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수사 중 논란 ‘솔솔’… 檢 “도입 필요” 법조계 “시기상조” [뉴스 인사이드-다시 떠오른 ‘플리바게닝’]

박미영 2023. 1. 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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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MB정부 입법예고했지만 무산
최근 대장동 일당 폭로에 檢과 거래 의혹
피신조서 증거능력 제한 등 환경 달라져
검찰 “진술유지 위해 플리바게닝 있어야”
법조계 “사법거래,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검찰이 형량 좌우지 헌법에 어긋나” 지적
일각 “시대 맞게 제도 설계할 논의 필요”
이원석 총장도 “심도 있는 연구 모색해야”
최근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 의혹 사건 등 검찰이 수사 중인 주요 사건에서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의혹이 제기됐다. 주요 피의자들이 형량을 감경받기 위해 공모자 등의 범죄에 대해 진술한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플리바게닝은 법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제도이다.
그러던 중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달 12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준 김(Joon H. Kim) 전 미국 뉴욕남부연방검찰청 검사장 직무대리의 강연에 참석해 “미국 형사절차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플리바게닝’ 등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우리 검찰 제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 제도 도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 연합뉴스
검찰 내부에선 지난해 시행된 개정 형사소송법에 의해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제한되는 등 달라진 수사·재판 환경에 따라 플리바게닝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수사 편의주의나 검찰권 남용 등을 이유로 한 도입 신중론도 여전히 우세하다.

◆12년 전 입법예고 후 무산, ‘대장동 사건’으로 다시 등장

2011년 7월 이명박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사법협조자 소추면제 및 형벌감면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당시 제도는 조직범죄 등 가담자가 사건 해결 또는 공범 검거에 기여할 경우 기소 자체를 면제해 주거나 형을 감경해 주는 이른바 한국판 ‘플리바게닝’이었다. 본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자백을 통해 형을 감면받는 미국의 플리바게닝과는 달리 ‘타인’의 범죄를 규명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검찰권 비대화, 남용 등을 이유로 도입 반대론이 우세했고 입법예고까지 거쳤지만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2016년 1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에도 검찰을 중심으로 대기업 수사, 금융범죄 수사 등에서 플리바게닝 도입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다. 2017년 국정농단 사건 때에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결정적 순간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중요 단서를 건네며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 이를 참작한 검찰은 1심에서 장씨에게 다소 가벼운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이보다 높은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검찰의 플리바게닝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에는 수감돼 재판받고 있던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 대장동 일당이 기존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진술하지 않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대선 경선자금 지원 사실 등 새로운 내용을 잇달아 폭로하기 시작하면서 검찰과 플리바게닝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2022년 12월 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신조서 증거능력 제한’까지… 어려워진 수사·재판
현행법에도 내부 가담자에 대해 자수나 신고를 양형에 참작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고 기소편의주의(검사에게 기소·불기소의 재량 여지를 인정하는 제도)를 통해 수사 협조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앞서 장시호씨의 사례처럼 이를 양형에 반영할 것인지는 결국 법원의 재량에 달려 있기 때문에 수사 대상자의 협조를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지난해부터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내용의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플리바게닝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개정 형사소송법 312조는 기소되는 사건의 피신조서가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피신조서 내용을 동의할 때에만 증거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한다. 피고인이 검찰 수사 단계에서 혐의를 인정했다가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을 수 있기 때문에 진술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플리바게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범죄가 고도화하고 복잡해지면서 수사에 대한 로펌들이나 범죄자들의 대응도 더욱 진화하고 있다”며 “물증을 입수해도 어떤 의미인지 관련자의 진술이 없는 경우에는 소용이 없게 된다. 결국 사건의 ‘윗선’이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도입 신중론 우세 속 논의 필요 주장도

법조계에선 플리바게닝 도입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사법기관,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이른바 사법거래 제도를 도입한다는 건 일단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법리적으로도 검찰 수사 단계에서 피고인의 형량이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도록 돼 있는 헌법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수는 “검사의 청구와 법원의 명령에 따르도록 하거나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제도로 구성을 한다면 보완이 가능한 부분”이라며 “공정거래법상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한 기업에 고발 및 과징금을 면제해주는 ‘리니언시 제도’가 있는 것처럼 형사법적인 측면에서도 시대에 맞는 제도를 설계할 수 있도록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美, 연방사건 97% ‘유죄협상’으로 해결… 플리바게닝 해외 사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은 플리바게닝을 명문화해 시행하고 있다. 유죄협상에 대한 거부감을 가졌던 대륙법계 나라들도 사법 운영의 효율성 등을 이유로 여러 견제 장치를 갖춘 채 도입하는 추세다.

플리바게닝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미국에서는 2012년 기준 주(州) 형사사건의 94%, 연방사건의 97%가량이 이 제도로 해결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1920년 국가금주법 시행 이후 밀주사건이 급증한 것이 플리바게닝이 보편화한 계기로 알려져 있다. 당시 수사기관과 형사법원의 업무 증가에 따라 유죄협상은 형사사건 처리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1967년 전미 변호사협회가 플리바게닝을 공식 승인했고, 1971년 연방대법원도 형사절차의 일부로 인정했다.

미국의 플리바게닝 유형으로는 검사가 피의자로부터 유죄답변을 받는 대신 △상대적으로 가벼운 죄명으로 기소 △복수의 혐의 중 일부만 기소하고 나머지는 기소하지 않거나 일부에 대한 공소를 취소 △법원에 감형의견 제시와 같은 피의자에 대한 일정한 약속 등이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에 사법제도를 전한 영국에선 18세기부터 플리바게닝 사례가 존재했지만 1994년이 돼서야 정식으로 법제화했다. 현재는 경미한 사건 재판의 경우 90%, 중범죄 사건의 경우는 80%가량에서 플리바게닝이 시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는 피의자에게 제기된 여러 혐의 가운데 일부에 대해 자백하는 대신 검사가 나머지 혐의의 기소를 면해주거나 혐의 내용은 변경하지 않되 자백 대가로 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게 하는 양형거래가 쓰인다.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륙법계 국가들은 플리바게닝 도입이 상대적으로 늦었다.

형사절차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사인의 역할이 제한적이라서 플리바게닝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1970년대 후반 연방 및 주 정부의 부채가 늘어 형사사법의 인적·물적 확충이 어려워져 소송절차를 간편하게 단축할 필요가 커졌다. 결국 1997년과 2005년 독일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플리바게닝을 공식적으로 허용하게 됐고, 2009년 독일 형사소송법 제257c조(법원과 소송관계자들의 협상)에 명문화했다. 다만 소송관계자의 협상 결과에 법원이 구속되지 않는다는 점, 검사가 아니라 법원이 협상을 주도한다는 점 등에서 영·미의 플리바게닝과는 차이가 있다.

프랑스도 2004년부터 제한적으로 플리바게닝을 이용하고 있다. 적용 대상 범죄는 법정형이 장기 5년 이하의 구금형 또는 벌금형인 사건 등으로 국한돼 있다. 플리바게닝 과정에 변호인 참여가 필수고 피의자가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 선행조건이다. 당사자가 협상에 합의하더라도 판사의 승인결정을 받아야 하는데, 판사는 공개심리절차에서 사실·법률 관계를 검토해야 한다.

일본은 2016년 ‘협의·합의제도’라는 이름으로 플리바게닝 제도를 도입해 2019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타인의 형사사건에 대해 진술 및 증거제출 등 수사에 협력할 경우 검사는 증거의 중요성과 관련 범죄의 경중·관련성 정도 등을 고려해 불기소나 공소취소, 약식명령청구 등을 피의자 등과 폭넓게 합의할 수 있도록 했다. 대상 범죄는 혐의 입증이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조세나 비리·사기·횡령 등 경제사건과 마약이나 총기범죄 등 특정 강력범죄에 한정됐다.

박미영·이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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