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번 사람도 있다” 여기 넣으면 쓰레기도 돈 드려요 [지구,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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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그저 자판기다.
2000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기분만큼은 2000만원 같다.
돈도 벌지만 환경도 아끼고 자원순환에도 기여했다는 자부심.
언제든 가까운 곳에서 한두 개씩이라도 편히 반납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확실하게 환경에 기여한다는 자긍심, 거기에 10원씩 쌓이는 재미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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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이건 무슨 자판기지?”
얼핏 보면 그저 자판기다. 다른 게 있다면 뭘 빼는 게 아니라 뭘 넣어야 한다는 점. 입구는 동굴 같다. 여기에 찌그러뜨린 캔을 넣었다. 그러자 파란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멈춘 캔이 “절그럭”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화면에 ‘포인트 10’이 추가됐다.
직접 350㎖ 캔 15개, 500㎖ 투명 페트병 2개를 모두 투입해 170포인트를 벌었다. 개당 10원꼴. 2000포인트를 넘겨야 2000원으로 쓸 수 있다. 2000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기분만큼은 2000만원 같다. 돈도 벌지만 환경도 아끼고 자원순환에도 기여했다는 자부심. 바로 쓰레기를 선별 수집하는 인공지능 로봇 덕분이다.
지난 6일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 한쪽에 위치한 시장자원센터. 1층 입구에서 순환자원 회수로봇 ‘네프론’을 마주했다. 원리는 쉽다. 투입된 쓰레기를 카메라로 스캔한 뒤 재활용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선별한다. 캔, 라벨을 제거한 투명 페트병만 투입할 수 있다. 통조림 형태의 캔이나 불투명한 병은 거절한다.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이 구매, 배치한 네프론만 680여대. 심지어 일부 지역에선 너무 많은 양이 수거돼 1일 사용량을 줄여야 했을 정도다.
한 번 이상 네프론를 이용해본 이들은 35만명가량이다. 기록적인 사례도 있다. 100만원 이상 회수한 사람도 있다. 10원씩 모은 것이니 10만개를 모아온 셈이다.
기업도 이 로봇을 구매하고 있다. 네이버는 세계 최초 로봇친화적 건물로 불리는 제2사옥 ‘1784’의 전 층에 30여대 네프론을 설치했다.
이 로봇을 자주 이용한다는 박모(45) 씨는 “집이나 직장 바로 앞에 있는 분리수거장보다는 멀어도 재활용이 확실히 되고, 소액이지만 포인트도 쌓을 수 있으니 애용한다”고 전했다. 투명 페트병은 분리배출장에 따로 배출해도 일반 플라스틱과 섞일 때도 많은데 이 로봇은 확실하게 투명 페트병을 모을 수 있으니 좋다고 덧붙였다.
시민의 반응처럼 네프론의 장점은 확실한 선별이다. 투명 페트병은 잘 모으면 고품질의 자원이지만 일반 플라스틱과 섞이는 순간 대부분 소각 처리된다. 분리수거가 의무화된 투명 페트병의 재활용률은 72%(2021년 기준). 약 30%는 잘못된 분리배출 등으로 일반쓰레기로 버려지는 셈이다. 투명 페트병 분리수거율은 독일은 98%, 일본은 89%로 해외에서 더 높은 편이다.
물론 소비자가 버는 비용으로만 따지면, 일반 고물상이 더 나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알루미늄캔 1㎏을 모아 팔면 평균 1254원을 번다. 네프론에 1㎏(350㎖ 캔 1개 15g 기준)의 알루미늄캔을 반납했다고 가정하면 666원을 벌 수 있다. 돈으로만 따지면 절반 수준이니, 수익성으로 보면 고물상이 나을 수 있다. 다만, 1254원을 벌고자 교외 수거업체까지 가져갈 각오라면.
이 로봇 수거 시스템이 인기를 끄는 비결은 사실 돈에 있지 않다. 언제든 가까운 곳에서 한두 개씩이라도 편히 반납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확실하게 환경에 기여한다는 자긍심, 거기에 10원씩 쌓이는 재미는 덤이다.
네프론을 개발한 ‘수퍼빈’은 사실 세계적으로도 핫한 스타트업이다. 2015년 시작해 지난해까지 다섯 차례 투자를 유치해 모인 돈만 467억원에 달한다. 환경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영국 ‘어스샷’에 한국 기업 최초로 후보에 선정되기도 했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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