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칼협’ 속에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 [임명묵의 MZ학 개론]
‘합리적 문제 제기 필요성’과 ‘공동체 상호 부조 회복’ 과제 안겨
(시사저널=임명묵 작가)
'다사다난'했던 2022년도 마무리되고 드디어 2023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한 해가 끝날 때 즈음 그해를 시끄럽게 했던 수많은 일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새해에는 모두가 행복하고 평안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인 것 같다. 하지만 이 변화의 시대에 세상이 시끄럽지 않을 길은 없고, 당연하게도 2023년 역시 최소한 지난해만큼이나 다사다난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2023년의 '다사다난함'도 결국에는 그 이전의 많은 다사다난함이 누적된 결과들로서 펼쳐질 것이다. 그렇기에 새해가 시작될 때는 행복하고 평안한 한 해를 기원함과 동시에, 지난해를 돌아보며 앞으로의 질곡을 미리 대비하는 것도 분명히 필요한 일일 것이다.
한국 청년층 사이에서, 조금 더 정확하게는 그들이 많이 활동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2022년은 어떤 해였을까? 사실 이미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너무나 광범위한 공간이 되었기에, 거기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다 파악하고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조금의 중요성이라도 갖는 일을 다 정리하자면 아마 두꺼운 연감이라도 필요할 것이다. 다만 몇 가지 사건은 광대한, 그리고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전체에 마치 산불이 번지듯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인터넷 바깥에까지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곤 한다. 이 과정에서 전파되는 문화적 요소로서 '밈(meme)'은 일종의 유통기한을 갖고 있고, 대개 몇 개월에서 짧으면 몇 주 정도면 새로운 밈에 유행의 자리를 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일부는 오랫동안 살아남아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성별 관계와 결혼 문화에서 이제는 주요 용어로 자리 잡은 '설거지론'은 2021년 하반기에 갑자기 등장한 가장 대표적인 밈이 되었는데, 이 용어는 2022년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해 인터넷에서 벌어질 젠더 갈등의 틀을 만들게 되었다. 그렇다면 올해의 틀을 만들, 지난해의 대표적 밈은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2022년 한 해를 장식한 여러 밈 중 가장 파급력이 컸던 것은 역시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이라고 생각한다.
꼭 필요한 도움 요청도 '내 알 바 아냐' 외면
사실 이 밈 자체는 2021년 온라인 게임 로스트아크 유저를 중심으로 유통되던 말이었다. 게임 속에서 특정 문제로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에게, '어차피 네가 선택한 것이고 누가 칼 들고 그런 선택을 하라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불평이 많냐'는 타박으로 응수하곤 했던 것이다. 이런 문화는 2021년 하반기, 2022년 상반기를 거치면서 알음알음 다른 게임 커뮤니티, 나아가 게임 커뮤니티 바깥으로도 퍼져 나가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가 사회문제 전반에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 즈음에 있었던 공무원들의 불만 제기였다. 낮은 임금과 높은 노동 강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많은 이가 '누가 당신보고 공무원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고 응수했다. 이후 인터넷 공간에서는 어떠한 이슈에 문제를 제기할 때 상대방을 침묵시키는 전가의 보도로 '누칼협'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누칼협' 밈은 사회 심리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기에 게임 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그처럼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을까? 우선 가장 강력한 심리는 '시끄럽게 불만을 제기하는 것을 더는 듣기 싫다'는 데 있는 듯하다. 2010년대 한국의 인터넷 공간은 문화적으로는 소비자들이나 네티즌들이 제기하는 집단행동이 부딪히는 장이 되었고, 사회적으로는 소위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개인에 가하는 압박을 해소해 달라고 하소연하는 장이 되었다. 인터넷 공간에서 대부분은 인정 투쟁 정도를 원했지만, 정말 커졌을 경우에는 때로는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와 사회 구성원의 요구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고, 신념과 이해관계에 숱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인터넷은 무한한 투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것이 끊길 기미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연속적인 불만 제기가 심리적 피로의 역치를 넘어섰을 때는 분명히 이 흐름을 끊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네 불만을 사회적으로 확장시켜 일을 더 시끄럽게 만들지 마라, 네가 선택한 것이니 네가 감수하고 거기서 끝내라'라는 메시지가 확산되기 좋은 토양이 이미 조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누칼협'은 그 토양 위에서 사람들이 내심 원하고 있었던 한마디를 아주 자극적이고 간명하게 표현한 밈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문화적 산물은 한번 세상에 나와서 확산되면 당초의 의미에서 확장과 변용을 거칠 수밖에 없다. 누칼협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구분될 수 있는지는 다소 의심스럽긴 해도, 어쨌든 '자기 책임'을 강조할 때 쓰이는 데 그쳤더라면 아주 적절했을 밈이 어느 순간부터는 단순히 상대방의 입을 다물게 하는 '필살기'로 쓰이고 있었다. 이제 모든 종류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일단 누가 칼 들고 협박했는지를 묻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전주시에서 제설 작업이 차질을 빚자, 공무원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누가 전주시에 살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라며 소소하게 역(逆) 누칼협으로 '복수'한 것은 아주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이 밈의 무한한 활용 가능성과 간명함에 힘입어 올해도 우리는 칼 들고 협박하는 사람의 존재를 묻는 질문을 많이 듣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극단적인 자기 책임론이 사회의 건전한 유지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물론 지난 몇 년간 인터넷 공간, 나아가 현실 공간에서 실제적 해결책 없이 일단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심리적 인정이나 제도적 구제를 밑도 끝도 없이 호소한 경우가 너무 많았다. 누칼협은 그런 풍조에 대한 강력한 반동이다. 그러나 물을 버린다고 아이까지 버리면 안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듯이, 서로가 서로의 어려운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배려하는 태도를 갖는 것은 공동체의 유지와 작동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꼭 필요한 도움의 목소리마저도, '내 알 바가 전혀 아니다'고 외면하고, '누가 칼 들고 협박했는지'를 계속 따져 묻게 된다면, 그 자신 또한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 같은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누칼협은 합리적 문제 제기의 필요성과 공동체 상호 부조의 회복이라는 과제를 한국 사회에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 과제를 당장 풀기는 힘들 것이니, 올해는 '사회구조론'과 '자기 책임론' 사이에서 예비된 격렬한 충돌을 일단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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