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하는 의사들] “운동하세요”…척추·관절 환자에 내준 숙제, 스마트폰으로 검사
근골격계 환자 대상 디지털치료제 개발
“재활 운동치료 미충족 수요 디지털 기술로 개선”
“근골격계 질환 디지털 치료기기 선두 주자 기대”
“전세계 척추⋅관절 환자 17억 명...의사 처방 운동앱”
“운동하세요.”
만성질환이나 근골격계 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의사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운동 숙제를 받은 당장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시작부터 고민이다. 운동을 시작하면, 내가 제대로 운동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운동 후 효과도 궁금하다.
숙제를 내준 의사도 난감하다. 운동 숙제를 검사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책이나 영상 교육 자료를 내주지만, 환자가 제대로 따라 하고 있는 지도 의문이다. 운동 일지 쓰는 환자도 있지만, 확인에 시간이 걸린다.
서울대 의대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를 딴 윤찬 대표(39)는 환자와 의사의 고충을 해결하려고 근골격계 질환 디지털 치료 솔루션을 제공하는 ‘에버엑스’를 창업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현재 서울부민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다.
윤 대표는 “10년 전 대학병원에서 진료 보조를 할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했다”라며 “의사가 외래 진료에서 환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운동하라’는 건데, 그 이후에 서로 확인하는 과정이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근골격계 질환자는 전 세계 17억 명으로 추산된다. 국내 환자 규모는 계속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국내 근골격계 질환 진료 환자 수는 1761만명으로 집계됐다. 국민 3명 중 1명이 척추·관절 등에 문제가 생겨 진료를 받는다는 뜻이다.
운동 치료는 정형외과에서 치료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수술을 하지 않고, 운동 치료만으로 질환을 개선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하지만 재활 운동 치료를 받는다는 환자는 손에 꼽는다. 환자들은 운동 치료를 받으려고 병원에 가는 게 부담이고, 병원도 운동 치료 수가가 한 번에 1만원 수준이라 사업성이 떨어지니 적극적으로 영업하기 어렵다. 에버엑스는 이같은 모순을 디지털 기술로 해결하겠다는 비전으로 지난 2019년 출범했다.
에버엑스가 개발한 운동치료 플랫폼 ‘모라(MORA·Mobile Orthopedic Rehabilitation Assistant)’는 약 3000개의 치료 동작과 150개 가량의 치료 커리큘럼을 구축했다. 현재 슬개대퇴통증증후군, 만성요통, 전방십자인대 손상 등 30개 정도를 적응증으로 두고 있는데, 오는 2024년까지 전체 근골격계 질환 절반을 커버하겠다는 계획이다.
모라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운동 플랫폼이라기보다 의료진 처방 플랫폼으로 봐야 한다. 의사는 플랫폼을 통해 환자에게 운동법을 처방하고, 이후 환자가 처방대로 운동을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내 병원 10곳과 협업 중인데, 운동 치료를 처방받은 환자의 수행률은 70%에 달한다. 수행률은 처방한 운동 시간 대비 실제 운동 시간을 뜻한다.
윤 대표는 “회사 내부에서 확인한 결과, 60대 초·중반도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올해 목표는 미국 등 해외 진출이다. 지난해 2월 미국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 파트너와 협업 병원을 선정하고 있다.
윤 대표는 “아무리 좋은 의료기기도 좋은지 안 좋은지 써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라며 “디지털 의료기기(DTx)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한 첫 단계는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환경 조성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에버엑스 본사에서 윤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一정형외과 전문의면서 에버엑스 창업한 계기는 무엇인가.
“정형외과 전문의로 진료를 본지 10년 정도 됐다. 진료를 하면서 운동치료, 재활치료이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환자들이 잘 따르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수술이 잘 돼도 재활, 운동치료가 부족해 결과가 안 좋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환자가 집에서 재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전달해도 실제로 운동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환자가 재활 운동 일지를 기록해도 확인해서 피드백을 주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방법을 찾던 중에 디지털 의료기기를 쓰면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一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나.
“근골격계 질환에서 운동 치료의 최우선 목적은 통증을 줄이는 것이다. 환자가 하루 30분씩 꾸준히 재활운동을 하면 통증은 줄어든다. 문제는 통원 시간이다. 30분 운동치료 때문에 1시간 거리 병원을 와야 한다. 경제적으로도 부담이다. 운동 치료는 수가가 1회당 1만원 정도로 저렴하다. 병원이 적극적으로 권장하기도 어려운 구조란 뜻이다. 운동 치료를 하면 환자 상태가 충분히 좋아질 수 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하지 못하는 이른바 ‘미충족 수요’가 발생한다고 봤다.“
一 재활 운동을 하고 싶지만, 못하는 환자가 많다는 건가.
“모라(MORA) 솔루션으로 운동 치료를 했더니 환자 수행률이 70%가 나왔다. 다른 질환 분야의 디지털 의료기기 평균 환자 수행률은 50%에 그치는 것을 감안하면, 통증을 줄이는 근골격계 질환자의 운동 재활 니즈가 크다는 방증이라고 봤다.”
一 환자 수행률이 70%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모라는 환자에게 운동 영상을 제공하고, 환자가 얼마나 운동을 했는지 시간을 측정해 기록하게 돼 있다. 수행률은 처방 시간 대비 환자의 실제 운동 시간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매일 30분씩 일주일간 운동을 처방할 경우 총 210분인데, 수행률이 70%라면 환자가 150분을 운동했다는 뜻이다. 수행률이 높다는 건 의료비 지출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고도 볼 수 있다.””
一어르신들이 쓰기에 어렵지는 않나.
“베타 테스트로 확인한 결과 60대 초·중반까지 사용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그 이상의 연령대는 제삼자의 도움이 어느 정도 필요하기는 하다. 고령의 환자는 스마트폰 화면이 작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 스마트TV와 연동, 친숙한 기기를 이용해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 중이다.”
一기존 운동플랫폼 애플리케이션(앱)과 차별점은 무엇인가.
“홈트레이닝 플랫폼이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모라는 의료진 처방을 받아야 쓸 수 있는 플랫폼으로, 환자 특화 솔루션이다. 운동 동작 중에 질환이 있거나, 수술, 치료를 받는 경우에는 위험한 동작들도 있다. ”
一주 타깃은 병원이라고 봐야 하나.
“그렇다. 물론 환자도 우리 타깃이다. 최근 환자들은 본인 질환에 대해 공부하고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좋은 서비스를 환자가 먼저 알고 의사에게 요구할 수도 있지 않나. 근골격계 질환은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앓는 질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전 국민이 타깃이 될 수 있다.”
一국내외 정형외과 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글로벌 근골격계 질환 치료 트렌드는 어떤가.
“정형외과 질환에서 수술은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 ‘정답’이라고 불릴만한 치료 가이드라인이 구축됐단 뜻이다. 수술해야 할 환자와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환자를 구분하고, 수술하지 않아도 될 환자를 수술 없이 얼마나 잘 끌어 갈 수 있는 지에 따라 치료 결과가 좌우된다. 이를 ‘퀄리티 케어’라고 부른다. “
一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과거 정형외과 치료는 치료 행위를 하면, 값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이제는 치료의 결과에 주목한다. 치료는 질환을 개선하려고 하는 것인데, 치료를 해도 병이 낫지 않았다면 목적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 이런 트렌드를 맞춰가다 보면 재활의 영역이 중요해진다. 정형외과에서는 수술과 재활이 각각 절반씩 치료 결과를 좌우한다. 재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치료의 퀄리티가 좋아진다.”
一 회사에 본격적으로 매출이 나기 시작하는 시점은 언제로 보나.
“디지털 의료기기를 시장에 내놓으려면 임상을 통해 식약처 허가를 받은 후 심평원에서 수가를 인정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라가 식약처 허가를 받으면, 국내 최초 근골격계 질환 디지털 의료기기가 된다. 미국은 디지털 의료기기에 대한 수가가 있어서 미국에 진출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
一 미국 진출은 언제 쯤으로 예상하고 있나.
“2024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현지 파트너를 찾아 타깃으로 할 병원들을 선정하고, 병원 맞춤형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절차도 준비 중이다. 미국 진출 지역은 보스턴이 유력하다.”
一 미국 시장 전망은 어떤가.
“미국은 한국과 비교해 진료 환경이 열악하고, 의료 접근성 자체가 떨어지고, 의료비도 비싸다. 민간 보험이 없으면 재활 치료 한번에 1000달러를 내야 한다. 여기에 미국은 치료비를 낼 때 치료의 질이 평가하는 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의료기기 활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뜻이다.”
一글로벌 대형 제약사들도 디지털 의료기기에 관심이 많나.
“그런 것으로 안다. 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하면, 그 약을 사용한 환자들의 상태가 어떻게 좋아지는 추적 관찰해서 정보를 축적해야 한다. 환자 정보를 얻는 최적의 수단이 디지털 의료기기다. 그리고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약만으로 병이 좋아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디지털 의료기기가 머지 않은 시점에 의료 시스템에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一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있나.
“디지털 의료기기 개발 업체가 활발히 연구 개발해 혁신적인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다양한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국내서 디지털 의료기기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책 도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첫 단계로는 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써 봐야 좋은지, 안 좋은지 알 수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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