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현의 人터뷰] 1. '우리의 멸종'을 꿈꾸는 노래, 가수 fic을 만나다

유승현 2023. 1. 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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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c의 멤버들(왼쪽 두번째 이수현(35)씨)

음악하고 그림 그리며 강원도 춘천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35살 이수현 씨를 만났다.

서울 동대문구에 살았던 수현 씨는 2020년 결혼을 하며 배우자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 춘천으로 이사를 왔다. 이듬해인 2021년 8월 소중한 딸도 낳았다.

“내가 프리랜서라 집에서도 일을 할 수 있었고, 배우자가 춘천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 춘천으로 자리 잡는 것은 자연스럽게 결정됐다. 원래도 사람 많고, 복잡한 곳을 싫어해 공지천이 집 근처라 산책로가 잘 돼 있고, 여유 있는 춘천살이에 만족한다.”

2~3년 전 만해도 이렇게 살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는 그에게 춘천은 굉장히 행복한 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서울에서 디자인회사를 다니며 디자인 일을 하고, 음악을 하며 살아오던 그는 2~3년 새에 자신이 사랑하는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얼마 전 6곡을 갖춘 미니앨범을 내기도 했다고. 너무 행복해서 딸이 20살이 되면 함께 이자카야에서 고구마소주 한잔 나눌 수 있게 되는 거 외에 이루지 못한 꿈이 없다고 말하는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 ‘우리의 멸종’ 앨범발매 쇼케이스에서 기타연주 중인 이수현 씨

“생업은 종합광고대행사고, 본업은 가수입니다.”

디자인회사를 다녔던 그는 춘천으로 이사와 종합광고대행사를 차렸다. 디자인회사를 다녔던 능력을 살려 각종 포스터, 동영상 제작 등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처음엔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깔끔한 디자인과 업무 스타일로 꽤 찾는 곳이 많다. 하지만 수현 씨의 본업은 가수다. 기자 역시 ‘우리의 멸종’이란 곡을 알고, 인터뷰 요청을 했던 참이다. 동국대 사범대를 졸업한 그는 대학진학 역시 가수를 향한 길이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때 사촌형과 노래방을 갔는데 형이 ‘말달리자’, ‘서커스매직유랑단’ 등의 노래를 불렀다. 처음 듣고는 무슨 이런 노래가 다 있지 싶은 충격을 받았다. 그 후 우연히 TV에서 크라잉넛, 레이지본 등 인디밴드들의 리얼다큐 방송을 봤다. 이 뮤지션들의 ‘엉망진창’(?)인 삶을 막연히 동경하기 시작해 홍대 클럽에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 “생업은 종합광고대행사고, 본업은 가수입니다.” 생업활동 중인 이수현(35) 씨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친구 한명을 꼬셔 홍대 공연을 보러가 한참이나 공연장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는 그는 공연에서 ‘이거다’ 싶은 필에 꽂혀 일렉기타 교본 한권과 딴지일보 온라인 기타 강습 등을 보며 무작정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냐고 하자, 뭐 뻔하게도 성적과 딜을 했다고. 기타를 사주는 대신 성적이 잘 나와야 한다는 조건이었고 수현 씨는 운(?) 좋게도 기타를 사고, 고등학교 성적이 썩 괜찮게 나와 집의 반대는 없었다. 한달에 한 두 번 공연을 보러 다니고, 중학교 밴드부를 만들며 기타를 연습했다. 대학 진학 당시 조숙했던 수현 씨는 가수로 먹고 살긴 힘들고, 가사를 쓰는 등 글쓰기에 흥미를 가져 국어선생님으로 돈을 벌며 가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사범대 국교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당시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임용고시’의 존재를. 국교과만 가면 그냥 선생님 되는 줄 알았던 거죠. 어려운 시험이 뒤에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어요.(웃음)”

 

임용고시도 임용고시지만 교생을 나가보니 교사라는 직업이 자신의 적성에는 맞지 않다는 걸 느낀 그는 일찌감치 교사의 꿈을 접고, 음악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2015년 가장 좋아하는 김광석 노래 ‘새장속의 친구’를 떠올리며 fic(friends in the cage)으로 가수명을 정하고, 처음 낸 노래는 ‘위로’라는 곡이다. 당시 졸업반으로 임용고시, 취업을 준비하며 힘들었던 친구들과 자신을 위로하고 싶어 만들었다. 학교 선배의 따뜻한 목소리를 떠올리며 만들어 그 선배에게 보컬을 부탁해 첫 곡을 냈다. 이후 2017년 현재 멤버 중 한명이기도 한 김무성 씨를 영입했고, 대학 친구들과 함께 밴드로 공연도 하고, 싱글로 앨범도 내며 음악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수현 씨를 포함해 5명으로 밴드를 구성 6개곡을 담은 미니앨범 ‘우리의 멸종’을 발매, 기념 콘서트를 개최했다.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20여곡을 낸 수현 씨는 처음으로 미니앨범 작업을 하며 어려움도, 보람도 느꼈다.

“춘천문화재단 전문예술인지원사업에 선정돼 미니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워낙에 친했던 친구, 선배와 함께 밴드를 꾸려 하는 작업이라 마냥 잘 될 줄만 알았는데, 다들 생업은 따로 있는지라 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녹음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이것만 하고 해체해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웃음)”

 

▲ ‘우리의 멸종’쇼케이스 공연 모습

이 후 앨범 계획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지금 미니앨범을 준비하며 받은 스트레스가 다 풀리면 생각해보겠다고 말하는 그는 앨범 준비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만큼 보람 있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춘천의 다양한 문화적 인프라 구축 지원사업의 효과도 엿볼 수 있었다.

이번에 발매된 ‘우리의 멸종’ 앨범엔 ‘싱글베드, 안부, 좀비3:내 모든 낮과 밤, Going Down, 왜 내게, 우리의 멸종’ 이렇게 총 6곡이 수록돼 있다. 모두 수현 씨가 작곡했고, 작사 역시 수현 씨와 멤버들이 했다.

 

▲ fic의 미니앨범 ‘우리의 멸종’ 앨범자켓

■‘잊혀질 권리’, ‘자기결정권’ 노래한 ‘우리의 멸종’ 그리고 ‘싱글베드’


난 원해 그 어떤 기록도

우리를 추적할 모든 게 다

남김없이 사라지길 원해

운석이라도 떨어지길

지구 반 만한 크기로

단 하나 남은 도도새처럼

우리의 멸종을 꿈꿔 - 우리의 멸종 中

‘분명 여기 없는데 자꾸만 사람들이 우리들의 흔적을 찾는 것’에 지친 그는 ‘우리의 멸종’을 노래한다. 멸종돼버리길, 기록된 모든 것들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길, 그래서 자유로워지길. 이 노래를 듣자마자 지워도 지워지지 않고, 어떤 조치조차 취해지지 않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온라인상의 기록들로 세상을 등진, 혹은 괴로워하고 있는 ‘모두’가 떠올랐다. 사랑노래처럼 들리길 원한다는 수현 씨 역시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곡을 썼다고 고백했다.

“실은 ‘멸종’이라는 단어에 꽂혀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쓸 때쯤 그리고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벌어지고 있는 ‘잊혀질 권리’가 지켜지지 않아 혹은 전혀 원하지 않았던 기록들이 남아 괴로운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사랑도 마찬가지죠.”

오늘따라 입도 열기 싫죠

숨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

침대 밑도 내어줄 수 없죠

소파 위도 안돼요

오늘 밤 이 방은 나의 성지

그러니까 그댄

애초에 그럴 마음이 없었던 듯이

셋 셀 동안 나가줘요

오늘 밤 난 혼자 잘 거예요 -싱글베드 中

 

▲ 춘천문화재단 지원으로 미니앨범을 제작, 발매기념 쇼케이스를 한 fic. 사진은 보컬 김영재 씨

기자는 10여년 전 노래인 리쌍의 ‘TV를 껐네’의 ‘답가’같다고 생각했다. ‘TV를 껐네’는 귀찮아 자고 싶은 연인에게 ‘니가 매력적인 탓’이라며 귀엽게 사랑을 갈구하는 노래로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기자 역시 좋아해 참 많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혼자 자고 싶으니 셋 셀 동안 나가달라고’ 단호히 말하는 싱글베드는 더 신선하게 다가온다.

“뭐 그렇게까지 거창한 곡은 아니다. 그저 밴드 멤버들과 얼마전 제주도 여행을 가서 잘 놀고, 집에 오는 길에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곡을 쓰게 됐다. 물론 성적자기결정권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기도 하다. 근데 이 노래를 오히려 중년 기혼 남성들이 더 좋아한다.(웃음)”

한참을 함께 웃으며 ‘성적자기결정권’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다. 라는 대화로 이 곡의 가치에 대해 서로 공감했다.

“내 노래는 무슨 장르를 규정짓기보다 내 삶도 시시각각 변하듯, 그렇게 흐르는 대로 계속 곡을 쓰고 음악을 하고 싶다.”

 

▲ ‘우리의 멸종’ 앨범발매 쇼케이스를 마치고 관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fic

이상은의 자기성찰적인 음악과 이적의 서사가 있는 작곡 방식을 좋아하고, 영감을 많이 받는다는 수현 씨는 어깨가 들썩일 수 있는 노래를 추구한다고 했다. 본인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 뭔지 묻자, 항상 새로 쓴 노래가 당시 자신의 마음을 잘 담고 있어 좋다고 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굳이 꼽자면 ‘휘황찬란’이 애착이 많이 간다고.

당시 홍대에 자주 가는 ‘마이너’하지만 개성 있는 뮤지션들을 위한 무대였던 공연장이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결국 문을 닫게 돼 마지막 공연을 했고, 그 공연을 보고 나오는 홍대거리가 참 휘황찬란했다고. 가사 속 ‘휘황찬란한 도시 속 우리는 우리를 사기도 했지만 어느 것 하나 쓸 것이 없었다’는 대목에서 당시의 아쉬움이 드러난다.

“내안의 모인 말들을 쏟아내고 싶을 때 곡이 써진다. 슬픈가사는 기쁘게, 기쁜가사는 차분하게 이런 아이러니가 있는 노래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쨌든 어깨가 들썩여지는 리듬이 좋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그냥 세상 사람들이 다 나보다 조금 행복했으면 좋겠다. 많이는 말고, 조금”이라고 말하는 fic 이수현 씨는 여전히 싱어 송 라이터로, 그리고 강원도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공지천 어딘가를 산책하고 있을 것이다. 유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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