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폭탄으로 폭탄 잡는다...폭발물 처리장비 개발한 경찰특공대[베테랑]

김지은 기자, 김도균 기자 2023. 1. 8.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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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김종오 서울경찰특공대 폭발물처리제대 2팀장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29만건(2020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좌)김종오 서울경찰특공대 폭발물처리제대 2팀장(51·경감)이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열린 '2022년 국민안전 발명챌린지'에 참여한 모습. (우)김 팀장이 직접 만든 K-Tool A./사진=김종오 경감 제공


직사각형 모양에 빨강, 파랑, 투명 아크릴판, 윗면에 툭 튀어나온 마개까지. 겉보기엔 평범한 물통처럼 보이지만 이 제품은 사실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다. 벽돌, 철제 파이프, 압력 밥솥 뿐만 아니라 사제 폭발물까지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다.

제품 이름은 'K-Tool A'. 5일 머니투데이가 만난 김종오 서울경찰특공대 폭발물처리제대 2팀장(51·경감)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개발한 사제 폭발물 처리 장비다. 김 팀장은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열린 '2022년 국민안전 발명 챌린지'에서 865 대 1 경쟁률을 뚫고 이 제품으로 대상을 받았다.

K-Tool A 내부의 모습. 중심부, 그 주변을 둘러싼 공간, 삼각형 모양의 빈 공간까지 총 3개의 공간이 있다. /사진=김종오 경감 제공

"K-Tool A에는 비밀이 숨어있어요"
김 팀장에 따르면 K-Tool A 내부는 3가지 공간으로 구성된다. 회색 뚜껑 밑 가운데 중심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공간, 그리고 삼각형 모양으로 파랗게 표시된 공간이다.

회색 뚜껑 밑 가운데 중심부는 폭발성 물질을 넣는 곳이고 검은색 마개가 있는 넓은 공간은 물을 담는 곳이다. 김 팀장은 K-Tool A의 폭발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김 팀장은 직접 개발한 폭발성 물질을 사용했다. 여기에 뇌관을 삽입해 기폭을 하면 폭발과 함께 물이 사방으로 퍼지게 된다. K-Tool A는 이 때 고속으로 방출되는 물의 힘을 이용해 사제 폭발물을 파괴시키는 원리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공간은 파괴력과 관통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김 팀장이 발명했다. 김 팀장은 "아크릴 내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90도 각을 주면 노이먼 효과(탄환의 관통력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발생해서 효과가 더 좋다"며 "책이랑 논문을 수십권씩 찾아보고 100번 넘게 실험 해본 결과 알아냈다"고 말했다.

K-Tool A는 안전성과 비용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대상에 선정됐다. K-Tool A 하나 가격은 2만3000원인데 기존에 사제폭발물 처리장비들이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웃도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비용 절감이다. 또 K-Tool A는 한 손으로 들만큼 사이즈도 작고 가볍기 때문에 어디든 쉽게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경찰특공대 대테러 합동훈련 현장 모습. K-Tool A가 빠르게 폭발하면서 실제 폭발물이 담긴 폭발물 장비 역시 파괴됐다./사진=김종오 경감 제공

"우리나라도 K-장비 만들어보자" 집요한 경찰 발명가
K-Tool A는 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해 만든 발명품이 아니었다. 2019년부터 김 팀장의 설계를 바탕으로 수백번의 폭발 실험 끝에 2021년 1차 모델을 완성한 상태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또 어떤 대가를 바라고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현장에서 안전하고 신속하게 사제 폭발물을 처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하나로 시작된 김 팀장만의 프로젝트였다.

김 팀장이 혼자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는 기존에 사용하던 폭발물 처리 장비가 비싸고 설치에도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물사출 분쇄기는' 장비가 너무 무겁고 커서 조립하는 데만 10분 넘게 걸렸고 가격도 4000만원 수준이었다. 김 팀장은 "그럴 바에는 내가 직접 만드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나라 경찰특공대처럼 한국의 경찰특공대도 직접 개발한 장비를 써야 한다는 사명감도 들었다. 김 팀장은 2011년에 프랑스 훈련에서 해외 경찰 특공대들은 소형 사제 폭발물 처리 장비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모습을 봤다. 김 팀장은 당시 "각자 자기네 나라 특성에 맞게 제품을 만들어 쓰는데 나도 우리나라 특성에 맞는 장비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K-Tool A를 완성하기 위해 외국에 있는 경찰특공대원과 연락을 취했다. 해외에서는 어떤 장비를 쓰고 있는지, 어떤 재료를 쓰고 어떤 원리를 이용하는지 직접 이메일을 보내서 물어봤다. 해외에서 폭발물 처리 장비를 연구하는 이들을 한국에 초청하기도 했다. 그들이 가져온 물건을 직접 살펴보고 자신이 만든 K-Tool A를 보여주기도 했다.

공모전에 도전하는 과정에서도 수백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특허를 내려면 완성도를 높여야 했다. 노이먼 효과를 주기 위해 각도를 어떻게 조정 해야 할지 수십 번 실험해봤다. K-Tool A가 벽돌 5개에 압력밥솥까지 파괴하는 것을 봤을 때는 "이제 됐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김종오 서울경찰특공대 폭발물처리제대 2팀장(51·경감)의 모습. / 사진=김종오 경감 제공
밀리터리 덕후가 33살 늦깎이 경찰특공대가 되기까지
올해로 경찰 생활 18년 차인 김 팀장은 경찰 특공대 후배들 사이에서 '레전드'로 불린다. 폭발물에 있어서는 김 팀장을 따라올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생명응용공학을 전공한 그는 이른바 '밀리터리 덕후'였다. 김 팀장은 "화약이 '펑' 하고 터지는 장면을 보면 어떤 원리로 폭발물이 터지는지 궁금해지더라"고 말했다.

이런 호기심으로 김 팀장은 경찰 입직 전 폭약 관리 업무를 했다. 다른 동기들은 과학 연구 쪽으로 취업을 했지만 김 팀장은 화약류 관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한 뒤 터널 굴착 공사현장에서 발파 작업을 하는 기술자로 6년 이상 근무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폭약 업무를 하다보면 관련 허가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자주 방문해야 했다. 그리고 2003년 여름 업무차 찾은 제주지방경찰청에서 '경찰특공대 폭발물 처리반' 모집공고를 보게 됐다. 전문 분야도 살리면서 동시에 안정적인 직장 생활도 할 수 있는 경찰직에 매력을 느꼈다.

이미 기혼 상태였던 김 팀장은 낮에는 현장에서 폭약으로 발파 작업을, 밤에는 집에서 폭약 서적을 펼치고 공부를 했다. 3년 뒤인 2005년 김 팀장은 33세의 늦은 나이에 경찰 제복을 입었다. 제주경찰청 경찰특공대에서 6년을 보내고 파출소, 한강경찰대 등을 거쳐 지금의 서울경찰청 경찰특공대 폭발물처리대에 오게 됐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냐는 머니투데이의 질문에 김 팀장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3년 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 팀장은 현장과 공모전에서 쌓은 경험을 경찰 조직의 발전을 위해 쓰고 싶다고 다짐했다. 김 팀장은 "지금까지 배운 노하우들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줘서 계속 폭발물 장비가 개발되고 추가적인 연구·개발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종오 서울경찰특공대 폭발물처리제대 2팀장(51·경감)이 지난해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시험 발사한 K-Tool A의 모습. /사진=김종오 경감 제공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김도균 기자 dk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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