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현대적 재해석…'지금 우리의 신화'展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타데우스 로팍 서울은 한국과 한국의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첫 단체전 '지금 우리의 신화'(Myths of Our Time)를 2월25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의 예술과 문화, 사회적 지형을 작업의 주요 영감으로 삼는 정희민, 한선우, 제이디 차의 신작이 소개된다. 다양한 문화적 맥락에서 파생된 이야기들을 조각과 텍스타일,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현대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기술 발전과 정체성, 자아 등의 첨예한 현대사회적 사안을 다룬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정희민 작가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요정 '에코'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한 신작 회화 3점과 입체 조각 3점을 선보인다.
상대방의 언어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에코'의 기구한 운명은 언어가 지닌 한계, 특히 디지털 기반의 정보체계가 가진 언어적 한계를 상징하는 메타포이다.
작품 '먼 곳에서의 부름'은 거대한 촛농이 뒤엉켜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웅장한 폭포를 연상한다. 작가는 "생활의 많은 기반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대상을 지각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이 지속적으로 달라진다고 느낀다"며 "원래 있는 것들로부터 다른 의미를 끌어내는 것,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를 위해 전통적인 소재를 활용한다"고 말한다.
정희민은 작품을 구체화하기에 앞서 디지털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일종의 캔버스 스케치를 제작하고 단면이나 표면으로 분해된 디지털 오브제를 그려낸다. 이런 단면들은 투명한 겔 미디엄을 통해 물질화되며 막을 형성한다. 파스텔 색조를 입기 전의 물감 덩어리들은 구겨지거나 꼬집히며 캔버스 위에 걸쳐지고 흘러내리며 주름진다.
이런 물질들은 본래 디지털로 고안된 오브제에 대한 공명으로써 캔버스 위에 자리하고 이로써 작가는 정물화라는 관습적 회화 장르를 재구성하기에 이른다.
정희민의 입체 조각 작품은 지속적인 회화적 실험의 일환으로 디지털 소프트웨어로 구현된 조각 작품의 선들은 마치 생체 구조를 연상하며 이는 뼈에서 돌이 되어버린 에코의 마지막 신체 변형을 상기한다.
기술과 예술의 관계성은 한선우의 작업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철술과 중세 갑옷의 역사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가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신체를 확장하는 기술의 잠재력을 탐구한다.
조각난 몸과 혼종된 육체 형태가 기계나 물체, 풍경과 한데 뒤엉켜 캔버스를 채우는데, 이는 신화에서 보이는 일종의 변형(metamorphosis) 상태를 연상시킨다. 인간을 넘어서는 '강화된 신체'에 대해 작가는 '살아있는 잔해로, 파편화되고 취약한 상태'라고 덧붙인다.
이번에 전시된 '새장 안에서' '관찰' '오래된 땅' 모두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캔버스에 놓인 배경과 사물들이 모두 회색빛을 띠는 가운데 색을 입은 건 '신체(또는 신체를 상징하는 것)의 일부분'뿐이다. '관찰'에서는 캔버스 대부분을 '초'가 차지하지만 그 표면은 앙상하게 드러난 인간의 '붉은색' 핏줄이 뒤덮고 있다. 수술대 위에 올라 속박된 것처럼 보이는 초의 몸통, 돋보기로 빛이 집중돼 타들어가는 상부, 검게 변해 더는 '초'의 본분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꼬리 부분의 심지를 통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취약함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초'를 둘러싼 '사물들'이 반대로 초를 '재생'하는, 인간의 취약함을 '보완'해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기술이 인간의 취약점과 심지어 무력함을 확대하고 동시에 현실에 필터를 입히는 사회에서 신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유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의 기이한 융합을 떠올려본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다양한 소스를 통해 이미지를 수집해 작품의 영감으로 삼고 포토샵을 일종의 스케치' 도구로 활용해 디지털 이미지의 총체를 만들어낸다. 에어브러시와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활용해 캔버스 위에서 확대되는 과정을 통해 한 화면 내에 '컴퓨터 같은 질감'과 더불어 명백한 회화적 표현을 병치한다.
이민 2세대로 캐나다에서 태어나 자라 현재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제이디 차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에 작품을 처음 소개하는 작가다. 팔레스타인을 떠나 살면서도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디아스포라)처럼 작가는 한국을 떠나 살지만 작품 속에는 한국의 신화와 설화적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풀어 놓는다.
작가의 대형 회화 '귀향'(Homecoming)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제이디 차는 본인 자화상을 한국의 보자기로 대표되는 누비 기법을 활용해 만든 사방 프레임과 결합한다. 공예적 전통을 적극 수용하고 참조하며 본인의 작업을 생산의 역사적 계통 내에 위치시키는 작가는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과정에서 지워지거나 가려지는' 장인과 예술가들을 재조명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한국 신화에서 나타나는 전통적 상징물을 자전적 모티프와 융합함으로써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다문화적인 신화를 새로이 확립해나간다. 작가의 반려견을 도덕적 시비를 판별하는 동물 해태로 등장시키거나, 제주도에서 발견한 소라고둥을 집을 상징하는 도상으로써 활용하기도 한다.
작가의 작업 세계 전반에서 자화상은 아주 드물게 등장하는 소재이지만 작가로서의 예술적 귀향을 상징하기 위해 스스로를 작품 내로 끌어들였다.
제이디 차는 "나는 신화를 주춧돌 삼아 다른 예술가와 나를 연결하기 위한, 혹은 역사적 선상에 나를 위치시키기 위한 더 큰 프로젝트를 고안하고자 한다"며 "이것이 내게는 내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고찰하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대표는 "한국에 갤러리를 연지 이제 1년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 그동안 정말 다양하고 많은 한국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다녀왔다"며 "한국 미술계랑 한국 작가들에 공부를 굉장히 많이 했고 영감도 많이 얻었고 지금도 얻고 있다"고 밝혔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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