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아재의 건강일기] (19)냉장고를 가급적 멀리 두라

김고금평 에디터 2023. 1. 8.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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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육체는 하루하루 배신의 늪을 만든다. 좋아지기는커녕 어디까지 안 좋아지나 벼르는 것 같다. 중년, 그리고 아재. 용어만으로 서글픈데, 몸까지 힘들다. 만성 피로와 무기력, 나쁜 콜레스테롤에 당뇨, 불면증까지 육체의 배신들이 순번대로 찾아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건강은 되찾을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와 함께한 지난 2년간의 건강 일기를 매주 토요일마다 연재한다.

노년 건강에는 강도 높은 운동보다 가벼운 운동 중심으로 꾸준히 하는 게 좋다. 맨손과 잔발을 자주 사용하면서 노동과 운동의 경계를 없애는 것이다. /사진=유튜브 캡처


올해 78세인 내 어머니는 평생 건강검진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독감 주사를 맞거나 코로나19 백신을 맞는 것 외에 병원을 찾는 일이 없었다. 자식이 아무리 등 떠밀고 부추겨도 요지부동이다. 그 흔한 피검사 한 번 해볼 법도 하지만, 검진이라는 말만 나와도 짜증 내기 일쑤다. 뼈가 부러지고 피를 흘리지 않는 한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게 지론이다. 게다가 자신의 건강을 담보하는 명제는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인 듯했다.

그렇게 늘 불안해 보이는 어머니의 '건강지표'에서 이상한 징후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걷는 게 좀 불편하고 힘들다는 것만 제외하면 정신은 아직 멀쩡하고 삼시 세끼도 충분히 챙겨 드신다.

그 연세에 당뇨니 고혈압이니, 고지혈증이니 하는 문제를 들먹이는 것은 소모적이다. 70세 전까지는 몰라도 80세에 가까우면 식사를 제한하거나 약을 먹는 행위가 면역력에 방해될 수 있다. 고령에는 수치가 아닌 습관에 유의해야 한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떨어졌다는 사실에 기뻐할 게 아니라, 어제 먹은 음식량의 반밖에 드시지 않는 것에 불안해야 한다.

어머니가 나름의 건강을 지키는 이유가 궁금했다. 매일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채식 위주로 식사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을 재생하며 어머니의 행동을 추적해보니,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됐다.

식사를 준비하기 전과 식사 후 어머니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움직였다. 삼시 세끼 중 어느 한 끼를 나가서 드신 적도 없고 식사 준비나 설거지를 누구에게 맡긴 적도 없다. 그러니까 하루에 세 번 꼬박 '의식하지 않는' 운동, 즉 잔 운동을 꾸준하게 해온 셈이다. 이런 운동이 건강에 어떤 도움이 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운동이라면 모름지기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땀을 제법 흘린 뒤라야 비로소 '한 것 같은' 느낌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집에서 소소한 일거리로 운동을 대신하는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된다. /사진=유튜브 캡처


최근 여러 전문가들의 해석을 종합해보면 노인의 장수와 건강을 위해선 '헤비한' 운동보다 '소프트한' 운동의 일상성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은퇴한 노인들이 그 시점에서 건강을 오래 유지하려면 새로운 고강도 운동을 찾는 것보다 은퇴 전의 하던 '노동'을 계속하는 것이다.

일본의 노인정신의학 전문의 와다 하데키는 저서 '70세가 노화의 갈림길'에서 70대 이후엔 느슨한 운동이 효과적이라며 "일하는 것이 노화를 늦추는 최고의 보약"이라고 강조한다. 일하지 못한다면 일부러라도 외출하거나 눕지 말고 움직여야 한다고 '습관'에 대해 지적한다.

책엔 △늙을수록 고기를 먹어라 △햇볕 쬐는 습관이 젊게 한다 △협압·혈당치를 과하게 조절할 필요 없다 △활발한 인간관계가 최고의 명약 같은 노년 건강의 중요한 원칙들이 있지만 그중 하나에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느슨한 운동'의 습관이 자리를 꿰차고 있다.

와다 히데키 박사는 더 좋은 몸으로 70대에 진입하기 위해 40, 50대부터 건강 생활을 습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의 현재 습관을 조명해보니,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습관'을 유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부엌에 냉장고 넣을 공간이 부족해 옆방에 억지로 밀어 넣은 냉장고의 배치가 나름 '신의 한수'였다고 할까. 처음엔 냉장고에서 물건 하나 꺼내기 위해 부엌에서 옆방으로 잔발을 여러 번 사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지치기도 하고 짜증도 났으나, 이런 의무가 되레 작은 노동의 축적과 근면의 동기를 일으켜 지금은 재미있는 습관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걸 제외하고 하루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경우로 잔발의 걸음 수를 계산해보니, 거의 1000걸음 가까운 걷는 효과를 유발했다. 단순히 걸음 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식사 전부터 준비운동으로 시작해 식사 후 설거지까지 먹고 바로 눕거나 쉬는 안 좋은 습관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점에서 의도치 않게 건강을 유지했다는 뿌듯함까지 덤으로 챙길 수 있었다.

기자 집에는 냉장고가 부엌에 있지 않고 옆방에 놓여있다. 요리할 때 일부러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음식을 꺼내는 데, 이런 움직임의 습관을 통해 건강을 유지한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떨어진 냉장고에서 밥을 해 먹는 일은 다음 3가지 측면에서 건강에 이롭다. 우선, 소소한 노동을 강제할 수 있다. 냉장고 안 음식을 부엌까지 끌고 가야 하는 노동의 길은 '멀고 험하다'. 아침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어린입, 사과, 파프리카, 블루베리, 토마토, 오이, 견과류를 한꺼번에 옮길 수 없기에 양팔에 하나씩 부여잡고 오고가길 여러 번 거친다.(물론 이 노동은 의도된 것이다)

그 다음 냉동실에서 호밀빵을 꺼내기 위해 허리를 굽힌다. 기상하자마자 굳은 허리 척추를 펴주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치즈와 우유를 꺼내 아침 식탁을 완성한다. 재료를 꺼내는 동안 노동과 운동의 경계는 희미해질 뿐이다. 냉장고를 더 멀리 떨어뜨릴수록 운동효과는 더 커진다.

둘째, 냉장고가 멀어지면 한번 가져올 때 잊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서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같은 크기의 음식물을 꺼낸 뒤 두 번째는 '이것, 세 번째는 '저것' 하는 식으로 순서를 정하고 잊지 않기 위해 되새기는 행위들이 나름 치매 예방의 지름길이라고 믿으며 실천한다. 현존하는 가장 효과 좋은 치매 치료는 걷는 것이고 걸으면서 구구단 등을 외우면 효과는 더욱 좋다고 알려졌다. 거리가 있는 냉장고까지 왔다 갔다 하며 물건을 기억하는 방법 역시 또 다른 치매 예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그렇게 얻은 수고로 만든 집밥은 외식 때와 확연한 차이로 만족감과 건강을 높여준다. 집에서 손수 끼니를 해결해봐야 밖의 음식이 얼마나 달고 짠지 비교할 수 있다. 집에서 제육볶음을 할 땐 설탕이나 올리고당(물엿)을 첨가할 때 더 넣기가 고민되는데, 밖에서 먹을 땐 그 단맛 첨가물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입안에서부터 느껴지는 단맛으로 가늠할 뿐이다. 그렇게 먹어보면 밖의 음식이 굉장히 달거나 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되도록 하루 두 끼는 집에서 해 먹는걸 '의무조항'으로 새겨둘 필요가 있다.

평소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노년 건강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사진=유튜브 캡처


냉장고가 멀리 있을 때, 우리는 딱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나는 부족한 채소와 과일, 영양식을 걷기 운동으로 언제든 꺼내먹을 수 있다는 사실'과 '건강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 맨손과 잔발, 머리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냉장고를 가까이 두고 건강한 음식을 더 빠르고 많이 해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에 문제가 있는 이들은 가급적 냉장고를 멀리 두고 몸을 좀 더 부지런히 움직이는 편이 육체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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