 감독대행직을 맡자 여자부 타 팀 감독들이 경기 전 악수를 거부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학교 폭력 논란을 일으킨 이재영-이다영 자매. /뉴스1 DB ⓒ News1 황기선 기자

그리고 올 시즌엔 권순찬 흥국생명 감독의 경질 사건이 터졌다. 김연경 영입과 함께 2위로 순항하던 팀의 감독이 한순간에 사퇴한 것으로, 이후 구단 측이 권 감독의 선수 선발과 로테이션 등 경기 운영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나왔다.

선수 개인의 일탈, 선수-감독과의 불화, 감독과 구단의 마찰까지 모두 별개의 사건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이 비슷하다. 바로 사건 이후의 미흡하고도 어설픈 대응이다. 문제를 수습하기는커녕 일을 더 키우는 대처로 많은 이들에게서 뭇매를 맞아야했다.

쌍둥이 자매의 학교 폭력 당시 여론의 강한 비판에 못 이겨 무기한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던 흥국생명은 이후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여러차례 이들의 복귀를 시도했다. 새 시즌을 앞두고는 선수 등록을 시도하면서 또 한 번 도마 위에 올랐고 결국 두 자매를 해외 리그로 떠나보내야했다.

IBK기업은행 역시 선수, 코치가 감독에게 항명한 상황에서 감독을 해임하고 항명한 코치를 감독대행에 앉히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를 보였다. 타 팀 감독들의 악수 거부 선언까지 일을 키운 것은 구단의 어리석은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항명 논란을 일으킨 김사니 전 IBK기업은행 코치. /뉴스1 DB ⓒ News1 박정호 기자

권순찬 감독 해임 논란에 직면한 올 시즌의 흥국생명 역시 변하지 않았다. 애초 경질 자체가 상식밖이었지만 이후 새로 선임된 신용준 단장의 해명은 더더욱 논란을 키웠다.

신 단장은 "선수 기용 개입이 없었다"면서도 "로테이션 문제로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하거나, "유튜브에서 로테이션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하위권 때는 감독에게 로테이션을 맡겼다"는 등의 어불성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신 단장의 해명 이후 김연경이 "선수단 개입이 있었다"고 확인한 것은 덤이다.

어떤 사람도, 어떤 조직도 완벽할 수는 없다. 프로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배구 외의 다른 종목들을 살펴봐도 크고 작은 논란들이 숱하게 나온다.

하지만 유독 배구판의 논란이 더 크고 길게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문제가 발생한 이후의 대처 때문일 터다.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후속 조치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당장 벌어진 일을 억지로 덮어버리고 싶은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5일 인천 부평구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2022-2023 도드람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 GS칼텍스 경기장에 흥국생명 팬들이 선수들을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피켓이 붙어 있다. 2023.1.5/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한 배구계 관계자는 이를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종목에 비해 배구의 프로 역사가 짧다. 모기업이 다른 스포츠 말고 배구 한 종목만 담당하는 구단도 많다"면서 "이미지 추락을 누구보다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이미지를 망치는 일을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미지 추락의 여파가 해당 구단을 넘어 리그 전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팬들은 경기 외적인 논란이 지속될 수록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팬들이 보고 싶은 건 재미있는 경기와 치열한 순위 싸움이지 경기장 밖의 설전이 아니다.

배구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많아진 인기에 구단들이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면서 "팬들은 냉정하다. 이런 '헛발질'이 계속된다면 자연히 떠날 수밖에 없다. 당장 선수 황혼기인 김연경이 은퇴하면 여자배구 인기가 지속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제를 일으키고 일을 키운 그들이 새겨들어야 할 한 마디다.

starbury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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