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듯 사람 다루는 마을… 인간관계는 즉석식품? [김셰프의 씨네퀴진]

2023. 1. 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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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와 삼계탕
미스터리한 마을서 벌어지는 암투·갈등
父 죽음 밝히려는 주인공 영화 이끌어
주변 도움 없이는 요리도 못하는 이장
클로즈업 된 즉석삼계탕 깊은 뜻 담겨
이미 조리된 음식들 포장한 즉석식품
편의성 뛰어나지만 맛 아직 2% 부족
마을의 비밀을 파헤쳐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밝히려는 주인공. 혼자서는 삼계탕 요리 하나 못 하는 이장은 결국 부하들이 다 죽고 난 뒤 저항다운 저항 한번 없이 죽게 된다. ‘이끼’는 정말 이끼처럼 조용히 살라는 뜻일 수도 있고 바위에 들러붙어 기생하는 이끼 같은 군상을 뜻하기도 한다.
 
#영화 ‘이끼’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영화 ‘이끼’는 ‘실미도’, ‘공공의 적’을 만든 강우석 감독의 2010년 작품으로 정재영, 박해일, 유준상, 유해진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열연을 펼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이다. 원작인 웹툰 ‘이끼’도 워낙 인기가 많아 영화를 제작하는 내내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다 보니 원작의 그늘에 묻혀 크게 빛을 보지 못한 영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짧은 시간 안에 풀어내야 하는 영화의 특성상 원작과는 다른 연출, 내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작을 배제한다면 꽤 흥미로운 영화다.
영화 ‘이끼’의 한 장면.
영화는 유 선생 역을 맡은 허준호와 이장 역의 정재영이 만나는 일화부터 시작한다. 월남전을 겪은 후 세속의 때를 벗기 위해 기도를 시작하게 된 유 선생은 주변 시기와 질투를 받으면서도 스스로의 뜻을 굽히지 않으며 그를 괴롭히던 이들까지도 감화한다. 그것을 보고 무언가를 깨달은 이장은 그에게 솔깃한 제안을 하는데, 이 영화의 배경인 미스터리한 마을을 함께 만드는 계기가 된다. 둘의 머리가 백발이 될 정도로 세월이 흘러 어느덧 유 선생도 이장의 얼굴도 주름이 가득할 때, 유 선생이 홀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그런 유 선생의 유일한 아들이 장례를 치르기 위해 마을에 방문하는데, 시작부터 검사와 기싸움을 하는 주인공 박해일의 등장은 호락호락하지 않게 이 마을을 들쑤실 것 같다는 긴장감을 절로 일으킨다.

상을 치르기 위해 멀리서 온 주인공을 환영하고 위로해주는 듯하지만 교묘하게 마을에서 밀어내려는 이장 패거리를 보며 주인공은 의구심을 품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에 음모가 있다는 생각이 든 시점부터 이장의 행동에도 무언가 있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하나씩 하나씩 마을의 비밀을 파헤치기로 마음먹는다. 배우들의 표정은 영화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스산한 배경음악과 어둠 속 그들의 날 선 연기는 웹툰과는 또 다른 느낌의 재미를 준다. 특히 감초 역할인 이장 부하 역의 유해진은 등장 때마다 시선을 끌며 스릴러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는 스릴러답게 보는 내내 긴장감을 유발한다.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내용은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으며 배우들의 감정에 이입해 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끼와 닭백숙

한마을에 터를 잡은 뒤 수십년 동안 유 선생을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땅을 양도받고 또 그 땅은 모두 이장의 소유가 된다. 의구심을 가지던 주인공은 결국 마을의 비밀을 파헤치고 이장 부하들과 싸워가며 죽음의 문턱에서 여러 번 살아남는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미 떠나고도 남았을 상황이다. 도망갈 만한 상황에서도 맞서 싸우는 주인공을 보면 공포심마저 든다. 딱히 정의감 때문도 아니고 그저 스스로의 의구심 때문에 벌어지는 이 모든 일에 사람들까지 죽어나가니 말이다.
결국 부하들을 다 처치하고 마지막으로 이장과 대치하는 주인공, 삼계탕을 끓이며 주인공과 이장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이장은 평소에도 과자, 요구르트 같은 가공식품을 자주 먹는 것을 보여준다. 생식을 먹어왔던 유 선생과는 처음부터 극단적으로 달랐던 그가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유 선생을 속여가며 만든 세상 속에서 그 부하들도, 아들마저도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 이장에게 아버지를 왜 죽였느냐고 다그치자 그는 “내가 그 인간 하나 요리 못 하겠나”라고 답한다. 이때 영화는 클로즈업한 즉석 삼계탕 포장 용지를 보여준다. 맞다. 이장은 이용할 사람들, 부하들이 없다면 삼계탕 하나도 요리하지 못하는 이다. 이장은 유 선생을 이용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까지도 유 선생의 관용 속에, 마치 혼자서 다 만든 세상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주변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 결국 유 선생에게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의 아들로 인해 최후를 맞이한다. 삼계탕 장면에서 검사와 대치하는 이장 뒤편에 삼계탕이 계속 끓고 있는데, 대사 마지막쯤엔 불이 꺼져 있다. 그 긴장감 넘치는 와중에 ‘잠깐만’ 하고 불을 껐던 걸까.

#즉석식품

즉석식품은 미리 조리한 음식을 포장해 밀봉한 것을 가열하여 보존한 제품을 뜻한다. 1950년대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미 육군의 전투식량을 경량화하기 위해 개발했으며 그 전에는 통조림이나 병조림처럼 무겁고 부피가 큰 음식이 많았다. 즉석식품은 편의성이 뛰어나다. 끓는 물에 데우거나 바로 포장을 뜯어 조리하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지금은 파스타, 각종 찌개류, 수육, 삼계탕까지 다양한 제품이 나오고 있다. 물론 직접 조리하는 것보다 맛이 덜하긴 하지만 간편하게 끼니를 때우기엔 그만한 것이 없다. 다만 야채나 과일처럼 신선한 재료들은 이 즉석식품으로 대체할 수가 없다.
토마토와 올리브를 넣은 삼계탕.
■토마토와 올리브를 넣은 삼계탕

<재료>

닭 1마리, 방울토마토 3개, 블랙 올리브 3알, 물 2ℓ, 간마늘 50g, 소금 약간, 양파 반 개, 대파 반 개, 삼계탕 약재 1팩, 샐러드유 약간

<만들기>

① 닭은 소금간을 해주고 간마늘에 버무려 30분간 매리네이드 한 후 팬에 살짝 구워준다. ② 물에 삼계탕 약재와 양파, 대파를 넣고 끓이다 물이 끓으면 매리네이드 한 닭을 넣어준다. ③ 1시간가량 끓여 닭고기가 연해지면 4등분 한 토마토를 넣고 10분간 더 끓여준다. ④ 국물에 간을 한 후 접시에 덜어준다.

김동기 그리에 오너셰프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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