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성의 DB, 원주 산성 재건할까?

김종수 2023. 1. 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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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 양동근(은퇴), KGC 오세근, SK 김선형, 삼성 이규섭 등 KBL에는 해당팀에서 영광의 순간을 함께한 걸출한 스타들이 존재한다. 우승 기여도, 리그에 남긴 임팩트, 개인성적, 프랜차이즈 등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해당팀을 연상할 때 그 선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면 명실상부한 레전드가 분명하다.


때문에 팬들 입장에서는 그들만큼은 은퇴 후에도 어느 정도 명예롭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정도 급의 선수는 해당팀에서 지도자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큰데 선수 시절 아무리 잘했어도 지휘자로서의 결과물이 그에 미치지못할 경우 많은 비난에 시달리기도한다. 특정팀에서 영원한 전설로 남고싶다면 지도자를 하지말라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다.


KCC 선수로서 더 이상 나무랄데없는 커리어와 이미지를 남겼지만 감독으로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했던 추승균이 대표적 예다. 선수 추승균은 궂은일에 충실하면서도 득점, 패싱게임에 고루능한 영리한 살림꾼이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않는 승부사 기질까지 과시했다. 반면 감독이 되어서는 영리하지못한 운영은 물론 위기시 당황하는 모습 등을 자주 노출하며 팬들을 실망시켰다.


최근 이상범 감독이 사퇴하고 새로이 DB 사령탑에 오른 김주성(43‧205cm) 감독대행에게 시선이 몰리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DB 김주성은 KCC 추승균과 같은 존재다. DB(당시 TG삼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은퇴하던 순간까지 원주와 함께한 리얼 프랜차이즈 스타다. 은퇴 후에도 코치, D리그 감독 등으로 인연을 이어나갔다. 원주 농구 역사에서 김주성은 상징과도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런 그도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스포츠의 세계는 냉정하다. 선수시절 아무리 대단했다해도 지도자가 된 이후 부진하거나 그로인해 이미지가 구겨지게되면 좀처럼 회복이 어렵다. 가장 최근의 기억이 더 많이 남는다는 말처럼 지도자 때의 흑역사가 과거의 영광까지 덮어버리기 일쑤다. 앞서 언급한 추승균은 물론 축구의 홍명보, 야구의 선동렬 등 타종목 역시 다르지않다.


일단 지도자 김주성의 스타트는 좋다. 7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있었던 현대모비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94-90으로 승리를 거뒀다. 단순한 1승일 뿐이지만 원주의 최종병기가 될지도 모를 남자의 데뷔전을 승리로 가져갔다는 점에서 적지않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높이의 활용이었다. 최승욱(195cm), 강상재(200cm), 김종규(206cm), 드완 에르난데스(208cm) 등 높이를 갖춘 선수들을 한꺼번에 코트에 내보내는 등 제공권에서부터 확실한 우위를 점한 부분이 눈에 띄게 다가왔다. 현대모비스 역시 장신팀으로 유명하지만 이날 DB에게만큼은 공수 여러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여기에는 두경민의 수술 공백, 이선 알바노의 독감증세 이후 컨디션 저하 등 앞선이 약해진 영향도 있었지만 가드진 약세를 높이로 채우는 모습은 분명 예사롭지 않았다. 앞선 4인데 더해 레나드 프리먼(198cm)까지 버티고 있었던지라 높이를 앞세운 수비는 물론 미스매치 유도, 공격리바운드 참여 등 장신 라인업의 이점이 두드러졌다. 

 


사실 DB는 그 어떤 팀보다도 높이를 무기로 할 수 있는 조건이 충만한 팀이다. 주전급 토종빅맨이 많지않은 상황에서 김종규, 강상재라는 국가대표급 빅맨 자원을 둘이나 가지고있다는 점은 다른팀 입장에서 부러운 일이다. 김종규는 신장대비 운동능력, 기동성이 좋은 선수이며 강상재는 빼어난 슈팅력을 강점으로 하고 있다.


각자의 플레이 스타일까지 확연하게 다른지라 외국인선수 두명과 함께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그동안은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팀내 최고 장점을 살리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김종규(18득점, 9리바운드, 1스틸, 2블록슛), 프리먼(9득점, 10리바운드, 1블록슛), 에르난데스(18득점, 2리바운드), 강상재(17득점, 8리바운드, 6어시스트, 1블록슛) 등 빅맨 4인이 모두 제몫을 해줬다.


어떤 조합으로 나와도 유기적인 플레이가 가능했다. 알바노(9득점, 8어시스트, 3스틸)는 모처럼 공격부담을 덜고 패스를 뿌리기가 한층 더 용이했고 최승욱(15득점, 2스틸) 또한 우산효과를 받으며 살림꾼 역할에 더 충실할 수 있었다. 골밑이 안정되자 외곽수비도 덩달아 에너지가 높아졌다. 그간 DB가 바랬던 최상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에 팬들 사이에서는 ‘김주성 카드로 분위기 반전에 들어간 DB가 상승세를 타고 예전 원주를 대표하던 높이 농구를 되살릴 수 있을까?’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현재 하위권에 쳐져있는 팀 성적을 감안했을 때 섣부른 희망고문일 수도 있겠으나 단체 스포츠에서 상승세를 탄 팀이 시즌 중에도 확 바뀌어버리는 모습은 아주 드물지만은 않다. 더욱이 DB는 선수들 면면만 놓고봤을 때는 어떤 팀과 비교해도 밀리지않는 라인업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김 감독대행은 이른바 ‘높이 농구’에 도가 튼 인물이다. 선수 시절 김주성은 리그 최고의 파워포워드로 불렸다. 빅맨치고 마른 편이기는 했지만 매우 빠르고 운동능력이 좋았으며 무엇보다 BQ가 탁월했다. 자신보다 크거나 힘이 좋은 상대는 스피드를 활용한 페이스업으로, 작은 선수는 포스트업으로 공략했으며 장신을 활용한 속공 트레일러 역할은 수비 방법이 없다고 할 정도로 대단히 위력적이었다.


블록슛은 물론 도움수비에도 일가견이 있어 그가 절정의 기량을 발휘하던 당시 DB의 인사이드는 난공불락으로 불렸다. 무엇보다 김주성의 최고 장점은 국내 선수는 물론 외국인선수까지 어떤 유형과도 나쁘지않은 조합이 가능하는 점이었다. 때문에 DB는 외국인선수를 선발할 때도 선택의 폭을 넓게 가져가는 것이 가능했다. 파워형 센터, 게임 운영형 센터, 수비형 선수 등 누구를 데려와도 파트너를 이뤘다.


이런 선수 시절의 성향과 노하우를 사령탑으로서도 녹여낼 수 있다면 DB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의 변신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선수시절 김주성만큼은 아니겠지만 상황에 맞게 김종규, 강상재를 활용할 수 있다면 상대팀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머리가 아플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DB가 찐 레전드 김주성과 함께 원주 산성 당시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문복주 기자, 윤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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